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의 경고등이 울리고 있다. 야생 동식물을 비롯해 생물의 멸종위기가 가속화하고 있다. 지구 차원의 멸종위기에 대한 관심이 생물다양성 보존으로 모아지고 있다. 생물다양성은 여유 있는 환경 이야기가 아니다. 전 지구적 의제이자 각국이 수용해야 하는 과제가 되고 있다. 지구에서 더 이상 생물이 살아갈 수 없다는 죽음의 경고 탓이다. 인류가 생물다양성을 강조하며 그 구체적인 ‘위기의 현실’을 보고한 것이 바로 ‘레드리스트’(Red List)다.
1990년대 기준 아직도 사용
지난 10월24일부터 나흘간 경기도 포천 광릉 국립수목원에서 ‘지구의 멸종위기 경고등’을 살피는 워크숍이 열렸다. 국내 최초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과 국립수목원이 레드리스트 교육을 했다. 국제 기준의 멸종위기 동식물을 평가하고, 분류체계를 마련하는 실질적인 교육의 자리였다. 중국과 일본은 1990년대 후반부터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늦었다. 레드리스트는 IUCN이 전세계 차원에서 생물 현황 정보를 하나로 모아, 이를 ‘위기와 멸종’ 차원에서 정보와 자료를 평가해 분류하는 것이다. IUCN은 각국 정부와 민간 단체, 전문가 등이 망라된 자연과 생태 분야의 대표적인 국제기구다. 세계자연유산 등재의 실질적인 심사도 이곳에서 수행한다.
“늦었지만 해야 할 작업이다. 야생 동식물 관리를 국제 기준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 것은 한반도가 지구에서 홀로 떨어진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레드리스트에 근거를 둔 멸종위기 동식물 관리체계를 국내에 도입해야 한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하고 있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생물다양성을 관리하기 위한 제도다.” 국립수목원 이병천 박사의 말이다. 국립수목원은 2008년부터 정부기관과 전문가 그룹을 망라해 국내 최초로 한국 희귀식물에 대한 보고서를 레드리스트 분류 기준에 입각해 조사, 발간했다.
아프리카는 케냐를 비롯한 ‘타잔의 고향’에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레드리스트에 근거한 멸종위기 동식물 관리를 해왔다. 고릴라·침팬지·오랑우탄·코뿔소·코끼리 등 국제적 보호종을 레드리스트에 의해 관리하고 있다.
IUCN의 레드리스트는 생물종에 대한 경고등이자, 위기 분류 체계다. 그래서 각국은 이 체계로 자국의 멸종위기 및 희귀 동식물을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한국은 아직 레드리스트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미흡한 실정이다. 한국은 1990년 중반 일부 전문가들이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만든 멸종위기종 분류와 평가 기준을 그대로 쓰고 있다.
문제는 한국도 멸종위기라는 물리적 현실을 비켜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멸종위기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할 뿐, 멸종의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달가슴곰이 사라진다는 것은 이들이 살아가는 숲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에게도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문제다. 좋은 물과 공기를 가져다주는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멸종위기종의 현실, 생물종이 사라지는 현실은 그 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눈에 당장 보이지 않을 뿐 인간의 삶에도 직결된 문제다.
사향노루 서식지에 케이블카
국내의 멸종위기종 평가 기준은 국제적 고려가 매우 미흡하다. 대표적인 것이 저어새다. 저어새는 2011년 현재 국내에서 약 2500마리가 확인된다. 문제는 이 수치가 지구상에 남아 있는 전체 저어새 수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사라지면 지구에서 영원히 종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정부의 야생 동식물 보호·관리에서 저어새는 별다른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인천 송도 신도시 개발을 비롯한 경기만 일대의 개발에서 저어새는 보호받지 못했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2천여 마리의 저어새에 대한 환경부나 국토해양부의 보호·관리 노력은 없다.
고라니에 대한 인식도 바꿔야 한다. 한국에서는 너무 흔해 유해 조수로 취급받는 고라니도 나라 밖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국내에서는 흔하지만, 지구 차원에서 보면 만주 일부와 한반도에서만 살고 있다. 국제적 기준과 평가에 의한 가치로 보면 반달가슴곰과 견줄 정도의 의미를 지닌 종이다. 이상돈 이화여대 교수(환경공학)는 “야생동물에 대한 권위 있는 국제회의나 학술행사에 가보면, 외국 전문가들이 한반도의 포유동물 중에서 고라니에 큰 관심을 표명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부 정책부터 연구자들까지 찬밥 취급을 한다”며 지구적 흐름과 이격된 자연정책을 안타까워했다.
사향노루도 동아시아에서 주목하는 멸종위기종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유명한 가곡인 2절의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에 나오는 ‘궁노루’가 바로 사향노루다. 지난 30여 년간 국내에서 구체적 흔적이 담긴 보고가 없었는데, 지난 3월 국립환경과학원이 강원도 화천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촬영한 사진 등을 비롯한 조사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지식경제부는 이곳에 케이블카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부도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사향노루는 동아시아 일부에서만 서식하는 주목할 만한 종이지만 한국 정부는 별 관심이 없다. 국내에서 멸종될 위기에 처했고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종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 이후 더욱 중요해져
2000년대 이후 레드리스트는 더욱 주목받는 환경지표가 되고 있다. 지구적 위기인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직접적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는 “지구의 평균 온도가 3.5℃ 올라가면 생물종의 40~70%가 멸종한다”고 보고했다. 양서류를 비롯한 생물의 멸종 및 멸종위기 속도가 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인해 가속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극곰이나 펭귄만 그런 게 아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이 속도가 가속되고 있다. 생물의 서식지 환경이 빠르게 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는 직접적으로 생물다양성을 위협한다. 한국의 고속성장은 생물의 멸종 속도를 높이는 가속페달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멸종위기 동식물 관리는 저속의 느린 걸음을 하고 있다.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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