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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맞바꾼 고래상어의 자유

등록 2012-08-28 17:18 수정 2020-05-03 04:26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지난 7월 초 한 어민이 제주 앞바다에서 발견해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이하 한화)가 운영하는 ‘아쿠아플라넷 제주’(제주해양과학관)로 옮긴 고래상어 2마리 가운데 1마리가 8월18일 수족관에서 폐사했다. 이번 폐사를 계기로 논란이 거세지자, 한화는 남은 고래상어 1마리를 조만간 바다에 풀어주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고래상어의 폐사 가능성을 내세우며 방생을 요구해오던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에 한화가 결과적으로 무릎을 꿇은 셈이 됐다(922호 줌인 ‘사각지대에 갇힌 고래상어’ 참조).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운영하는 ‘아쿠아플라넷 제주’ 지하 1층 대형 수조에서 유영하고 있는 고래상어의 7월 중순 모습. 사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제공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운영하는 ‘아쿠아플라넷 제주’ 지하 1층 대형 수조에서 유영하고 있는 고래상어의 7월 중순 모습. 사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제공

폐사 원인 밝히려 부검 의뢰

이번에 폐사한 고래상어 이름은 ‘파랑’이다(앞서 언론 보도에는 폐사한 고래상어가 ‘해랑’으로 잘못 알려졌다). 아쿠아플라넷 제주가 지난 7월 이름 붙이기 응모 행사를 진행해, 고래상어 2마리에게 파도를 뜻하는 ‘파랑’과 바다를 뜻하는 ‘해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두 마리 모두 어린 수컷이다. 파랑은 제주 애월읍 하귀리 앞바다 ‘정치망’(물고기가 대량으로 들어오도록 대규모로 고정해 쳐놓은 그물)에서 7월7일과 7월9일, 이틀에 걸쳐 발견된 2마리 가운데 나중에 발견된 고래상어다. 당시 고래상어를 발견했던 정치망 주인 임영태(52)씨는 “두 마리 모두 같은 날 어망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데, 따로 떨어져 있어서 한 마리(파랑)는 나중에 발견하게 된 듯하다”고 설명했다. 정치망은 드나들기 좁은 구멍으로 이어진 3개의 큰 방으로 나눠져 있는데, 먹이를 찾아 함께 들어온 2마리가 서로 흩어져 다른 방에 머물게 됐다는 얘기다.

지난 7월14일 아쿠아플라넷 제주가 정식 개장을 한 뒤, 두 고래상어는 ‘제주의 바다’라고 부르는 수족관 지하 1층 초대형 메인 수조(가로 23m, 높이 8.5m)에 전시됐다. 파랑이 이상한 징후를 보인 건 8월1일부터다. 아쿠아플라넷 제주는 “지난 8월1일 뒤로 먹이로 주는 크릴새우를 먹지 않아 일본 고래상어 전문 사육사를 불러 원인을 찾으려 노력했다”며 “그러나 8월17일부터 상태가 악화돼 다른 수조로 옮겼으나 8월18일 오전 5시께 폐사했다”고 밝혔다. 수족관에 전시된 지 40여 일 만이다. 파랑의 사체는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려고 제주대 수의학과로 옮겨 조직검사 등 부검을 진행하고 있다. 아쿠아플라넷 제주 관계자는 “8월 말께 정확한 결과를 받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국내법상 수족관·동물원 등에서 동물이 폐사할 때, 외국에서 들여온 경우에는 부검을 통해 사망 원인을 환경부에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파랑은 제주 앞바다에서 잡혔기 때문에 부검 결과를 환경부에 통보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아쿠아플라넷 제주 쪽은 반입 당시 겉모습에선 별 이상이 없었던 파랑이 어류에게 자주 나타나는 만성 신부전증이나 패혈증 때문인지, 수조 환경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폐사 원인을 확인하려고 부검을 의뢰했다.

그러나 핫핑크돌핀스·동물자유연대 등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수족관에 갇힌 뒤 받았을 극심한 스트레스”가 파랑의 폐사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아쿠아플라넷 제주의 ‘제주의 바다’ 수조에서는 지난 7월 고래상어와 함께 전시하고 있던 만타레이(쥐가오리)도 폐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아쿠아플라넷 제주는 개장 전 만타레이 2마리를 일본에서 반입했으나, 운송 중 1마리가 죽어 남은 1마리만 전시하고 있던 상태였다.

기념품 인형까지 만들어놓은 ‘대표 생물’

고래상어의 갑작스런 죽음은 한화 쪽을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다. 고래상어 입수 때부터 ‘밀수 의혹’ 등으로 제주해양경찰의 조사까지 받는 등 곤혹을 치르는 중에 고래상어 폐사라는 악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방생하더라도 다른 정치망에 걸려들어 일주일 안에 폐사할 확률이 높다”며 동물보호단체의 방생 요구를 거부해오던 태도도 궁색해져버렸다. 파랑의 폐사로 동물보호단체의 방생 요구가 더욱 거세지자 결국 한화는 살아 있는 고래상어 해랑을 야생에 방사하겠다고 밝혔다. 한화는 8월22일 보도자료를 내 “고래상어의 폐사와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염려를 끼친 것에 대해 송구하다”며 “8월 안에 환경단체, 관련 전문가, 지자체를 중심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언제, 어디에서 방사를 할지 구체적인 일정을 정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화가 앞으로 아쿠아플라넷 제주에 고래상어 전시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쿠아플라넷 제주 관계자는 “언제, 어떻게 들여올지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지만 앞으로 고래상어를 또 반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수족관 상징(BI)부터 안내 책자, 기념품 인형 등까지 제작하는 등 사실상 아쿠아플라넷 제주를 계획할 때부터 고래상어를 이미 ‘대표 생물’로 지정해놓은 사정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한화는 지난 6월 한-중 어업분쟁 탓에 중국 하이난다오에서 반입을 진행하려다 실패한 고래상어 2마리의 중도금으로 중국 업체에 지급한 10억원을 아직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아쿠아플라넷 제주가 고래상어를 대표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일본 오키나와의 추라우미 아쿠아리움(1만400t)과 경쟁하려고 이보다 더 큰 규모(1만800t)로 세웠다는 점도 대표 생물 반입을 포기하기 어려운 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방생 결정에 대해 한화 쪽 관계자는 “애초에 계획하고 있던 방사 일정이 생각보다 앞당겨진 것뿐”이라며 태연해한다. 아쿠아플라넷 제주 관계자도 “고래상어가 평생 수조에 살 수는 없기에 반입할 당시에도 어느 정도 키운 뒤 방사할 계획이었다”며 “해랑의 몸에 생체 칩을 넣어 방사한 뒤 서식 습성, 번식 등 연구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해 바다에 고래상어 출몰 잦아

이처럼 고래상어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 남해 바다에는 고래상어의 출몰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지난 6월26일 전남 여수 돌산도 앞바다에서 정치망에 산 채로 잡힌 고래상어 1마리가 여수엑스포 전시장 안에 있는 ‘아쿠아플라넷 여수’ 관계자가 연락을 받고 이동을 준비하던 와중에 죽은 데 이어, 8월17일에는 여수 남면 안도리 마을 해수욕장 앞 정치망에 고래상어 1마리가 발견돼 이튿날 어장 주인이 그물을 걷어 풀어주기도 했다. 이쯤 되면 고래상어를 더 이상 ‘먼 나라 물고기’라고 부르기 힘들 듯하다. 그러나 정부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고래상어가 여전히 생소한 어종이라며 고래상어 포획·매매 규제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파랑의 슬픈 죽음으로 해랑은 조만간 자유를 얻게 됐지만, 또다른 파랑의 죽음을 막을 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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