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른들은 잔소리를 하거나 꾸중을 할 때 한 얘기를 계속 반복하는 걸까요?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반복 횟수가 높아지는 것 같은데요. 알았다고 해도 ‘그러니까’로 시작해서 또 같은 말, 아니라고 하면 ‘그게 아니라’로 시작해서 또 같은 말. 잔소리의 반복-_-너무 지겨워요ㅠ (Yeji An)
참, 참신한 질문입니다만, 이걸 어디다 물어봐야 할지 대략 난감입니다. 생각해보면 잔소리도 싫지만, 반복적인 잔소리는 더 싫죠. 좋은 얘기도 자꾸 들으면 싫은데 하물며 안 좋은 얘길 자꾸 들으면 멘탈 붕괴되기 십상입니다. 사실 저부터 반성할 일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도 잔소리가 늘었다고 아내에게 구박을 받곤 합니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얘기하는 저를 보며 나도 늙었구나, 하고 느낀 적도 있더랬습니다.
어른들은 왜 그러는 걸까요? 뒷자리의 이세영 기자는 “자기가 한 말을 까먹어서 그런 거 아니겠냐”고 어른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디스’하는 것도 아닌 답을 내놨습니다. 그 옆의 신윤동욱 기자는 “한의원이나 심리학과에 문의해보라”고 어른다운(?) 조언을 해줬습니다.
그리하여 김원식 한의사에게 물었습니다. 김 한의사는 웃음을 머금고 조근조근 답했습니다. “한의학적으로 인간에게는 정(精)·기(氣)·신(神)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이가 들면 정이 부족하게 되는데요. 그러면 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신도 제 역할을 못하게 됩니다. 신은 심장과 관련이 있거든요. 마음의 장기라는 심장(心臟)이라는 말처럼, 동양의학에서 심장은 또 뇌와 관련이 깊습니다. 심장이 안 좋은 사람은 건망증도 심하거든요.”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고 본 동양철학의 심오한 진리가 뼛속 깊이 와닿는 순간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결국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은 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안네마리 노르덴의 동화 을 보면 단 하루만이라도 간섭없이 살고 싶은 주인공 푸셀이 자신의 소원대로 ‘잔소리 없는 날’을 보내게 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푸셀은 평소에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실컷 해보며 해방감을 느끼긴 하지만, 하루 종일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습니다. 좌충우돌하는 아이와, 그런 아이에게 잔소리를 할 수 없었던 부모의 상황을 재치있는 입담으로 그려낸 동화는 별 잔소리없이 끝납니다.
어찌보면 지금의 우리를 만든 건, 듣기 싫어서 한 귀로 흘려 들었던 부모님과 주위 어른들의 반복적인 잔소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했던 얘길 자꾸 반복하는 분이 주위에 계시면, 한편으로는 그러려니하시며 도리어 그분 마음의 장기(심장)에 관심을 가져보시는 것도 잔소리에 대처하는 한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탄핵으로 나갔다 탄핵 앞에 다시 선 최상목…“국정 안정 최선”
물에 빠진 늙은 개를 건져주자 벌어진 일 [아침햇발]
윤석열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니까 끌어내”…국회 장악 지시
“이재명·우원식·한동훈부터 체포하라” 계엄의 밤 방첩사 단톡방
“교수님, 추해지지 마십시오”…‘12·3 내란 옹호’ 선언에 답한 학생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가결…헌정사상 처음
“백령도 통째 날아갈 뻔…권력 지키려 목숨을 수단처럼 쓰다니”
김건희의 종묘 무단 차담회, 국가유산청이 사과문 냈다
“비상대권으로 나라 정상화”...윤석열 3월부터 내란 생각했다
조갑제 “윤석열 탄핵 사유, 박근혜의 만배…세상이 만만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