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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을 뗄 수 없습니다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9-04-09 10:58 수정 2020-05-03 04:29

“그가 운영하는 치과 진료실의 2019년 책상달력도, 출퇴근 때 드는 가방도 표지와 똑같이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진료가 없을 때 머무는 원장실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3년 동안 아침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향을 살랐다는 작은 향로가 있었다.

‘학생들이 희생된 과정과 원인을 밝히는 일이 완성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아직도 그러냐,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약한 사람,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점점 더 떨어지는 것 같아서, 참 많이 답답해요.’”

지난 3월 후원제 시작을 알리는 제1254호 표지이야기 속 주인공 곽성순 원장님의 말에 멈칫했습니다. 곽 원장님을 만난 진명선 기자의 고백(제1255호 ‘21 토크’)은 저의 고백이기도 했습니다. “ 표지 제호에 꿋꿋하게 매달린 세월호 리본의 의미를 독자의 진료실에서야 깨우쳤고,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그의 세상은 세월호 리본을 떼어낼 시점만 고르고 있었던 나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라는 사실 앞에서 변명거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4월이었습니다. 편집장이 되고 나서 잡지를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이런저런 구상을 하다 제호 옆 세월호 노란 리본에 눈길이 갔습니다. 2017년 새해 첫 호(제1145호)부터 매단 리본이었습니다. 왠지 미안하지만 이제 냉정하게 ‘리본을 떼어낼 시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윤형 전 편집장이 지난해 이맘때 쓴 제1207호 만리재에서를 읽고서야 시점을 미뤘습니다. “은 그동안 고집스레 지켜온 세월호의 ‘노란 리본’을 아직 내려놓을 수 없다. 그날의 슬픔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 뒤에도 잊을 만하면 누군가 물었습니다. ‘제호 옆 리본은 언제 뗄 거냐?’ 그때마다 저의 언어가 아닌, 남의 언어로 대답했습니다. 전임 편집장이 ‘아직 내려놓을 수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바로 떼냐고.

연말연초가 닥쳤습니다. 혼자서 쟀던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핑계지만 부지런히 세월호 기사를 썼던 정은주·정환봉 기자가 신문으로 옮겨간 터라 에 후속 기사도 거의 싣지 못했습니다. 동료들과 얘기 나눌수록, 제호 옆에 노란 리본을 뗄 수는 있으나 정작 떼야 할 이유가 궁색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또 시점을 미뤘습니다. 지난 5년 자리를 지켜온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이 3월18일 철거되자, 다시 시점을 가늠해봤습니다. 세월호 5주기를 맞아 리본을 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때 곽성순 원장님의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왜 아직도 그러냐, 뭐라고 하는 사람’이 저를 가리키는 것 같아 뜨끔했습니다. 2014년 그날 가라앉는 배를 보면서, 의 ‘잊지 않겠습니다’ 기사를 읽으면서, 지하철에서 거의 날마다 눈물을 훔쳤던 저였습니다. 이제는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 사람이 된 건 아닌지 두려웠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21부 회의에 부쳤습니다. 속마음은 아직 리본을 뗄 수 없을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진실이 밝혀진 게 아니다”(류우종·허윤희 기자), “노란 리본은 세월호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됐다”(이정우·조윤영·진명선·김현대 기자). 결론은 노란 리본의 유지였습니다. ‘떼어낼 시점’을 기약하지도, 그 충분조건을 정하지도 않았습니다.

노란 리본을 제호에 처음 단 안수찬 전 편집장이 만리재에서 쓴 글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진실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슬픔은 진실과 함께 아직 동거차도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다.”

잊지 않기 위해서도 노란 리본은 필요합니다. 허윤희 기자가 만난 4·16 가족극단 ‘노란리본’ 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계속 서는 이유는 단 한 가지랍니다.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해요. 그런 바람으로 힘들지만 무대에 서요. 하늘에서 아이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잖아요.” 제호 옆에 그리고 제 마음에도 아직 노란 리본을 뗄 수 없습니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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