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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은 속 터진다

[맛있는 뉴스] 부글부글
등록 2011-09-01 11:37 수정 2020-05-03 04:26

속 타는 일이다. 미국의 갑부 워런 버핏이 세금을 더 내겠다고 나댄다. 프랑스 부자들도 세금을 늘려달라고 나서고 있다. 우리 한국의 부유층은 그 정도로 동요하지 않는다. 그런데 답답한 사람들은 있다. 외국 부자들 보고 박수 치는 사람들이다. 뭘 모르는 거다. 진실을 얘기해주겠다. 그 나라들, 별거 아니다. 멀리 보지 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 물 건너야만 보이는 게 아니다. 우리 부유층은 지난 8월24일 엄청난 헌신을 몸소 보여줬다. 못 믿겠는가? 우리 부자들은 부유층 아이들에게도 의무 급식을 하자는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우리 아이들 밥값은 우리가 낼 테니, 아까운 세금 쓰지 말라는 ‘짠돌이’ 정신을 몸소 보여줬다. 아파트 평형이 클수록, 부자 동네일수록 투표를 많이 했다. 솔선수범했다. 보수적인 시장님의 얘기라서 따라간 거 ‘절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공짜밥’을 마다하는 우리 부자들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워런 버핏, 저리 가라다.

속 쓰리는 일이다. 주민투표의 투표함을 열지도 못했다. 대선 출마도 접고, 시장직까지 걸고, 여기에 정치 생명까지 얹어서 ‘풀베팅’했다. 속 편할 이유가 없다. 정말 투표가 끝난 날 한숨도 못 잤다. 개표가 무산되니 덜컥 겁부터 났다. 괜히 고집 부렸다 싶었다. 얌전히 있으면 될 걸, 가만있는 보수단체 들쑤셔서 서명까지 받아버렸다. 그러다가 세금을 182억원이나 썼다. 비서관 몰래 한번 계산해봤다. 내년 초등학생 급식비가 한 명에 2580원이다. 머릿수대로 나누니, 무려 705만4263인분어치 밥값이다.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나면 어쩌나. 182억원 물어내라고 하면 어쩌나. 하루빨리 시청을 떠나야겠다, 싶었다. 서울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가야겠다. 그런데 남의 속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홍준표 대표는 10월까지 물러나지 말라고 으름장이었다. 야당은 고마울 뿐이다. 당장 물러나라고 옆구리를 계속 찔렀다. 기다려라, 안 그래도 멀리멀리 가련다.

속 터질 일이다. 2년 전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다.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UAE)에 건너가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할 때만 해도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렸다. 방송사에서는 현지의 발표 내용을 생방송으로 보내줬고, 신문에서는 앞다퉈 1면에 기사를 실었다. 흐뭇했다. 비서관 몰래 당시 신문을 찾아봤다. 우리 조·중·동, 침 좀 튀었다. “이 대통령 사르코지 꺾었다”(조선), “MB, ‘입술 터진 보람 있네’”(중앙), “이 대통령 ‘스킨십 결정타’”(동아). 잘하면 칭찬받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근데 이젠 뭐냔 말이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등을 돌며 12조원어치 자원 개발권을 따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반응이 영 썰렁하다. 관심 끌려고 낙타까지 타봤다(사진). 그래도 반응이 시원찮다. 신문을 보니까 가 제일 잘 써줬다. 6면 머리기사였다. 는 거의 단신으로 다뤘다. 중동이는 8면 뒤로 기사를 밀어버렸다. 뭐, UAE 때 ‘뻥’도 섞이긴 했다. 인정한다. 수주액도 좀 부풀렸고, 공사비 절반은 우리가 빌려주기로 했다. UAE에 특전부대도 파견하기로 했다. 그래도 그렇지, 대통령 대접이 이게 뭐냐. 대통령이 대체, 무슨, 양치기 소년이냔 말이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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