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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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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에 갇힌 고래상어

등록 2012-07-31 18:29 수정 2020-05-03 04:26

파파실링기(Papa Shillingi), 마로킨타나(Marokintana), 카옹(Ca Ong), 키카키(Kikaki)….
이 낯선 단어들은 모두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 각각 ‘고래상어’(Whale Shark)를 부르는 말이다. 바다에 사는 가장 큰 물고기로 알려진 고래상어 가운데 확인된 최대 크기만 몸길이 12.65m에 몸무게 21.5t이다. 난류를 타고 이동하는 고래상어는 등에 하얀 점이 가득하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신이 고래상어 등에 동전(영국 화폐단위인 ‘실링’)을 뿌려놓은 것 같다”고 해 ‘파파실링기’라고 부르고,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등에 별이 빼곡히 들어찬 듯 보인다”며 ‘많은 별’을 뜻하는 현지어인 ‘마로킨타나’라고 부른다. ‘고래처럼 큰 상어’지만, 상어답지 않게 순해 필리핀·타이 등에서는 바다에서 고래상어를 관찰하는 스노클링·스쿠버다이빙 여행상품도 있다.

지난 7월25일 오후 제주 성산읍 '아쿠아플라넷 제주' 지하 1층 초대형 수조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고래상어. 제주해경은 아쿠아플라넷 제주가 고래상어를 입수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한겨레21 김성환

지난 7월25일 오후 제주 성산읍 '아쿠아플라넷 제주' 지하 1층 초대형 수조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고래상어. 제주해경은 아쿠아플라넷 제주가 고래상어를 입수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한겨레21 김성환

제주해경, 고래상어 우연한 포획인지 조사

이처럼 ‘먼 나라 물고기’로 여겨지던 고래상어가 최근 한국에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 주인공은 최근 제주 성산읍에 문을 연 ‘아쿠아플라넷 제주’에 전시돼 있는 고래상어 두 마리다. 얼마 전 제주 앞바다에서 산 채로 그물에 걸렸다며 수족관으로 옮겨진 이 고래상어의 입수 경위를 두고 의혹 제기가 잇따른 탓이다. 게다가 야생동물보호단체·환경단체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알려진 고래상어를 즉시 야생으로 방생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7월14일 문을 연 ‘아쿠아플라넷 제주’(제주해양과학관)는 제주도가 처음으로 발주한 민간투자시설사업(BTO) 방식으로 세운 수족관 겸 해양생태연구관이다. 운영권은 서울 63수족관 등을 가지고 있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이하 한화)가, 소유권은 제주도가 갖는다. 수조 용적량만 1만800t이다. 그동안 아시아 최대 규모 수족관으로 유명했던 일본 추라우미 아쿠아리움(1만400t)보다 크다. 고래상어는 ‘제주의 바다’라고 부르는 수족관 지하 1층 초대형 메인 수조(가로 23m, 높이 8.5m)에 있다. 한마디로 수족관의 핵심 볼거리다.

이들 고래상어 두 마리가 수족관에 들어온 건 지난 7월8일과 9일이다. 제주 애월읍 하귀리 앞바다에 펼쳐둔 ‘정치망’(물고기가 대량으로 들어오도록 대규모로 고정해 쳐놓은 그물)에 걸린 고래상어를 이곳 어민인 임영태씨(상자 기사 참조)가 기증을 했다는 것이다. 한화 쪽은 “임씨가 지난 7월7일 오전 아쿠아플라넷 제주 매표소로 전화해 기증 의사를 전해왔다”고 밝혔다. 마침 이날은 ‘만타레이’(쥐가오리) 등 여러 어종을 옮기는 날이어서 일본 추라우미 아쿠아리움에서 온 전문가와 각종 장비가 그 다음날 고래상어 이동 작업에 나설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7월8일 오전, 같은 장소에서 고래상어가 또 발견돼 모두 두 마리가 수족관에 자리잡게 됐다.

언뜻 한 편의 영화 같던 ‘제주 고래상어 발견기’가 의혹의 눈초리를 받게 된 건 개장을 준비하던 한화의 뒷사정이 알려지면서다. 앞서 한화는 아쿠아플라넷 제주의 상징을 고래상어로 삼을 만큼, 오래전부터 초대형 메인 수조에 고래상어를 전시하려는 작업을 해왔다. 중국 하이난성 지방정부와 협의를 마치고 개장일에 맞춰 고래상어 두 마리를 정식 수입하려 했다. 그러나 지난 6월 말, 중국 농업부가 서해안에서 벌어지는 한-중 어업분쟁을 빌미로 주중 한국대사관에 ‘반출 불가’를 통보했다. 개장을 불과 보름 앞두고 난관에 봉착한 상황에서 고래상어 기증자가 나타나자, 인터넷 등에서는 한화가 전시를 위해 고래상어를 밀수하거나 고의로 포획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중국에서 가져오려던 고래상어와 기증받은 고래상어 수도 공교롭게 같았다. 지난 7월18일, 제주해양경찰이 고래상어를 정말 우연히 포획했는지 확인하겠다며 조사에 나서 사태가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신용희 제주해경 수사과장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수준으로 조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아쿠아플라넷 제주의 아쿠아리스트(사육사)들이 지난 7월8일 제주 애월읍 하귀리에 있는 임영태씨의 정치망에서 고래상어를 끌어올리고 있다. 한화호첼앤드리조트 제공

아쿠아플라넷 제주의 아쿠아리스트(사육사)들이 지난 7월8일 제주 애월읍 하귀리에 있는 임영태씨의 정치망에서 고래상어를 끌어올리고 있다. 한화호첼앤드리조트 제공

동물보호단체 “전시로 폐사 가능성 높아져”

이처럼 파문이 커지자 ‘기적의 입수‘라고 홍보하던 한화 쪽도 지난 7월20일 입수 경로에 대해 적극적인 진화에 나섰다. 한화는 밀수 의혹에 대해 “고래상어를 해외에서 들여오려면 항공기를 이용해야 하는데, 비싼 운송비용과 숨길 수 없는 큰 몸집 때문에 고래상어를 아무도 모르게 가져온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또 어류로 분류하는 고래상어는 포획했을 때 해경 등에 신고해야 하는 법 규정이 없으며, 국제적으로도 정치망에 잡힌 것만 허용하는 포획 원칙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화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입수 경위가 아닌 멸종위기에 놓인 고래상어를 전시용으로 활용하는 게 올바른지에 대한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핫핑크돌핀스·동물자유연대 등 동물보호단체가 지난 7월25일 서울 한화그룹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류 후 정치망에 또 걸려들어 폐사할 확률에 관해서는 차후 어망 개선 등을 통해 해결할 문제로 보아야 하는 것이지 살아 있는 생명체를 가두어 전시하기 위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며 “고래상어가 수족관에 적응해 야생성을 잃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본래의 서식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처를 하라”고 주장했다. 현재 고래상어는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의 적색목록 ‘취약종’(VU·Vulnerable)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서는 ‘부속서 2종’(멸종위기에 처할 우려가 있는 동식물)으로 분류돼 있다. 한국을 포함한 회원국들은 이 기준에 따라 국가 간 거래 등에서 고래상어를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CITES ‘부속서 2종’에서는 전시·연구 등 상용 목적의 국제 거래는 허용하고 있어서 해양생태연구관이 있는 아쿠아플라넷 제주가 중국에서 고래상어를 들여오는 데에는 제약이 없다. 고래상어가 워낙 생소한 탓에 국내법엔 고래상어 포획·매매에 대한 규제가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경우 그 기준에 맞춰 국내 멸종위기종 관리체계를 만드는데, 고래상어는 그동안 법적 필요성을 못 느껴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한 상황”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멸종위기종 반영을)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물보호단체는 아무런 제약 없이 국제적 멸종위기종을 전시 공간에 두려는 것이 오히려 폐사 가능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지난 6월26일 여수 돌산도 앞바다에 고래상어가 정치망에 산 채로 잡혀 여수엑스포 전시장 안에 있는 ‘아쿠아플라넷 여수’ 관계자가 연락을 받고 이동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고래상어가 죽었으며, 아쿠아플라넷 제주에 전시하려고 국내로 반입하던 만타레이가 운송 중에 사망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만타레이는 고래상어와 같은 IUCN의 적색목록 ‘취약종’이다.

지난 7월25일 동물자유연대, 핫핑크돌핀스 등 동물보호단체가 서울 을지로 한화 본사 앞에서 고래상어 방생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지난 7월25일 동물자유연대, 핫핑크돌핀스 등 동물보호단체가 서울 을지로 한화 본사 앞에서 고래상어 방생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필리핀·인도에선 포획도 금지

전시·연구 등을 위해 야생 생물을 항공기 등으로 옮기는 과정도 폐사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야생동물 운송에 드는 비용에는 동물의 몸값보다는 관세·보험료·운송비 등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한화가 중국에서 들여오려다 무산된 고래상어 한 마리의 몸값이 5억원인 것도 대부분 운송비 때문이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국내의 한 아쿠아리움 관계자는 “항공사에서 부르는 화물용 항공기의 임대료가 ‘부르는 게 값’이고, 취항하지 않는 오지에서 들여오다 보면 두세 번 갈아타게 돼 운송비가 치솟을 수밖에 없다”며 “일본에서 거래되는 고래상어 값도 한 마리당 1천만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 분홍돌고래 두 마리를 들여온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대전 아쿠아월드’의 경우, 베네수엘라 발렌시아에서 항공편을 기다리던 분홍돌고래 한 마리가 스트레스로 폐사해 결국 들여오지 못한 일은 업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동물보호단체는 싱가포르의 ‘고래상어’ 논란 사례를 예로 들며 고래상어 방생을 촉구하고 있다. 2006년 싱가포르에 들어서는 첫 종합 리조트 ‘리조트월드센토사’(Resort World at Sentosa) 개발계획 발표와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해양 수족관 ‘머린라이프파크’(Marine Life Park)의 운영 계획이 공개됐다. 그러나 당시 리조트 개발업체가 고래상어를 전시하겠다고 발표하자, 동물학대방지협회(SPCA) 등 싱가포르와 국제 동물보호단체 7곳이 9천여 명의 온라인 반대 서명을 모아 계획 철회를 요구해 3년 만인 2009년 사실상 고래상어 입수를 백지화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는 남해안을 중심으로 해류 변화 때문에 고래상어를 목격했다는 소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2006년 10월 해군기지 공사장인 서귀포시 강정마을 앞바다에서 그물에 걸린 길이 5.5m의 고래상어를 풀어준 적이 있고, 같은 해 9월에는 부산 해운대 동백섬 앞에서 바위틈에 낀 고래상어를 구조해 바다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이듬해 9월에는 진도 앞바다와 경북 울진군 죽변 오산항에서, 2009년 9월에는 울산 앞바다에서 고래상어가 잡혔다. 같은 바닷물을 헤엄치고 있지만 우리에겐 생소한 어류라 수조에 가두지만,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없는 탓에 마구 잡아들인 필리핀·인도에서는 포획까지 아예 금지하고 있다.

한화는 이미 2008년 11월 대형 아쿠아리움 사업을 회사의 신 성장동력으로 삼고 모든 역량을 투입하기로 했다. 2013년 12월에는 경기 일산에도 새 수족관을 연다. 빈 수조에는 새로 담을 물고기가 필요하다. 고래상어는 먹이를 찾아 북상하다가 또다시 남해 앞바다 어딘가에서 그물에 걸릴지 모른다. 고래상어는 어디로 가야 할까.

제주=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
<font color="#003366">고래상어 발견한 제주 어민 임영태씨 인터뷰</font>
<font size="3">“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풀어줄 걸”</font>
제주 애월읍 하귀리에서 정치망 어업을 하고 있는 임영태(52)씨의 모습. 한겨레21 김성환

제주 애월읍 하귀리에서 정치망 어업을 하고 있는 임영태(52)씨의 모습. 한겨레21 김성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풀어줄 걸 그랬어요.”
7월25일 아침 찾은 제주 북서쪽 작은 포구 마을인 애월읍 하귀리 앞바다는 고요했다. 마을에서 만난 임영태(52)씨는 전날 그물 손질을 끝낸 정치망에 활어를 낚으러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7월7일 마을 앞바다에서 고래상어를 발견한 주인공이다. 태풍 카눈이 몰려오기 전 고래상어를 발견한 뒤, 그의 일상도 태풍을 겪었다. 제주해양경찰서에만 두 번씩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고래상어를 밀수한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고래상어를 직접 잡은 게 맞다”며 그저 헛웃음만 지었다.
“목격자도 많아요. 고래상어 들어왔다고 알려준 것도 동네 사람이라니까요.” 7월7일 아침 전화를 한 통 받았다고 한다. 한치잡이에 나선 마을 주민이 “어망 안에 시커먼 큰 물체가 왔다갔다 한다”고 알려왔다. 정치망은 바다 위에 가두리처럼 자연스럽게 물고기가 들어오도록 만든 고정형 그물이다. 임씨의 그물망은 3개의 관문을 통과하는데, 한치·독가시치·오징어 등이 많이 잡힌다.
배를 타고 나가 정치망 안을 들여다보니 4m는 족히 넘을 듯한 시커먼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 올해로 11년째 정치망 어업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그지만, 처음 보는 물고기였다. 고래인지 상어인지 몰랐다. 그는 우선 제주도에 있는 해양수산연구원에 전화했다. 지난해 11월 이 마을에서 죽은 밍크고래가 그물에 걸려 올라왔을 때도, 가끔 고래뼈를 건져올릴 때도 마을 사람들은 해양수산연구원에 연락하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요일이라 사무실에는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아들 정호(31)씨가 “성산에 문을 여는 제주해양과학관(아쿠아플라넷 제주)에라도 전화를 해보자”고 했다. 인터넷으로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했더니 오후에 담당자가 확인을 하러 오겠다고 했다.
사실 그는 아쿠아플라넷 제주에서 고래상어를 애타게 찾고 있는 줄 몰랐다. 그는 “아쿠아플라넷 제주 관계자가 ‘추라우미 수족관도 지역 어민들이 잡은 어류를 중심으로 전시를 한다’며 기증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어차피 위판장에 내다 팔아봤자 사료용으로 쓰이기에, 여러 사람이 구경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증을 허락했다. “수족관에서는 고래상어를 옮기는 사흘 동안 조업을 하지 못하는 비용과 그물 등 어구 값을 보상해줬죠.” 한화 쪽에서는 고래상어를 옮긴 운송업체를 통해 임씨에게 약 1억원의 보상 비용을 전달했다.
그도 고래상어를 풀어줄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물고기를 보내주면 복이 돌아온다고 하는데. 처음 본 게 하도 신기해서 전화를 했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하필이면 왜 우리 정치망에 걸렸나 싶어요. 스트레스만 잔뜩 받았으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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