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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종의 음모 때문입니다.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이냐고요? ‘내 귀의 도청장치’가 일러준 말입니다, ‘라면’ 욕하시겠지만, 취재 결과 음모라는 결론밖에 내릴 수 없었습니다, ‘라면’ 허무하시겠지만, 후딱 답변 드리고 라면 먹으러 가겠습니다, ‘라면’…. 그렇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라면 아닙니까.
마감 때문에 이틀 밤을 지새운 맑은 정신으로 취재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한테 무작위로 물었습니다. 왼쪽 옆자리에 앉은 편집장이 말했습니다. “맛있는 걸 남이 혼자 먹는 건 도저히 못 보겠으니까.” 최 선배 원래 그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든 걸까요. 오른쪽 옆자리에 앉은 X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살찔 것 같아서 안 먹겠다고 마음을 다잡지만 그 다짐까지 쉽게 녹여버리는 라면의 치명적 유혹 때문일걸요.” X기자는 정말 유혹에 잘 넘어가는 사람이라지만, 알고 싶습니다. 그 ‘치명성’의 근거를요. 등 뒤 칸막이 너머 사진부장한테 물었습니다. 라면만 끓이면 만사 제치고 달려오는 선배답게 ‘약간의’ 고민은 엿보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젓가락을 들이밀기 쉬우니까. 비싼 밥엔 젓가락 대기 부담스럽지만 라면은 상대적으로 쉽다는 생각에 한두 젓가락씩 먹게 된다”는군요. ‘음식의 계급’까지 고려하며 젓가락을 들이밀게 만드는 라면의 능력입니다.
농심 홍보팀의 윤성학 차장님께 문의했습니다. 사내 라면연구소의 조언을 곁들인 과학적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라면과 느닷없는 젓가락질의 함수관계를 후각의 역할로 설명하셨습니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코를 막으면 인간은 사과와 양파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군요. 콜라와 커피를 구별하는 것도 만만치 않답니다.
예를 들어 감자나 생선 같은 생물 원료를 넣고 찌개를 끓일 때, 처음부터 감자나 생선의 냄새를 강하게 느끼진 않지요. 냄새가 점점 짙어지는 동안 코가 익숙해지는 이유도 있을 겁니다. 이럴 땐 식욕의 편차가 급격하지 않습니다. 후각을 자극하는 향기의 강도가 미각의 반사속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겠지요.
반면 라면 수프는 처음부터 강렬한 냄새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수프 자체가 향이 강한 가공제품인데다 밀봉된 봉지를 뜯어 뜨거운 물에 넣으면 배가 된 라면 향이 공기를 점령합니다. 짧은 순간에 갑자기 코를 밀고 들어오는 강한 냄새가 초연한 체하던 손을 움직여 급작스럽게 젓가락을 들도록 만든다는군요. 라면은 후각을 최대한 활용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라면 수프 자체가 후각의 특성을 최대한 계산해 우리의 미각을 노리는 마성의 가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라면의 음모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론 수프의 음모겠군요.
‘대신동 싱글녀’님의 질문을 접한 ‘마감 좀비들’의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아, 맞아, 진짜 라면은 그래!” 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면서 전 국민이 “그렇다”며 살고 있습니다. 무서운 음모입니다. 정말 오늘은 라면 먹기 싫다, ‘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저, 밤새우며 새벽에 컵라면 먹었습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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