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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분하면 벌에 잘 쏘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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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2-09-08 11:12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 김봉규

한겨레 김봉규



Q: 올여름에 산에 올랐다 두 번이나 벌에 쏘였습니다. 남편은 “아침에 씻지 않고 산에 갔기 때문에 지저분해서 벌에 쏘인 거야”라고 하고, 딸은 “다른 사람의 땀 냄새가 지독해서 벌이 정신을 잃고 도망가다가 엄마를 쏜 거야”라고 위로해줍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었는데 왜 저만 두 번씩이나 벌에 쏘였을까요? 정말 목욕재계하고 산에 갔다면 벌에 쏘이지 않았을까요?(수풀)

살다 보면 억울한 순간이 있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뛰었는데 눈앞에서 지하철 문이 스르르 닫히는 장면을 목도한다든가, 공중화장실에서 큰일을 봤는데 휴지가 딱 한 칸 남아 있을 때,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유독 나만 모기에 물릴 때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독자님은 유독 혼자만 벌에 쏘인데다 ‘지저분하다’는 타박까지 들으셨으니 그 억울함이 배가 되었으리라 사료됩니다.

간단히 답을 찾아낼 요량으로 조홍섭 환경전문기자에게 조언을 요청했습니다. 민망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드리는 안부전화였거든요. “선배, 벌에 쏘이는 건 더러워서인가요?” “촐싹거리니까 쏘이는 거지.”“아, 실은 저 말고 독자 질문인데….” 벌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만 방어 차원에서 사람을 쏜다네요. 조 기자 역시 최근에 취재차 찾은 가리왕산에서 네댓 명과 함께 벌에 쏘였다는군요. 물론 벌에 쏘인 횟수는 사람마다 달랐답니다. 누군가 벌집을 건드려놨는데 그 뒤를 지나가던 사람이 정작 범인보다 벌에 더 많이 쏘였을 가능성, 즉 ‘복불복’론을 설파했습니다.

인터넷에선 소방방재청이 내놓은 ‘벌 쏘임 예방 안전수칙’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방책으로는 △강한 냄새를 유발하는 향수·화장품·헤어스프레이 사용 자제 △노란색·흰색 등 밝은 계통 및 보푸라기나 털이 많은 재질의 의복을 피하고 가능하면 맨살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라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런 예방책만 따르면 벌에 쏘이지 않을 수 있나요? 소방방재청 관계자에게 물었습니다만, 벌 전문가에게 자문을 얻어 작성한 내용이라고 일러주더군요. 또다시 물어물어 국립생물자원관에서 근무하는 ‘벌’ 박사 여진동 연구사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향수나 화장품을 사용한다고 해서 벌이 쏘는 것은 아니랍니다. 다만, 벌이 향수 등에 포함된 특정 향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벌이 꼬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벌이 많이 꼬이다 보면 의도치 않게 벌을 위협하는 행동을 할 수 있으니, 벌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 또한 커집니다. 벌은 검은색 계통엔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답니다. 그래서 사람을 공격할 때 머리칼이 있는 부위를 많이 쏜다는군요. 사람을 많이 쏘는 건 땅벌인데, 이 친구들은 새콤달콤한 맛을 좋아해 공원이나 산에 놔둔 음료수 캔 주변에 많답니다. 야외에서 음료수 캔을 다룰 때 조심하는 게 좋겠지요.

독자님이 지난여름 벌에 쏘인 까닭을 소상히 밝혀낼 순 없었사오나, 적어도 목욕을 하지 않아서는 아니라는 결론입니다. 독자님도 모르게 주위에 있던 벌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여진동 박사는 집에서는 양봉일을 하고 있다는데요, 양봉벌은 주인을 알아보기도 하지만 여 박사는 벌에 자주 쏘인답니다. 벌 박사도 벌 쏘임은 피할 수 없다 하니, 혹여 억울함이 남아 있거들랑 푸시오소서.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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