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소년이었던 이는 요즘 매일 목욕탕에 갑니다. 무슨 호텔 사우나 회원권이라도 생긴 거 아닙니다. 얼마 전 동네 스포츠센터 정기권을 끊었는데, 거기에 딸린 목욕탕이 그럴듯하거든요. 소년 시절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와 때 밀러 가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 목욕비가 400원인가 했어요. 어쨌든, 동네가 그래서 그런지 젊은 사람보다 40~50대가 많습니다. 매일매일 탕에 가며 깨달았습니다. 한때 소년이었던 이는 참, 정말로 작은 일에 분노한다는 것을.
냉탕에서는 누군가 쪼그려뛰기를 하고 있습니다. 쉬지도 않아요. 해병대 출신인 거 같습니다. 바로 옆 뜨거운 온탕에서는 도통 알 수 없는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그러다 서로 탕을 바꿔 또 그러네요. 다 자기 집 탕이에요. 샤워기 쪽에서는 알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든 채, 흡사 도가 양생술의 도인체조를 하는 듯한 자세로 3분째 저러고 있네요. 참 민망해요. 이분들은 두 명만 모이면 탕이 떠나가라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죠. 탕에서 나와서는 드라이어로 말리라는 머리털뿐만 아니라 발가락 사이부터 말리지 말았으면 하는 부위까지 정성스레 ‘따순’ 바람을 불어넣고 있어요. 철퍽철퍽, 얼굴에 바르라는 스킨을 오일이라도 되는 양 온몸에 바르죠. 발라달라고 할까 무서워요. 이분들은 남 싫어하는 일은 단체로 다 하면서 자기가 조금이라도 싫은 일은 절대로 못 참아요. 제가 쓰던 샤워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자, 한 아저씨가 와서는 말도 없이 휙 하니 수도꼭지를 돌려버립디다. 저도 내일모레면 40대예요. 과태료 수준도 못 되는 일에 ‘저질 법치주의’를 내세우며 이러다 나라가 망한다고 설레발치는 법무부나 가 왜 이런 거 방치하나 모르겠어요. 하긴 이거 안 지킨다고 쇠고랑 안 차요. 경찰 출동 안 해요.
김금래 여성부 장관 후보.
너는 왜 작은 일에만 분노하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우리 다들 그러잖아요. 그럼 우리 조금 큰 거에 분노해볼까요.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국회 인준안 처리가 하세월이네요. 이거 애매하지 않아요.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혼자 천안함 질문하고 답하는 쇼를 하더니, 등이 또다시 왜곡하며 이 사달이 벌어졌죠. 행정안전부가 이소선 어머님 훈장 추서를 거부했네요. 이거 애매하지 않아요. 나랏돈으로 월급 받고 일하는 고위 공무원은, 때 되면 홍조근정훈장이니 뭐니 자동빵으로 줘요. 값 떨어진 훈장, 안 받고 말지요. 김금래 여성부 장관 후보자. 이 양반도 애매하지 않아요. 분당의 47평 아파트를 9천만원에 샀대요. 마법소녀인가요? ‘머글’이 보는 앞에서 마법을 썼으니 마법부에 끌려가세요. 정전 대란. 이것도 애매하지 않아요. 한전이 전 국민의 폭력성을 실험해보려고 전원을 내렸나봐요. 화나는 걸 보니 실험 성공했네요. 전원 내리는 실험이라니, 문화방송 김재철 사장이 따로 없어요.
한때 소년이었던 이는 어른이 되면 조금 큰일에 분노할 줄 알았습니다만, 목욕탕 알몸 아저씨들보다 뒤로 밀린 한 분이 더 계세요. 이명박 대통령. 이분 특히 애매하지 않아요. 다 자기가 해봤대요. 야구장에서 뽀뽀까지 해봤어요. 법무부·조선일보 선생님, 이거 공연음란죄 아닌가요? 아니면 말고요. 원래 검찰이 그렇잖아요, 젠장.
추신. 지난호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자기야 편)를 썼다가 “X기자가 김남일 아니냐”는 댓글을 봤습니다. 한때 소년이었던 이는 심히 분노합니다. 저 아닙니다. X는 욕이잖아요. 차마 기사에 쓸 수 없을 때 쓰는 우리만의 약속이잖아요. 욕할 때 Y라고 써도 쇠고랑 차지는 않지만요.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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