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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감독들은 왜 득점 순간에도 표정 없이 앉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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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1-06-01 11:23 수정 2020-05-03 04:26
Q. 축구 경기에서는 골이 들어가면 감독들이 흥분해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데, 야구 감독들은 득점 순간에도 표정의 변화 없이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왜 그런 건가요?(lepain01)
류중일 프로야구 삼성 감독

류중일 프로야구 삼성 감독

A. 최용수 FC서울 감독대행의 ‘난동 세리머니’ 덕분에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축구 감독이나 선수들은 사인처럼 특유의 세리머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조제 모리뉴 감독은 경기장으로 뛰어들어가고 미끄럼도 타고 건들건들 춤도 춥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어퍼컷을 날리는 세리머니로 유명합니다. 박지성 선수가 소속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감독조차 일흔 나이에도 골이 들어가면 아이처럼 팔짝팔짝 뜁니다. 그런데 왜 야구 감독은 결정타가 터져도 가만히 있을까요?

야구 담당 김양희 기자의 답은 “야구 감독도 한다”입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지난 4월 감독 데뷔전에서 채태인의 역전 만루홈런이 나오자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였습니다. “나도 지난해에 했다.” 박종훈 감독도 2010년 감독 데뷔전에서 ‘박수 세리머니’를 해봤다고 숟가락을 얹었습니다. 요즘 젊은 야구 감독들은 간혹 세리머니를 합니다. 그래도 어디 선수 시절에는 광고판에 올라갔다가 미끄러지고 감독 자리에서도 돌발 세리머니를 시도하는 최용수 감독만 하겠습니까. 야구 감독들의 세리머니는 대체로 점잖습니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는 “야구 감독은 그라운드에 뛰어들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야구 감독들은 보통 벤치를 지킵니다. 투수를 교체하거나 심판에게 항의하러 나올 때가 아니면 좀처럼 더그아웃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축구 감독은 터치라인 근처까지 나가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지만 야구 감독은 코치를 통해 지시하며 자리를 지킵니다. 세리머니를 하고 싶어도 무대가 없는 셈입니다. 을 쓴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야구는 축구보다 선수와 감독들의 간격이 크다. 감독은 무게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기쁜 순간에도 기쁘다고 표현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전합니다.

해설자로 그라운드에 복귀한 이순철 전 LG 트윈스 감독은 “감독이 일희일비하면 팀이 흔들린다”고 덧붙입니다. 야구 선수들은 감독의 표정을 늘 살핍니다. 야구는 긴 경기입니다. 정적이다가 어느 순간 동적인 대목이 찾아옵니다. 경기의 매 순간이 변수입니다. 이순철 전 감독은 “못한다고 감독이 인상을 확 찌푸리면 안 되고 잘한다고 팀을 방심 분위기로 이끌어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전 감독은 감독 시절 경기가 극적으로 풀릴 때 저도 모르게 손을 확 치켜든 일은 몇 번 있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순간 나가서 선수와 손을 마주칠 수야 있겠지만, 좋다고 그라운드에 뛰어드는 것은 절대 금물이랍니다. 감독이 한 회에 2차례 그라운드에 오르면 투수 교체 의사 표시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박동희 기자는 “득점했을 때 상대를 자극하면 안 된다”는 야구의 불문율을 상기시킵니다. 펄펄 뛰며 좋아하다가 상대편 투수한테 공을 맞은 미국 메이저리그 감독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팀은 선수들이 자만해서 남은 경기를 망칠까봐 표정 관리하는 감독들이 대부분이랍니다. 아무래도 야구 세리머니는 방공호(더그아웃)에 있는 감독 대신 선수가 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그런데 이번 시즌엔 ‘물폭탄 세리머니’가 금지됐습니다. 선수들도 점잖아질까 걱정입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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