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산 곰의 지리산 방사를 앞두고 야생동물학자가 정부와 지역주민, 등산객에게 던지는 이야기
글 · 사진 최태영/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연구원 · 전 반달가슴곰관리팀 근무
지난해 이맘때 나는 지리산의 외딴 마을에서 반달곰을 향해 주먹만한 돌을 던지고 있었다. 곰은 항상 나보다 빨랐으며, 소리도 내지 않았고, 어둠에 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곰의 목에 두른 발신기에서 내보내는 전파만이 곰이 바로 지척에 있음을 알려줄 뿐이었고 랜턴 불빛에 걸려든 모습이 이따금 존재를 확인해주었다. 내가 던진 돌에 곰이 맞아 달아나면 그동안 녀석들로 인해 쌓인 피로가 풀리는 듯 기뻤고, 엉덩이라도 한번 더 맞추기 위해 연이어 돌을 던졌다. 어릴 적부터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연구하는 직업이 꿈이었던 나는 지리산국립공원의 반달곰관리팀에 근무하던 시절 그렇게 변해 있었다.
‘곰관리팀’에서 ‘꿀관리팀’으로
2001년 방사한 ‘반돌’이와 ‘장군’이는 그해 몇달째 마을 근처의 토종꿀통을 습격함에 따라 양봉을 하는 주민들의 항의는 거셌으며, 그러한 항의는 보험회사의 보상금 지급을 통해 무마되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던 반달곰관리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날그날 마을 근처의 벌통을 지켜 주민들의 항의와 보상금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면서 어느덧 우리는 ‘곰관리팀’이 아닌 ‘꿀관리팀’으로 바뀌어 ‘곰’을 퇴치하고 있었으며, 쌓이는 피로와 신체적 위험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최루탄보다 훨씬 독하다는 곰퇴치용 스프레이는 예전에 동이 났으며, 1m 앞에서 얼굴에 뿌려도 10여분 뒤에 다시 돌아올 정도로 녀석들은 적응되어 있었다. 폭죽을 터뜨려보기도 하고, 포획해서 양봉 농가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 풀어놓기도 하고, 어떤 주민은 철망을 치고 개를 묶어놓기도 했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꿀을 앞에 둔 곰의 집념은 참으로 대단했으며 행동은 매우 영리했다. 이렇듯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가운데 부족한 예산을 감안하면 현장에서의 가장 효율적인 처방은 역시 돌을 던지는 것이었으며, 국민들과 일부의 정책결정권자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반달곰복원사업은 그리 낭만적이거나 홍보성 정책으로서 적당히 만만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장군이와 반돌이가 올해 5월 그동안의 말썽과 이에 따른 인명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완전히 ‘회수’됐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니 그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로써 2001년 지리산에 방사된 4마리의 반달곰은 모두 적응에 실패한 셈이 되었으니, 그간 노력했던 많은 사람들의 회한도 클 것이다. ‘막내’는 등산객들이 장난 삼아 주는 음식물에 길들여져 회수됐으며, ‘반순’이는 멧돼지를 밀렵하기 위해 만든 올무에 걸려 죽은 것으로 추측되며, 장군이와 반돌이는 앞서 설명했듯이 마을 주민과의 마찰로 인해 회수됐다. 하지만 이들 네 마리가 모두 회의적인 결과만을 남긴 것은 아니었다.
어미로부터 어느 것 하나 교육받지 못한 어린 곰들을 곰농장에서 들여와 지리산에 방사했지만, 이들은 그동안 스스로 먹이를 찾았으며 겨울잠을 통해 3번의 겨울을 이겨냈고, 몸무게가 150kg에 육박하는 등 성공적으로 자연에 적응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풀어가지 못해 모두 실패로 돌아서고 만 것이다. 각자 운명을 달리한 이 네 마리의 반달곰은 우리 사회가 생태계 보전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러시아에서 해마다 6마리씩 야생의 새끼반달곰을 들여와 5~10년간 방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시점에서 과연 우리가 얼마나 반달곰에 대해 알고 있고 그들을 맞을 준비가 됐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해마다 지리산을 찾는 300만명의 등산객들에게 묻고 싶다.
반달곰 복원을 위해 지리산국립공원의 상당수 등산로가 지속적으로 폐쇄되어 선택의 기회가 줄며, 100kg이 훨씬 넘는 위협적인 반달곰을 등산로에서 마주쳐도 스스로 대처해야 하며, 따라오는 귀여운 새끼반달곰에게 과일을 주었다는 이유로 범칙금이 부과돼도 불만이 없는가? 또 독사에 물리는 경우보다는 그 수가 적겠지만, 숲에 혼자 남겨졌을 때 곰의 습격도 받을 수 있다고 각오해야 한다. 해마다 6마리씩 새끼반달곰을 들여놓을 경우 이를 개체군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측해보면 20년 이내에 일시적으로 100∼200마리까지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산에서 곰을 만나는 것은 미국의 요세미티가 아니라 우리나라 지리산에서도 현실로 다가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연은 원래 그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그동안 너무 쉽게 대자연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파괴와 멸종이 거듭돼온 것일 뿐이다.
등산로에서 곰과 마주친다면…
지리산에 기대어 사는 5개 시군의 지역주민들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지리산에 반달곰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상의 생활로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는가? 벌통을 지금처럼 숲에 방치하듯 놓아서는 안 되며, 벌통의 구조를 곰의 습격에서 이겨내도록 고안하고, 벌통 주위에 전기 펜스를 설치한 결과로 키울 수 있는 벌통의 수가 줄어들거나 인건비가 더 들어가고 정부의 보상이나 지원이 충분치 못하더라도 벌 키우는 일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고로쇠 수액의 채취 방법·구역·작업 시기 등의 조정과 제한 역시 있을 수 있는 일임을 인정해야 한다. 게다가 나물과 버섯을 채취하러 등산로를 자주 벗어나는 주민들은 뜻하지 않은 곰과의 조우에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지리산 일대의 대다수 주민들은 반달곰의 복원을 당연하게 여기고 자랑스러워하지만, 막상 일상의 제약을 받는 당사자가 되는 주민일 경우에는 매우 강력하게 반대하거나 높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현재 야생 반달곰이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부분적으로 주민들이 밀렵에 협조했기 때문임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없는 반달곰을 정부에서 풀어놔 주민들을 애먹인다는 논리 아래 복원사업의 반대나 정부의 보상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지난 1년간 두 마리의 반달곰이 끼친 한봉 농가 피해에 대해 보험회사에서 지급한 보상액이 1억원 내외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반달곰의 수가 늘어날수록 정부의 보상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지역민이 능동적으로 상황에 적응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정부계획처럼 수십 마리가 방사되고 번식이 일단 시작되면, 이를 다시 인위적으로 회수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민과 정부의 갈등 정도에 상관없이 이미 반달곰은 지리산의 구성원으로 자리잡은 상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즉, 지리산은 ‘본래의 지리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네 마리의 실험개체가 모두 실패한 요인이 어릴 적 적응훈련이 잘못되어 그렇다는 해명 외에 또 다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는가? 올해 새로 들여오는 러시아산 반달곰 역시 적응훈련 뒤 현재의 문제를 반복한다면 복원사업이 성공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는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방사 뒤 문제를 일으키는 곰에 대해 궁극적으로 회수하는 것 이외의 마땅한 해결책을 그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복원사업의 성공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회수되는 곰들에 대한 처리도 간단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네 마리 반달곰의 실패가 탐방객이나 지역주민과의 관계 문제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에 따라 현장에서 주민과 탐방객을 상담하고 설득해나갈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재하다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갈등이 점점 심각해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회수된 네마리 반달곰이 주는 교훈
지리산 적응에 실패한 네 마리 반달곰이 주는 교훈은, 반달곰복원사업의 성공 여부가 방사한 반달곰의 자연 적응 가능성이 아니라, 사람들이 반달곰에 어느 정도까지 적응할 준비가 되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사업 시행 조직의 인력 역시 이에 맞게 재구성되거나 관련 인력을 양성하는 쪽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물은 섭씨 0도가 되어 얼기 전에는 언제나 같은 물처럼 보인다. 생태계도 이러한 임계치가 있어서 생물종이 하나 둘 사라져도 숲은 여전히 푸르고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을 넘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문제는 물은 섭씨 0도에서 언다는 것을 알지만 생태계의 임계치는 아직 모르는 상태이며,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멸종 및 멸종위기종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반달곰의 복원은 매우 뜻깊다. 하지만 경험이 없기 때문에 여러 문제점이 일어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쉽게 포기해서도 안 되는 것이 우리나라의 상황이다. 또한 각 나라마다 처한 환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적용 가능한 외국의 사례를 찾기도 쉽지 않아 결국은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는 복원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요즘 어른들 가운데 아이들에게 산에서 만난 노루 한 마리 제대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어릴 적 우리들은 할머니 치마폭에 누워 호랑이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나는 내 아이에게 산에서 만난 반달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큰 산이라면 곰이 살 만한 정도의 생태계는 갖춰지도록 자연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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