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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칫덩어리는 쓰레기 같은 건가요?

등록 2013-08-09 11:47 수정 2020-05-03 04:27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DFE5CE"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EBF1D9"><tr><td class="news_text03" style="padding:10px">아침에 TV를 보는데 ‘골칫덩어리’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갑자기 골칫덩어리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어요. 무슨 ‘쓰레기’ 같은 걸 뜻하는 건가요?(0907khi)</td></tr></table></td></tr><tr><td height="23px"></td></tr></table>
한겨레 이정우

한겨레 이정우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현재 노모를 모시고….” 초점 없는 얼굴에 영혼 없는 목소리. 인기 TV 드라마 ()의 주인공 장혜성(이보영)은 한때 무능력 한 변호사였습니다. 매번 똑같은 법정 발언을 성의 없이 읊어댔습니다. 법조계 사람들은 그를 ‘골칫덩어리 변호사’라며 손가락질했죠.

사실 전 요즘 골칫덩어리라는 말보다 ‘뱃살덩어리’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긴 하 네요. 제 골칫덩어리=뱃살덩어리, 뭐 이런 거죠. 콜록. 골칫덩어리는 골치와 덩 어리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서 ‘골치’라는 말을 찾아봤습니다. 속어라고 하네요. “머리 또는 머릿골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랍니다. 일반적으로 골 치가 아프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골치가 쑤시다, 골치가 지끈거리다, 골치를 썩이다 등 다양한 표현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머릿골’은 뭘까요? 말 그대로 옮기면, 두개골 안 에 있는 뇌를 뜻합니다. 대뇌·간뇌·소뇌 등 뇌 전체를 지 칭하는 말이죠. 골치가 쑤신다는 말은 곧 두통이 심하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골치를 ‘머릿뼈’(骨)와 ‘이’(齒)로 풀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골치가 아프다”는 표현이 “머리와 이가 동시에 아플 정도로 심한 상황”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잘못됐다고 합니다 .

국립국어원 어문연구팀의 김한샘 학예연구관은 “옛 문헌에 등장한 표현 등을 봤을 때, 골치라는 단어는 두 한자어의 합성어가 아니라 ‘골’이라는 단어에 접 미사 성격의 ‘치’가 붙어 만들어진 단어다. 접미사를 ‘이 치’로 보는 건 잘못된 해석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조선 중종 때 최세진이 편찬한 중국어 학습 서 에도 머릿골을 뜻하는 ‘골치’라는 표현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덩어리라는 말은 “어떤 성질을 가지거나 그런 일을 일으키는 사람·사물”을 뜻 합니다. 골칫덩이·골칫거리도 비슷한 표현이죠. ‘골치+덩어리’가 사이시옷이 붙 고, 말의 의미도 좀더 축약되는 듯합니다. 두 단어 사이에는 “골치(를 쑤실 일이) 덩어리다”라는 해석이 숨어 있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덩어리라는 표현은 덩이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데요. “조직이나 장기의 일부에 생긴 경계가 분명한 응어리 또는 암세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문득, ‘골칫덩어리→머릿골에 생긴 암세포’로 해석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우석균 보건의료산업노조 정책실장은 “뇌 안에 암이 생기면 양성·악성 상관없이 심한 두통과 몸의 일부가 마비되는 증상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두개골 안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두통의 세기도 심해진다는 것이죠. 정확한 해석은 아니지만, 요즘처 럼 각박한 시대에는 이런 해석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영어에서 쓰는 골칫덩어리라는 표현을 보니 생각이 살짝 달라지네요. 영 어에서는 골칫덩어리를 ‘검은 양’(Black Sheep)이라고 부른다네요. 무리 속에 있는 ‘미운 오리새끼’처럼 말이죠. 그러니 골칫덩어리도 무조건 제거하는 건 아 니지 싶습니다. 미운 오리새끼가 나중에 하얀 백조로 자라듯, 골칫덩어리가 세 상을 바꿀 수도 있을 테니까요. 주인공처럼 말이죠.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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