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라면 조리법을 보면 면과 분말수프를 함께 넣으라고 돼 있는데, 어떤 사람은 면부터 끓이고 먹기 직전에 수프를 넣어야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수프는 언제 넣는 게 맛있나요?(고이왕)
A. 먼저 편집국 근처 편의점을 찾았습니다. 라면 포장지에 나와 있는 조리법을 살펴봤습니다. 라면 회사들이 조리법을 가장 잘 알겠지요. 신라면이나 삼양라면, 안성탕면, 진라면 등 하나씩 집어들어 봤습니다. 정말로 조리법이 모두 대동소이하네요. 끓는 물에 면과 수프를 시차 없이 같이 넣으라고 합니다.
‘ㄹ’ 라면집이 생각났습니다. 취직 공부하던 시절 자주 찾던 도서관 앞에 있는 맛집입니다. 나름대로 맛이 괜찮아서 언론에도 자주 소개됐습니다. 전화를 해봤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받으십니다. 중국 출신 아주머니이신 듯합니다. 의사 전달이 잘되지 않네요. 사장님을 바꿔달라고 부탁합니다. 목소리가 굵은 남자분이 받으십니다. 먼저 기자 신분을 밝히고, 이 복잡한 질문을 가장 심플하게, 콤팩트하게 드렸습니다. 끝까지 질문을 듣던 남자분이 말씀하십니다. “저, 이 집 손님인데요?” 사장님은 마침 자리를 비웠고, 일하는 아주머니가 전화기를 바꿔줬답니다. 취재가 좀 꼬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님이라도 붙잡아봅니다. 그는 잘 모르겠다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습니다. 매정하군요. 손님 테이블 위에 라면이 이미 놓여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장난전화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쩝.
서울 강남구의 라멘 전문점 ‘한성문고’에 전화를 걸어봅니다. 김연훈 대표가 답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수프를 먼저 넣는 게 낫습니다. 물에 소금기가 들어가면 물의 끓는점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수프를 먼저 넣으면 면이 빠르게 익으며 질감이 좋아집니다. 스파게티 면을 익힐 때, 물에 소금을 뿌리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면 왜 면을 빨리 익히면 라면 맛이 더 좋을까요? 이 질문은 전양일 삼양라면 식품연구소 소장님에게 던졌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라면 면발에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성분이 있습니다. 라면을 높은 온도에서 끓이면 면발의 탄수화물 성분이 부드럽게 점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 과정을 ‘호화’라고 한답니다. 열이 충분히 가해지지 않으면 면의 호화가 제대로 안 이뤄집니다. 호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면의 질감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뜨거운 물을 제대로 쓰지 않은 컵라면을 먹는 느낌을 연상하면 됩니다.
궁금증이 꼬리를 뭅니다. 그러면 굳이 짧은 시간에 높은 열을 줄 게 아니라 낮은 열에 천천히 오래 끓여도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면발 속의 단백질 성분이 열쇠입니다. 이 성분은 끓는 물속에서도 라면 면발이 꼬들꼬들하게 유지되게 하는 구실을 합니다. 밥에는 이 성분이 없어서 물속에서 끓이면 상대적으로 잘 퍼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단백질 성분도 4분 넘게 끓는 물 안에 놓아두면 힘을 잃습니다. 면발이 퍼진다는 얘기죠. 따라서 라면을 맛있게 먹으려면 4분 안에 라면을 빨리 익히는 것이 열쇠입니다. 따라서 수프를 면보다 먼저 넣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질문은 또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왜 라면 회사들은 수프를 먼저 넣으라고 조리법에서 권유하지 않을까요? 회사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됩니다. 첫째, 소비자가 수프를 먼저 넣고 끓이다 타이밍을 놓쳐 물이 졸아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면을 먼저 넣으면 끓는 물에서 수증기가 덜 올라오므로 조리하기가 간편한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맛과 편의, 두 미세한 차이 사이에서 소비자가 판단할 몫이 남아 있다는 뜻이겠지요.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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