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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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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만 하고 시간도 있는데 왜 하기 싫은 걸까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록 2012-07-05 11:43 수정 2020-05-03 04:26


Q. 해야만 하고 할 능력도 있고 할 시간도 있는데 왜 하기 싫은 걸까요? 혼자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모르겠어서 질문합니다.(ga young lee)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월요일, 화요일 회사에 앉아 있었습니다. 거저 앉아 있었습니다. 어제도 한가했습니다. 어슬렁거리며 3층과 6층과 옥상을 다녔습니다. 오늘, 끝장으로 바쁩니다. 그런데 저는 이제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마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오늘이 바쁠 거라는 것을 월요일부터 알고 있었는데요.

지금은 을 나간 김○○ 기자가 일가견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김 기자는 마감이 목구멍을 치고 들어올 때까지 여유롭게 자신의 생활을 즐기다가,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보자 식의 정면승부를 벌였습니다. “일을 마감 때까지 미루면 시간을 알뜰하게 쓰는 것 아니겠느냐”는 말을 들을 줄 알았습니다. “늘 최선을 다한다. 최신의 뉴스를 최고로 전달하기 위해서 끝까지 고민을 한다. 욕심 때문에 일이 늦는다.” 그는 자신이 어릴 때부터 ‘자기 주도 학습’이 잘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자신의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딸은 알아서 잘하고, 아들은 ‘엄마 저를 통제해주세요’ 식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마감이 늦기로 유명했던 필자 김△△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도 “안 하면서 잘하고 싶은 욕심은 많아서 미루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마감에 몰리게 되면 순발력에 기대서 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다시 자괴감에 빠지고,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욕심 내다가 늦는,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은 (더난출판사 펴냄)에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게으름이라고 결론짓고, 이 게으름을 세 가지로 나눕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로 시간을 보내는 ‘위장된 게으름’이 첫째입니다. 오늘 제가 발을 동동 구르는 와중에도 9층의 정원을 거닐며 비를 기다린 것과 흡사합니다. 머리 아픈 문제를 자꾸만 미루는 ‘선택 회피 증후군’이 둘째입니다. 제가 어젯밤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미드를 보며 잠든 것과 비슷합니다. 셋째는 확실히 될 때까지 미루는 ‘완벽주의’라고 합니다.

S기자는 자신이 마감이 늦는 것은 ‘갑상선 기능 저하증’ 때문이라고 합니다. 병 또한 게으름을 일으키긴 합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 외에도 우울증, 영양학적 이상, 신체적 장기 이상(내분비 포함, 애디슨병), 빈혈, 불면증, 조절되지 않는 통증, 만성 피로 증후군, 약물 복용(안정제 등등), 감염, 폐질환, 심부전, 신부전, 당뇨, 부종양성증후군, 항암치료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의학적 원인은 검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S기자에게 “병을 알고 있다면 일을 나눠서 조금씩 하면 될 것 아닌가”라고 물었더니 “합병증이다. 그런 성격이 아닌 사람이 이 병에 걸리는 것이 문제”라고 대답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일곱 대죄’가 있습니다. 시기·탐식·화·탐욕·정욕·자만·게으름입니다. 이 ‘죄악’이라고 여겨져온 것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것이 아이로니컬하게도 ‘열망’이라는 것이지요. 일의 노예인 우리들은 게으름으로 반항합니다. “노예들은 지체와 느림으로써 권위에 도전하고, 침묵으로써 시간을 늘리고, 노래로써 시간을 줄이고, 불규칙한 출근과 예고 없는 결근과 불쑥 사라졌다가 툭 튀어나오는 몸짓에서 시간의 자유를 발견했다.”(제이 그리피스,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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