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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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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불평등의 피와 눈물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집트 제27차 세계기후총회 다녀온 기자가 뽑은 결정적 장면 3가지
절박한 개도국, 사상 첫 손실과 피해 기금 마련, 로비스트 600여 명 활개 친 총회장
등록 2022-11-29 09:42 수정 2022-11-30 04:58
우간다의 기후운동가 바네사 나카테(왼쪽)가 2022년 11월11일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열린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보상”이라 쓰인 팻말을 들고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간다의 기후운동가 바네사 나카테(왼쪽)가 2022년 11월11일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열린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보상”이라 쓰인 팻말을 들고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집트의 휴양도시 샤름엘셰이크에서 2022년 11월6일부터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11월20일 막을 내렸다. 애초 폐막일은 11월18일이었지만,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개발도상국의 ‘손실과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별도 기금을 신설하는 문제를 두고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총회가 이틀 연장됐다. 현장에서 총회를 취재한 김규남 <한겨레> 기자가 그 15일간 세 가지 결정적 장면을 꼽아봤다. _편집자
① 개발도상국 목소리 분출

이번 총회는 시작 전부터 ‘개발도상국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클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개최국이 이집트인데다 최근 극심한 가뭄과 폭우, 홍수 등 기후재난으로 개도국이 상당한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전망은 현실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로 손실과 피해를 본 개도국은 선진국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수면 상승으로 국민 생존이 위협받는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의 미아 모틀리 총리는 “우리(개도국)의 피와 땀, 눈물이 산업혁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했다. 우리가 이제 산업혁명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대가를 치르는 이중의 위험을 겪어야 하는가? 이는 근본적으로 불공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2년 대홍수로 1700명 이상이 숨지고 국토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재앙을 당한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는 “(파키스탄은) 탄소배출량이 아주 적은데도 우리는 인류가 만든 재앙의 피해자가 됐다”고 토로했다. 개도국들은 지구에 온실가스 배출을 누적해온 선진국들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며 그에 따른 ‘보상’을 촉구했다.

② ‘손실과 피해 기금’ 신설

이번 총회의 핵심 의제는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 지원이었다. 사실상 이 논의에서 시작해 이 논의로 끝났다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이 문제는 총회 전부터 공식 의제로 채택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렸다. 개도국과 선진국의 입장 차이가 워낙 첨예했기 때문이다. 이 의제가 공식 의제로 채택되기 쉽지 않으리라고 봤지만 총회 개막식날인 11월6일 채택됐다. 또한 합의가 어려울 거라는 예상을 깨고 총회 마지막 날인 11월20일 이 의제가 마침내 ‘손실과 피해 기금 신설’이라는 결과로 합의문에 담겼다.

‘손실과 피해 기금 신설’은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채택된 지 30년 만에 이룬 주요 성과다. 그동안 투발루, 피지 등 작은 섬나라 협상그룹(AOSIS)은 1990년대 초부터 선진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속적으로 ‘손실과 피해’와 관련해 선진국이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 결과로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COP13)에서 공식 논의됐고, 2010년 멕시코 칸쿤(COP16)에서 본격적으로 정치 쟁점화됐다. 2013년 폴란드 바르샤바(COP19)에서는 ‘손실과 피해에 관한 바르샤바 국제 메커니즘(WIM)’이 출범했다. 이는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에 매우 취약한 개도국에서 발생하는 손실과 피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응체제였다.

이후 ‘손실과 피해’는 기후변화 대응에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신기후체제’의 근간인 2015년(COP21) 채택된 파리협정 제8조에 명시됐다. 다만 선진국들은 당시 파리협정과는 별도의 합의문에 손실과 피해와 관련해 “국제법에 따른 책임이나 보상”이 아닌 “협력적이고 촉진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하지만 이번 총회에서 사상 처음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별도 기금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합의문에 명시됐다. 다만 주목할 점은 기금 마련이 개도국의 손실과 피해에 대해 선진국이 법적인 책임을 지거나 이에 따른 보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도적 ‘지원’이라는 것이다. 선진국의 이런 강고한 입장 때문에 향후 손실과 피해 기금 신설과 관련해 누가 어떤 방식으로 기금을 부담할지, 누구에게 기금을 지원할지, 어떤 피해를 어느 시점에서 지원할지 등을 두고 갈등이 또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

③ ‘그린워싱’ 논란

이번 총회는 600명 이상의 화석연료 로비스트가 활개 친 총회라는 비판을 받았다.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글로벌 위트니스, 코퍼레이트 어카운터빌리티 등에 따르면 636명의 화석연료 로비스트가 이번 총회에 등록했다. 이는 2021년 영국 글래스고(COP26) 총회 때 503명보다 26.4% 늘어난 수치다. 로비스트는 지난 20년(2000~2019년)간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10개 나라(푸에르토리코, 미얀마, 아이티, 필리핀, 모잠비크, 바하마,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타이, 네팔)의 이번 총회 협상대표단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이들이 활개 친 탓일까. 총회 합의문에는 2021년 글래스고 합의(COP26)의 재탕인 ‘석탄발전 단계적 감축’만 담겼을 뿐 천연가스 등 석탄 외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나 감축과 관련한 내용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제 비정부기구인 코퍼레이트 어카운터빌리티는 추가 분석을 해 “이번 총회의 기업 스폰서 20개 중 18개(90%)가 화석연료 산업을 직접 지원하거나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다”며 “이 기업 중에는 연간 1200억 개의 일회용 플라스틱병을 생산해 세계 최고 플라스틱 오염원이라고 비판받는 코카콜라와 이집트에 세계 최대 가스 화력발전소를 지은 오라스콤건설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번 총회를 둘러싸고 ‘그린워싱’(친환경으로 포장한 위장 환경주의) 논란이 내내 지속됐다.

숙제를 잘 하는 나라, 나올 수 있을까

제28차 총회(COP28)가 열리는 2023년은 파리협정에 따른 ‘전 지구적 이행 점검’(GST)을 하는 첫해다. 198개 당사국이 그동안 각각 약속했던 기후위기 대응 목표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일종의 숙제 검사를 받는 것이다. 이에 28차 총회가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숙제 검사를 하다보면 ‘모범 사례’도 나오고 ‘반면교사 사례’도 나올 것으로 예상돼 2022년보다 주목도 높은 총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2023년 11월30일~12월12일 열릴 예정이다.

김규남 <한겨레> 스페셜콘텐츠부 기후변화팀장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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