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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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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호를 읽고

이 기사, 주목
등록 2012-08-14 17:51 수정 2020-05-03 04:26

조원영 이 눈물 나는 언어를 직시해야

‘시가 돌아왔다’는 첫 문장이 먹먹하다. 표지이야기 ‘참담한 현실, 오래된 미래, 시의 귀환’을 복잡한 기분으로 읽었다. 출판사의 열기도, 시단의 새로운 시도와 그에 대한 관심도 시를 사랑했던 국문학도로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혹독한 현실이 호출한 절규와도 같은 언어임을 떠올리면 그 현실에서 발버둥쳐야 하는 시민으로서 답답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마주한 이 눈물 나는 언어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리라. ‘사람의 말을, 아름답고 정의로운 모든 문학의 마지막 말, 그 말을.’

김자경 살벌하다, ‘죽이는’ 라면 국물

새댁 4개월차, 라면 국물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직접 음식을 해먹으며 알게 되었다. 얼큰한 찌개에는 얼마나 많은 소금과 간장이 필요한지, 달콤한 쿠키에는 얼마나 많은 설탕이 필요한지. 무시무시한 양이었다. ‘조미료는 쓰지 않고 최대한 싱겁게’를 되뇌며 만들어도 이 정도인데 사먹는 음식과 라면은 오죽할까. 기획 ‘라면 국물이 죽여줘요’라는 제목이 살벌하게 다가온다. ‘문제는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진 나의 입맛’이라는 라면 공장 아저씨의 말이 각성 효과를 준다. 좀 오래가야 할 텐데.

임성빈 기무사라는 ‘멍멍이’

촌스러워서 못 봐주겠다. 기무사라는 ‘멍멍이’ 말이다. 김동춘 교수의 ‘기무사는 21세기 군주의 근위병’에서 보듯 21세기 한국이 아니라 왕조시대에나 어울릴 근위대가 아직도 사람들을 들쑤시고 다니는 꼴이 가관이다. 멍멍이들은 주인한테 충성하는 법.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이름을 바꿔가면서 변함없이 주인을 비방하는 자들을 물어뜯고 있다. 더욱 가관인 건 비방하는 사람을 신고한 왕조시대 백성이고, 사람 물어뜯는 걸 합법적인 행위로 인정한 신하다. 멍멍이한테 진짜 주인을 알려주려면 먼저 왕조시대에서 벗어나야지.

정주 ‘모두가 다 아는 비밀’이 정의로 거듭나길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광주에서 전학 온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이 있다. 1980년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에 살해된 남성의 처참한 주검 사진이었다. 레드 기획 ‘마침내 을 보았다’를 읽으며 그 사진이 뇌리를 스쳤다. 재판도 처벌도 끝났다고 한다. 그러나 80년 광주는 모두가 아는 비밀로 남아 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새해가 되면 유력 정치인들의 세배를 받고 자신의 호를 딴 기념공원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 흥행해 모두가 아는 비밀이 진실로, 정의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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