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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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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호를 읽고

이 기사, 주목
등록 2012-08-22 16:22 수정 2020-05-03 04:26

임성빈
직무유기엔 파직이 약

로크, 루소, 홉스의 주장처럼 국가(공권력)가 국민의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면, 국민은 자신의 자연권을 일부 포기하고 국가에 권력을 위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특집 ‘국가가 키운 폭력을 파는 괴물’에서는 지금 우리 정부가 위임받은 그 권력을 스스로 팽개치고 있다고 한다. 여러 가지 갈등을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절차를 통해 조정하지 않고, 용역업체가 가진 자의 편에 서서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도록 방조한다는 사실. 그러니 ‘폭력의 외주화’라는 표현은 적확하다. 직무유기엔 파직이 유일한 약이다.

장슬기
유신시대보다 교묘한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다. “권위주의 정권하에서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방법은 표면적으로는 문제를 빨리 해결하게 하는 듯하지만, 갈등을 더욱 증폭시켜 새로운 대결을 가져오고, 심지어는 정권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신 정권하에서의 ‘YH 사건’이다.” 특집 ‘국가가 키운 폭력을 파는 괴물’을 보며 유신시대와 현재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SJM 사건은 현 정권의 위기를 환기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폭력의 민영화는 유신시대보다 교묘하고 악랄하다.

조원영
인간은 작은 존재, 작은 것이 아름답다

희망과 대안은 언제나 반갑다. 적정기술을 다룬 표지이야기 ‘저 찬란한 햇빛, 아 아까워’는 첨단의 첨단을 달리는 우리나라에서의 적정기술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제시해주었다. 제3세계에서 유용한 임기응변식 대처가 아니라 인간과 삶, 자연을 화해시킬 가치로운 기술이라는 것. 인간은 작은 존재이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한 E. F. 슈마허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나날이 높아지는 기술의 첨탑에 갇혀 소외되는 인간이 온전히 땅에 발붙인 작고 아름다운 존재로 돌아오는 길이 어쩌면 거기에 있다.

권채원
‘막장 선교’의 기시감

세계 ‘아프리카, 미국 극우들의 막장 선교’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동성애를 부정하는 반도의 흔한 보수 기독교 모습이 떠올라서일까.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동등한 법적 보호와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케냐 헌법의 만민평등 조항마저 폐기 요청 대상이라니. 미국적 가치에는 분명 다양성의 존중이 포함될 텐데,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이를 사랑하셨다는데, 대한민국 땅에도 아프리카 땅에도 정녕 성소수자가 설 곳은 없는가. 그들이 하는 선교는 과연 누굴 위함인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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