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6살 아들이 “엄마, 얼굴에서 왜 코만 나와 있어?”라고 묻더군요. 생각해보니 유인원을 포함한 다른 동물들은 코가 크지 않고, 몸집이 거대한 공룡도 구멍으로만 표시된 정도였는데, 왜 사람만 코가 튀어나와 있죠? 물론 아들에게 별 신통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부탁드립니다.(독자 김재진)
A. 한창 질문이 많을 때지요. 좋은 엄마십니다. 아이 눈높이에 맞고 신통하기까지 한 답변을 할 자신이 없으면서도, 여러 질문 중에서 뽑은 첫째 이유입니다. 둘째는 코가 제 어릴 적 콤플렉스였기 때문입니다. 코가 높지 않고 좀 들린 편이었는데 심술꾸러기 형들이 “비 오면 들이치겠다”고 무지 놀렸죠. 버크셔라는 돼지 품종에 빗대 “빠꾸샤”라고 부르면서요. 물론 지금은 과학기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자연 치유됐습니다.
우선 제 아이와 같이 읽던 시리즈(비룡소 펴냄)를 뒤져봤습니다. 아이들이 과학과 관련된 질문을 하면 할아버지 과학자 시루스가 친절하게 답을 해주는 책인데 수많은 질문 중에 이 질문은 없더군요. 좀 쉽게 가보려 했는데 실패!
그래서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룬다는 인류학, 인류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 체질인류학을 전공하신 박순영 교수(서울대 인류학과)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코가 튀어나오지 않아 구멍만 있는 것처럼 보여도 포유류에게는 사람의 코와 같은 기능을 하는 기관이 있다는군요. 물론 코뼈도 있고요. 그런데 앞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이유는 뼈의 구조와 관련이 있답니다. 머리뼈(두개골)와 얼굴뼈(안면골)로 나뉘어 있는데, 사람은 위아래로 있는 반면 동물들은 앞뒤로 있다는 거죠. 박 교수님은 설명을 하며 전제를 달았습니다. “뚜렷한 학설이 있는 것은 아니고, 사람 뼈와 동물 뼈 등을 많이 관찰해온 경험과 해부학적 상식에 기반을 둔 추정”이라고 말입니다.
사람의 코는 왜 튀어나오게 됐을까. 주변 환경에 적응하려는 진화와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인원→원시인류→현대 인류로 갈수록 코가 높아지지요. 기후에 따라 사람 코의 돌출 정도가 다른 것을 봐도 그렇습니다. 지구촌에서 덥고 습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코가 낮고 콧구멍이 큰 반면에 북유럽 등 추운 지역 사람들은 코가 높고 콧구멍이 작지요. 찬 공기가 뇌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코 안에서 데운 뒤에 몸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거랍니다. 아이스크림처럼 찬 음식을 갑자기 먹으면 머리가 띵할 때가 있잖아요. 물론 이것도 학계에서 공인된 학설은 아닙니다. 예외도 있고요.
‘무릎팍 도사’처럼 화끈하고 신통한 답변은 아니더라도, “인류가 살아남으려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진화 과정에서 생긴 변화”라고 아이에게 답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창조론을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빚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겠지만요. 어떻게 대답해도 ‘질문 기계’ 시절 아이의 질문은 끝없이 이어질 겁니다. 적자생존, 진화 같은 어려운 개념을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쉬운 말로 어떻게 풀이할지는 독자님의 숙제로 남깁니다. 질문 공세에 응대하다 지치면 이렇게 답해보세요. “사람 코가 앞으로 튀어나오게 된 이유를 학자들도 아직 분명하게 모른대. ○○이가 나중에 공부해서 알려줄래?” 제가 즐겨 쓰던 방법입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