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0월4일 옛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됐다.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은 96.2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신호음을 보냈다.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냉전 시대 경쟁자인 미국은 충격을 받았다. 잘 알려진 대로 두 나라 사이 ‘우주 경쟁’이 시작됐다. 1969년 7월20일,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며 미국이 소련에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두 나라의 경쟁은 이후 인류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데 밑돌을 놨다. 하지만 당시 두 나라의 경쟁 뒤에는 자존심, 공포 등 맹목적인 감정이 자리했다는 평가도 있다.
60여 년이 지난 3월 한국 정치권에도 때아닌 ‘위성 경쟁’, 정확히는 ‘위성정당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잘못된 법에 대한 저항’(미래통합당), ‘반칙에 대한 응징’(민주당) 등 명분을 내세우지만 현재 전개되는 양상은 두 강대국의 초기 우주 경쟁을 떠올리게 한다. “일단 이기고 보자”고 싸움이 진행되다보니 ‘무리수’가 난무하고 각 당 내부에서 잡음이 터져나온다.
바뀐 선거법(준연동형 비례제)에 따른 비례대표 의석을 독점하려고 ‘꼼수’인 비례위성정당(미래한국당)을 만든 미래통합당은 비례대표 후보 명단 문제를 놓고 ‘내분’이 벌어졌다. 한선교 미래한국당 대표가 미래통합당에서 영입한 후보들을 당선권 밖에 배치하자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반발했다. 위성이 모행성을 ‘배신’한 셈이다. 그런데 법상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서로 ‘남남’인 정당이라 모행성이 위성의 결정에 개입할 수도, 개입 안 할 수도 없는 ‘웃픈 상황’이 연출됐다.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 일부 인사의 자격 논란도 불거진다. ‘꼼수’가 낳은 총체적 희극이다. 한선교 대표는 3월19일 대표직을 내려놨다.
미래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을 꼼수라고 비판해온 민주당은 “미래통합당이 1당이 되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것이고 이를 막아야 한다”며 비례위성정당 싸움에 뛰어들었다. “시민사회와 함께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돕겠다”며 ‘비례연합정당’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민주화운동 원로들이 주도하는 정치개혁연합 대신 지난해 ‘조국 수호’ 집회를 주도했던 ‘개싸움국민운동본부’ 주축의 ‘시민을위하여’를 선택했다. 앞서 위성에 ‘배신’당한 미래통합당 사례를 목격했기 때문일까. 민주당이 열혈 지지자 중심의 ‘시민을위하여’가 비교적 통제하기 쉬워 파트너로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민을 위하여’와 함께하는 가자환경당·가자!평화인권당의 자격 논란도 불거진다.
미-소 우주 경쟁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끌었지만 한국의 ‘위성 경쟁’은 무엇을 가져올까. ‘이기고 보자’는 각 당의 계산이 총선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유권자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다양한 세력의 국회 진입을 위해 개정된 선거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일까. 질문이 꼬리를 문다. 참고로 스푸트니크 1호 발사 뒤 지금까지 전세계가 쏘아올린 인공위성들은 고장이 나거나 수명을 다해 우주 쓰레기가 돼 ‘골칫덩이’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블라블라
아는 사람
1938년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은 아돌프 히틀러와 만날 계획을 한다. 독일 민족의 재건을 기치로 내건 나치당이 권력을 쥔 뒤 전운이 감돌고 있던 때다. 독일 총통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 주데텐란트를 침략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당시 세계의 지도자들은 히틀러를 직접 본 사람이 없었다. 미국의 루스벨트나 소련의 스탈린도 그를 만나지 않았다. 체임벌린 총리는 비행기로 날아가 히틀러를 만나는 극비 약속을 한 뒤 이를 ‘플랜 Z’라 이름 지었다.
영국 사람들과 신문은 히틀러를 만나러 가는 체임벌린을 지지했다. “그는 내게 양손으로 악수를 건넸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와 만난 일을 이렇게 메모했다. 낯선 이를 만나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체임벌린은 이후에도 두 번 더 히틀러를 만났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고 논쟁하고 식사하고 산책했다. 이 만남을 통해 체임벌린은 히틀러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체임벌린은 히틀러가 체코에만 야심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합의사항에 서명한다. 6개월 뒤인 1939년 독일은 체코를 침공했고 다시 6개월 뒤 폴란드를 침략하며 합의사항을 휴짓조각으로 만든 뒤 제2차 세계대전의 막을 연다.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 <타인의 해석>은 직접 얼굴을 본 사람이 상대방을 더 알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다룬다. 히틀러를 보지 못한 처칠은 그가 악한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알기 어렵다. 이웃한 나라들끼리는 대개 사이가 안 좋다.
더불어민주당은 소수당의 비례대표를 우선시하는 제안을 담은 정치개혁연합의 아이디어를 받아들고는 당원 투표까지 치러 ‘위성정당’을 만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고는 제안한 이들을 배제하고는 비례정당 파트너로 다른 이들을 끌어들였다. 배제당한 이들은 민주당 사람들을 만나 토론하고 대화하고 산책도 했을 것이다.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리스트를 받아들고 기함했다. 옛날부터 배신을 등에 칼을 꽂는다고 비유하고, 약삭빠름을 눈 감는 새 코 베어 간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 모든 일은 서로 가까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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