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스스로 꽃피고 스스로 빛나고 있는 작가 3명 인터뷰…당신은 아직 이야기의 힘을 믿는가</font>
▣ 글·사진 김순천 르포작가
한국의 르포문학은 빈약하다. 아니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지극히 소수였지만 그들은 스스로 꽃피고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자본에 의해 서로 비슷해지고 닮아가는 지적인 풍토에서 나름의 생김으로 개성 있게 살고 있었다.
<font color="#C12D84">의 소설가 김하경</font>
‘아라비안 나이트’같은 노동자 이야기
2005년 ‘삶창르포문학팀’은 경남 마산 진동에 있는 소설가 김하경 선생 댁으로 MT를 간 적이 있다. 우리는 거기서 놀랄 만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집 아래채에 가득 찬 자료들이었다. 을 쓸 때 참조했던 그 자료들은 10년 동안 버려지지 않고 일련번호가 붙여져 깨끗이 보관되어 있었다. 한국처럼 기록문화가 엉망인 나라에서 그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선생 댁에 다녀온 뒤로 나는 그 자료들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르포가 거의 죽어버린 1990년대 중반에 르포를 쓴 작가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주류 문단은 물론 소비와 유통망에서도 배제되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다룬 작가가 있다는 것도 경이로웠다. 선생의 그 자료에는 배제된 노동자들과 함께 견딘 긴 세월과 고통 그리고 깊은 외로움이 있었다. 이것이 내 마음을 떨리게 했다.
남들이 노동 현장을 다 떠날 때 도리어 현장으로 온 선생은 1995년쯤 마창노련 마지막 위원장을 만났다. 수배자 신분이던 그를 선생이 집에 숨겨주었다. 그때 선생께서 그 젊은 친구에게 “마창노련과 관련된 자료를 버리지 마라. 역사를 써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가 나중에 사과박스 100개분이 넘은 자료를 선생 댁 마당에 턱 부려놓고 가버렸다. 넓은 마당에 가득 찬 어마어마한 양이었고 하나도 정리가 안 된 상태였다. “어디서 떨어져나왔는지 모르는 마지막 한 장이 돌아다니고 연도도 없고 정체 모를 것들이 많았어요. 타이프라이터로 친 것도 있고 인쇄기로 찍혀 나온 것도 있고 컴퓨터 자료까지… 인쇄술의 발달 과정이 다 들어 있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누구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선생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대기업 한화였다. 일반 회사라면 자료 정리를 잘해놓았을 것이라 판단했고 그때 마침 한화가 국제표준 인증을 받아서였다. 선생은 아는 사람을 통해 한화 자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부터 정말 잘해놓았어요. 딱 누르기만 하면 실내도 그림이 쫙 나오는 거야. 내가 필요한 자료는 몇 번 구역 어디 있다고 화살표로 가르쳐줘요.” 그 자료들이 모두 파일에 정리되어 있어 선생도 파일을 사서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료를 정리하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 자료가 정리되니까 쓰는 속도는 빨랐다. 10개월 만에 쓰고, 양이 방대해서 교정은 수개월 동안 보았다. 그렇게 해서 거의 4년 만에 책이 나올 수 있었다. 정리한 자료로는 책 외에 백서 4권을 더 묶을 수 있었다. 요즘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학자들이나 문헌정보학과 학생들은 선생의 자료정리 방식에 놀란다. 10년 전에 이미 개인의 힘으로 요즘의 체계적이고 현대적인 방식을 사용해 방대한 자료를 정리해서다. 자료도 대학이나 기관에서 서로 달라고 ‘탐’을 낸다. 자료들이 선생도 모르는 사이에 ‘다이아몬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자료와 수십 명의 노동자 인터뷰와 현장 취재를 중심으로 선생은 같은 긴 노동소설을 구상 중이다. 리처드 F. 버턴의 를 번역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선생이 핵심 아이콘으로 삼은 것은 서사, 즉 ‘이야기’이다. 선생은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잠자리를 같이한 처녀를 매일 한 명씩 죽이는 샤리야르왕의 피의 제전을 멈추게 한 것은 돈도 권력도 무기도 아닌, 어이없게도 아무런 힘도 없을 것 같은 샤라자드의 이야기였다.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전하지 않는 한 돈에 의해, 권력에 의해 언제든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음을 샤라자드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이치와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어디에 있는지 깨우치게 한 것이다. 다양한 역사와 민담이 동원된 샤라자드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기록된 이야기들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미 선생의 작품 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 에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풍요롭고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다. 노동자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선생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밤새워 그들과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들을 기록했다. 창원의 통일중공업 노동자들 이야기를 다룬 ‘슬픈 첫사랑’, 대한항공 정비사로 일하는 노동자 이야기 ‘우리 아빠는 정비사’, 포항중공업 노동자 이야기 ‘부메랑’, 거제 대우조선 노동자 이야기 ‘뛰는 고기는 미끼를 물지 않는다’, 부산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이야기 ‘어떤 법정’ 등은 그 현실의 기록이 마음 안에 쌓여 꽃잎처럼 수많은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font color="#C12D84">의 시인 박영희</font>
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쌀이 떨어질 때면 불안해서 잠이 안 와.” (10년 동안 방 안에 불을 지펴본 적이 없는 구룡마을 박순애 할머니)
“남편 앞에 두고 이런 말 하면 벌받을 줄 알지만… 제발 우리 남편 좀 입원시켜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내 소원이에요.” (진폐증으로 이미 계산이 끝난 인생을 살고 있는 광부를 돌보는 아내)
박영희 시인의 르포 글을 읽고 있으면 몸에 전율이 인다. 코피가 저절로 쏟아지는 영하 40도의 시베리아에서 극단의 추위를 견디듯이 그는 사회적 고통의 맨 밑바닥, 죽음과 맞닿아 있는 부분에서 내는 삶의 소리를 견디고 있었다. 벼랑 끝에 서서 “더 이상은 안 돼!” 하고 팔을 벌려 보호막을 쳐주는 그의 글들에서 나는 힘을 얻는다. 그의 글에서는 역동적이면서도 근본적인 힘 같은 게 느껴진다.
나는 박 시인처럼 르포 글쓰기가 자연스러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는 하루 세끼 밥을 먹듯이 르포를 쓴다. 이런 자연스러움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깊은 내공이 있다. 일본 르포 상황을 알아보러 갔을 때 나는 박 시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는 이미 조선인 광부들의 삶을 추적하기 위해 12번도 넘게 일본을 갔다왔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에 대해 한국 학자들이 발간한 책보다는 일본 학자들이 발간한 책이 훨씬 많은 것을 보면서 그는 기록문화의 빈곤함에 부끄러움과 절망을 느끼기도 하고, 비체계적인 흥분으로 가득 찬 한국 르포에 비해 ‘침착하게’ 비수를 꽂는 일본 르포를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했다. 재일 조선인 광부들의 삶을 좇다가 만난 일본 르포작가 하야시 에이다이 선생은 박 시인에게 르포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주었다. ‘좋은 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꽃을 외면하는 것은 물론 꽃을 꺾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의 눈을 속이는 화려한 꽃들을 꺾어 버리고 그 밑에 숨어 있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의 이면을 만나라는 의미일 것이다. 박 시인은 취재를 떠날 때마다 마음에 새기는 글귀 하나가 있다. ‘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 취재를 통해 글을 쓰는 르포문학이 갖는 위험성을 지적한 말이다. 그는 이 말을 르포문학을 새로 시작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font color="#C12D84">의 소설가 오수연</font>
비현실이 현실인 사회, 이야기란 뭘까
오수연 작가의 얼굴이 검게 탔다. 내가 한국에서 하얀 눈을 맞으며 추운 겨울을 나는 동안 그녀는 팔레스타인에서 뜨거운 태양을 맞은 것이다. 봄꽃이 환한 날에 검게 빛나는 그녀의 얼굴이 낯설다. 그녀는 ‘아주 이상한 공간이 되어버린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꺼낸다. 총알이 벽을 뚫고 날아오고 집이 탱크로 부서지는 일이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가족끼리 행복을 나누는 것보다 더 일상이 되어버린 공간, 어린아이 입에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미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곳, 노을을 가르고 올리브 농장을 가르는 가자지구의 초현실적인 8m 장벽, “이제 (삶의) 중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어요”라며 현실감을 잃고 ‘불능 상태’에 빠진 사람들. 그녀는 팔레스타인 작가들처럼 비일상이 일상이 되는 상황에서 고통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오 작가는 소설과 르포문학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 단순히 형식의 차이도 아니다. 소설도 취재의 형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이 다를 뿐이다. “르포문학은 내가 만난 사람들이나 상황의 이야기가 중심이에요. 그분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감동과 갈등을 빨리 전해주고 싶은 거죠. 그것 자체가 즐거움이고 그들과 함께한다는 기쁨이 있어요. 소설은 내 이야기를 중심에 둬요. 제 생각을 자유롭게 쓰는 거죠. 예를 들면 에서 제가 머물고 있는 집에 탱크가 오고 그러잖아요. 그 비슷한 장면이 제 소설집 에도 나와요. 에서는 사람들의 움직임, 생각, 느낌, 부당함을 생생하게 전달하려 노력했어요. 에서는 내가 보는 세계에 대한 해석과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중심이었어요.”
그에게는 다른 장르에 대해 폐쇄성이 강한 문단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르포문학을 자신의 표현방식으로 삼는 개방성이 있었다. “소설을 쓸 때 창작의 자유를 누리는 건 좋아요. 하지만 놓치는 것이 있어요. 한 개인이 대단한 인물이 아니잖아요. 현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간의 삶이 주는 감동 같은 것, 그것은 내가 가공하지 않아도 그것 자체가 소설보다 훨씬 감동적일 수 있거든요.” 창작의 기법에만 빠져 있을 때 놓치는 부분을 르포문학이 어떻게 채워넣는지 명쾌히 설명해준다. 그녀는 르포작가가 가져야 할 자질로 해외 르포 같은 경우 ‘외국어’를 잘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한다. 자신도 아랍어를 할 수 있었다면 훨씬 다른 작품을 쓸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위의 세 작가 외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의 이란주, 노숙인 등 밑바닥 사람들의 삶을 다룬 의 박수정, 새만금 등 생태파괴 현장을 다룬 의 김곰치 등도 스스로 피어오르고 스스로 빛났던 작가들이다. 이 르포집들은 내게 ‘르포란 몸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삶을 함께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수많은 꽃씨가 땅에 묻혀 다양한 꽃으로 피어나듯 르포문학도 존재를 드러내는 한 방식으로 있어주기를 바란다. 잘못돼가는 세상 흐름에 자신을 멈추고 아니다, 라고 성찰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사회 구석구석, 존재가 지워진 사람들에게 따뜻한 힘이 되는 그런 르포문학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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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스트100과 함께하는
<font size="3">제2회 한겨레21 르포상 공모</font>
<font color="#C12D84">르포는 삶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출발하십시오. 르포는 희망입니다. 다른 세계를 상상해보십시오. </font>
<li>분량</li> 200자 원고지 800장 안팎의 르포(워드 작업 뒤 출력해 제출)
취재 과정에서 찍은 사진들(일반 흑백 프린터로 한꺼번에 모아서 출력해도 무방함)
*원고지 10장 안팎의 내용 요약서를 첨부하고 원고 매수를 적어주세요.
<li>주제</li> 제한없음
<li>응모자격</li> 기성, 신인 구분 없음. 팀으로도 참여 가능.
<li>마감 </li> 2008년 9월31일(마감 당일 소인 유효)
<li>심사 </li> 심사위원은 나중에 밝힘
<li>발표 </li> 2008년 11월 말 지면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고
<li>상금 </li> 당선작 1편 1천만원
<li>보낼 곳</li> (121-750)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4층.
.‘한겨레 21 르포상 응모작’이라고 적으십시오(우편으로만 받습니다).
반드시 본인의 이름, 주소, 연락처를 적으셔야 합니다.
<li>문의</li>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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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