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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일 기자
저, 저는 정육면체를 그립니다. 통화 가 길어질수록 면과 면이 맞닿은 정 육면체들이 한없이 확장됐던 것 같습 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기자가 된 뒤 통화 중 낙서가 현격히 줄었네요. 추궁·읍소·애걸복걸 등 통화 유형 및 상대의 다변화로 통화가 지루할 틈 이 없었거나, 상대의 발언이나 뉘앙스 에 집중해야 할 경우가 많아졌기 때 문인 듯합니다. 통화 집중도는 수습기자 시절 정점을 찍었는데요. (군대 선임병 같은 지위를 누리는) 선배들이 ‘웅얼웅얼’ 지시를 내리고 전화를 뚝 끊어버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죠. 요즘에도 불쑥불쑥 정육면체를 그리곤 합니다. ‘난 누 구? 여긴 어디?’란 마음이 절로 드는 심각한 회의나 지루한 토론회 자리에서 그 랬던 것 같습니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님께 상훈군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 그거, 제가 펴낸 이란 책에 답이 나옵니다.” 하하, 적합한 취재원을 찾은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인드 원더링’(Mind Wandering)을 한답니다. 하나의 생각에 집 중하지 않고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것, 즉 마음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현상을 의 미합니다. 통화 중 낙서는 일종의 마인드 원더링이라고 할 수 있다는군요. 특히 평 소 우리는 손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시각을 통해 대부분의 정보를 얻는데 전화를 할 때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소리를 듣는 동안 평소에 하던 걸 못하니 눈과 손 이 무심결에 헤맨다는 거죠. 언어 정보와 시각 정보, 청각 정보 간의 균형을 잡으 려는 뇌의 무의식적인 노력으로 인해 통화 중 낙서를 한다는 설명입니다. “차라 리, 눈을 감으라고 하면 낙서를 안 해요.” 그런데 이런 설명도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네요. 아직 낙서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진 것은 아니랍니다.
그나저나, 저는 왜 하필 정육면체를 그리는 걸까요? 정신과 전문의 이영문 중앙 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님한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이 단장님은 일종의 습관이 므로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고 하시네요. 정 교수님 말씀으로는 많 은 사람들이 통화 중에 ‘이름’을 쓴다고 합니다. 낙서 모양새가 복잡할수록 신경 을 써야 하므로 단순화된 도형이나 평소 가장 많이 반복해서 쓰는 글을 습관적 으로 끼적인다는 것이지요. 머리를 가득 채운 이성의 이름을 종이에 끼적이다 가 불륜이 들통 나는 대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겠네요.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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