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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 오는 날에는 회를 먹지 않나요

등록 2013-07-16 12:45 수정 2020-05-03 04:27
얼마 전 평소 자주 찾던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늘 북적이던 곳인데, 그날따라 손님이 한 명도 없더군요. 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 오는 날에는 생선회를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근거가 있는 말인가요?(독자 박은혜님)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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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습니다. 많은 분들이 비슷한 질 문을 하셨더군요. 답변은 대체로 ‘먹지 말라’는 쪽입니다. 한 네티즌은 “비가 오 는 날에는 바닷물이 순환해 가라앉아 있던 세균 등 유해물질이 떠오르고 이를 물고기들이 섭취하게 되므로, 비 오는 날 생선회를 먹는 것은 건강에 좋지 않 다”며 나름대로 논리적인 해석을 내놓더군요. 정말 그럴까요? 결론부터 말씀드 리자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합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코너에서 간만에 똑 떨어진 답을 드리게 됐네요. 1+1=2. 비+회=오케이. 오케이? 한국해양수산연구원의 윤은찬 박사는 “바닷 물의 순환은 비 때문이라기보다는 바람의 영향을 받 고, 바닷속에서 순환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정화작용 등 오히려 순기능이 더 많다”고 말합니다.

물론 과거라면 타당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비가 자 주 내리는 건 여름입니다. 여름은 덥습니다. 더우면? 식재료가 쉽게 부패합니다. 조영제 부경대 교수(식품 공학)는 저서 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옛날 냉장고가 없고 위생에 대한 관념이 부족한 시절 바닷가 또는 재래식 시장의 노점에서 여름철에 생선 회를 썰어놓고 판매하는 것을 먹고 식중독에 걸릴 수 있었을 것이고, 지나가는 소나기에 흠뻑 젖은 생선회를 먹어보면 물기를 머금은 생선회가 맛이 좋았을 리 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것이 비 오는 날은 생선회를 먹으면 안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었던 이유다.”

조 교수는 실험도 해봤답니다. 넙치의 살을 식중독균에 오염시킨 뒤 겨울철 평 균 습도인 40%, 여름철 70%, 비 오는 날 90%에서 각각 배양했습니다. 차이가 거의 없더랍니다. 식중독균의 활성화에 습도, 즉 비가 오는지 여부는 영향을 미 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게다가 요즘 생선회는 제대로 된 냉장·냉동 과정을 거쳐 유통됩니다. 활어를 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까지 운반하는 기술도 발달했습니 다.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요.

맛에는 차이가 있을까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진어참치’의 김철송 사장은 “과 학적 근거도, 타당성도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합니다. 업계에서 ‘참치박사’로 통 하는 그는 “습도가 높은 날, 덥고 끈적끈적한 날은 생선회만 맛이 없는 게 아니 라 모든 음식이 맛없게 느껴진다. 입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참치처럼 급속 냉동한 식품을 해동해서 먹는 경우 습도는 더더욱 관계가 없다”고 말합니 다. 상대적으로 비린내가 난다는 분도 있을 겁니다. 김 사장은 “참치의 경우 해 동 뒤 1시간마다 3~5%씩 산화가 이뤄지고 더운 날에는 그 속도가 조금 빨라진 다.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는 있겠지만 큰 영향은 없다고 본다”고 합니다.

창밖에는 아직 비가 오고 있습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걸까요? 저도 궁 금증이 생깁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왜 마감이 하기 싫은 걸까요? 빗소리를 들 으며 맛있는 생선회에 소주라도 한잔 기울이고 싶은 오후입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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