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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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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호를 읽고

이 기사, 주목
등록 2012-09-07 20:04 수정 2020-05-03 04:26

김도연 신한은행 후속 기사 보고 싶다

가 생각났다. 권력을 차지하려는 1%들의 싸움은 ‘시나리오’가 있을 정도로 계획된 것이었다. 신한은행 권력투쟁을 다룬 특집 기사는 2009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찬찬히 읽어보면 집안싸움의 치졸함을 엿볼 수 있다.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고 조작을 하고, 사기를 친다. 이 시나리오 공개로 이백순 행장과 라응찬 회장의 옹졸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까? 법정 공판 내용과 재판 진행 과정을 후속 기사로 보고 싶다. 신한은행 직원들의 고충을 살펴본 기사도 유의미했다. 야욕에 눈먼 리더를 둔 부하 직원은 무슨 죄가 있는가. 기사는 교훈을 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 물고기가 잘 산다.

백대현 회장님 걱정은 월권

한화그룹 회장의 법정 구속에 대한 기사를 보고 아직 우리나라에 후진 부분이 많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진부하지만 너무나 맞는 표현 아닌가. 그동안 대기업 회장들은 경제개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항상 면죄부를 받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실업 고통 따위 모르고 살아왔다. 판사가 왜 경제까지 고민해야 하는지, 그건 월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불법과 편법을 넘나들던 재벌들 긴장 좀 해야 하지 않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는 내가 궁금해하던 주제가 나와 자세히 읽어봤다. 지금까지 선풍기를 틀고 자면 불안했는데 역시 잘못된 지식이었다. 이제 아이들 재울 때 선풍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장슬기 ‘의자놀이’ 슬픈 논쟁

, 책의 내용은 참 인상적이다. 소외된 자들의 아픔과 그들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게 된다. 그렇지만 ‘크로스- 이주의 트윗’에 나온 의자놀이 논쟁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커진다. 누구도 배제당하지 않는 사회가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무엇이 옳은지 하나씩 따져보기도 지친다. 끊임없이 약자들이 배제당하는 사회에 질려서일까? 슬픈 논쟁이다.

이정주 1천 년을 되돌리고 싶었던 것일까

현대 국가에서 개개인은 추상적인 사회와 계약을 맺고 자신의 권리를 일정 부분 국가에 위임한다. 그로써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다. 굳이 루소와 칸트의 진부한 이론을 꺼내들지 않아도 사회계약론은 근대 이후의 상식이었다. ‘김동춘의 폭력의 세기 vs 정의의 미래’를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지금 이 정권은 단순히 잃어버린 10년이 아닌 1천 년 정도를 되돌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공정한 사법제도를 통해서만 폭력은 용인된다. 사설 폭력이 난무하고 또 그것을 방관하는 정부. 상식이 무너진 이 시대의 종점은 ‘만인의 투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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