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냉장고에 넣어둔 물이 없어 미지근한 물을 마셨는데 맛이 없더군요. 왜 미지근한 물은 맛이 없죠? (uiemo.ku@gmail.com)
A. 질문 문장의 글자 수를 세어봤습니다. 정확히 서른여섯 자. 이번주 질문지 가운데 가장 짧았습니다. 다른 질문지에는 다 있는 자기소개 문장이나 질문을 던지게 된 구체적 정황 설명도 없습니다. 함께 자취하는 대학 친구가 전날 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 휴일 오전 뒤늦게 일어나, 기름이 잔뜩 낀 머리카락을 긁적이곤 제 옆구리를 푹 찌르며 “야 인마, 생수가 왜 이렇게 미지근하냐?”고 묻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독자님이 원효대사에게 질문했다면, 당장 독자님 머리에 죽비가 떨어졌겠지요. “밤에 달게 마신 물이 아침에 확인해보니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는 법. 미지근한 물도 맛있다고 마음먹으면 되느니라!” 원효라면 이렇게 답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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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분명한 건, 맛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만화가 허영만씨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고 썼습니다. 물맛도 그럴 겁니다. 독자님이 한여름 낮에 10km 마라톤을 완주한 직후라면 미지근한 물도 꿀맛일 겁니다. 막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독자님에게 배우 조여정처럼 생긴 독자님의 여자친구가- 그러니까 만약 있다면 말입니다- 탱크톱을 입고 한 잔의 미지근한 물을 건넸다고 가정해봅시다. 맛이 어떨까요?
그러므로 이제 제가 드릴 답변은 상황과 조건을 없앤 ‘미지근한’ 답변일 겁니다. 모든 일반론의 운명입니다. 다행히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에서 물맛에 대해 답변한 대목이 있군요. “물마다 느낌이 다른데 이는 물이 지니고 있는 기운이 다르기 때문이다. 옛 여인들이 같은 우물물이라도 이른 새벽 첫 두레박 물을 용안수라 하여 귀히 여긴 것처럼, 좋은 물의 조건을 정신적 활동 안에서 찾을 수도 있다.” 여기서도 ‘새벽 첫 물’이 좋은 물로 꼽힙니다. 온도가 물맛에 영향을 끼침을 짐작하게 합니다.
물맛을 좌우하는 대표적 요소로 보통 무기질 함량이 꼽힙니다. 칼슘·마그네슘을 적게 함유하면 연수(약한 물)이고 많으면 경수(센물)입니다. 물의 무기질 함량은 맥주맛도 좌우합니다. ‘질감’(mouth feel)에 영향을 줍니다. 연수로 만든 맥주는 더 부드럽습니다. 맥주광들이 그다음으로 민감하게 따지는 요소가 서빙 온도입니다. 미지근한 맥주맛을 상상해보자 이겁니다.
‘풀무원 샘물’은 좋은 물맛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고온다습한 곳을 피해 차고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며 “샘물 뚜껑을 열면 미생물 등 세균이 증식할 우려가 있으므로 가급적 이른 시간 안에 마셔야 한다. 특히 20℃ 이하로 차게 마실 때 맛이 좋다”고 밝혔습니다. “뚜껑을 연 뒤의 보관도 중요하지만 뚜껑을 열기 전의 보관도 중요하다. 특히 직사광선이 있는 곳은 피하고, 건조하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페트병은 직사광선을 받으면 아세트알데히드가 물에 녹아들어 물맛을 변질시킬 수 있다”고 풀무원은 덧붙입니다. ‘직사광선을 받은 미지근함’과 ‘그냥 미지근함’의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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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답변이 부족하시다면 제가 탱크톱을 입고 독자님 댁에 찾아가 미지근한 물 나눠마시며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꾸벅.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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