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례라고 했다.
장관님 말씀이다. 공무원들이 기업체로부터 룸살롱과 나이트클럽에서 두루 향응을 받았다. 연찬회의 행사비는 3억원이었다. 그 가운데 절반은 누구 입으로 갔는지도 몰랐다. 장관님이 나섰다. “관례적으로 해온 일이었지만 부적절한 행위”라고 했다. 그러니까, 적절하진 않지만, 너도나도 다 해오던 거라는 말이다. 장관님 말씀이 옳다. 관례 맞다. 환경부 공무원들도 알고 보니 산하기관에서 저녁 식사비와 숙박비를 끌어다 썼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국토해양부에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이지만, 여기도 ‘관례’를 따르긴 했다. 중앙 정부부처를 상대로 하는 기업들의 접대는 사실 어제오늘 얘기도 아니란다. 국무총리실이 눈치 없이 분위기 파악 못하고 ‘관례’를 건드린 거다. 하필, 국토부가 매를 맞은 거다. 지난해 총리실이 실시한 정부기관 청렴도 조사에서 국토부는 2위였다. 그러니 둘 가운데 하나다. 조사 결과가 틀렸거나, 정부기관 전체가 제정신이 아니거나. 어쨌든, 장관님은 억울하다.
망국노라고 했다.
여당 중진의 말씀이다. 반값 등록금을 추진하는 같은 당 원내대표의 면전에서 말했다. “요즘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은 나라를 망치는 망국노라는 소리를 듣고도 남을 것이다”라고. 언뜻 보면 독한 말이다. 내용을 뜯어보면 중진님의 섬세한 배려가 숨어 있다. 무슨 소리냐고? 중진님은 원래 원내대표를 바로 ‘망국노’라고 손가락질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건 좀 심하다고 봤다. 그래서 ‘망국노라는 소리가 있다’ 정도로 톤을 낮췄다. 그렇게 계파 모임에서 미리 상의했다. 현장에서 조금 흥분해서 ‘소리를 듣고도 남는다’라고 사족을 약간 붙였을 뿐이다. 듣는 이의 기분을 생각한 섬세한 배려가 돋보인다. 세련된 수사다. 6선 의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사실 그의 따뜻한 배려에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다. 의원님의 가족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부글부글, 이 자리에서 단독 공개하겠다. 19년 전 이야기다. 부친께서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셨다. 대표 공약이 ‘반값 아파트’셨다. 엄청났다. 등록금 따위는 비교도 안 됐다. 선심의 규모로 치면, 에베레스트산과 동네 뒷산 차이다. 그러니 다음 둘 가운데 하나다. 아버지가 ‘망국노라는 소리가 있게 되거나’, 아들의 말이 ‘망언’이 돼버린다. 어쨌든, 우리 의원님은 섬세했다.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우리 시장님 말씀이다. 아이들 무료로 밥 먹이는 사업에 시장님이 결연히 나섰다. 아니, 말실수였다. ‘아이들 무료로 밥 먹이는 걸 반대하는’ 사업에 시장님이 결연히 나섰다. 시장은 무상급식 반대운동에 나서며 “복지 포퓰리즘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자평하셨다. 서울시내 초등학교에서 무상급식을 하려면 3924억원이 필요하다. 시장님은 아이들 밥 대신 ‘폼 나는’ 건축사업을 선택하셨다. 서울시 신청사 건립에 3천억원을 쓰셨고,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건축에 4200억원을 쓰셨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에 5400억원을 부었다. 건물 신축에는 후했지만, 아이들 공짜 밥 먹이는 데는 유달리 예산을 걱정하셨다. 그래서 시장님은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신문 광고비에 4억원을 썼고,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주민투표 비용에 180억원을 쓸 생각이다. 나라 재정을 걱정하지만, 22조원을 붓는 4대강 사업에는 침묵하셨다. 무상급식을 ‘부자 급식’으로 마구 비판하지만, 정작 18조원 ‘부자 감세’에는 또 침묵하셨다. 시장님의 소신은 유독 아이들 밥값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시장님의 갈팡질팡 언행은 풀이하기 난해할 뿐이다. 어쨌든, 우리 아이들만 피곤하게 됐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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