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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귀는 소머즈 귀인가요?

등록 2010-12-03 10:55 수정 2020-05-03 04:26
<font color="#C21A8D"><font size="3">Q. </font>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얄미운 직원이 생기게 마련이잖아요. 사무실에서 친한 동료와 함께 그런 직원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속닥속닥 뒷담화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문제의 얄미운 직원이 갑자기 나타나면 누군가 이런 말을 하죠.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눈에 보이지 않던 사람이 나타날 때 우리는 왜 그런 말을 할까요? 호랑이 귀는 소머즈였던 걸까요?(이민정)</font>
4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 열린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유시민의원과 배기선의원이 귓엣말을 하고 있다.김경호기자jijae@hani.co.kr

4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 열린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 유시민의원과 배기선의원이 귓엣말을 하고 있다.김경호기자jijae@hani.co.kr

<font color="#008ABD"><font size="3">A.</font></font> 실제로 속담 속 고양잇과에 속하는 동물 대부분이 그렇듯, 호랑이의 청력은 매우 좋다고 합니다. 십수 년째 한국 호랑이를 쫓고 있는 ‘호랑이 추격자’ 임순남 한국호랑이보호협회 회장의 말인데요, 호랑이는 청력이 워낙 좋아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짐승의 낙엽 밟는 소리를 듣고 사냥 방향을 정할 정도랍니다.

뭐, 그렇다고 그 ‘얄미운 직원’의 청력이 호랑이만큼 좋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속담의 풀이는 이렇습니다. 1. 깊은 산에 있는 호랑이조차 저에 대해 이야기하면 찾아온다는 뜻으로, 어느 곳에서나 그 자리에 없다고 남을 흉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 2.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공교롭게 그 사람이 나타나는 경우를 이르는 말.

민속학의 대가인 김열규 전 서강대 교수는 “아무리 옛날이라고 해도 호랑이가 민가까지 내려오는 일은 흔치 않았다”며 “깊은 산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호랑이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는 그 사실을 알고 찾아오는 만큼, 남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경우를 일종의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예언이 아닌데, 어떤 대상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나 기대, 예측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이를 예언으로 받아들이는 심리 구조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을 싫어한다고 가정해볼까요. 비록 그 사람이 싫다고 해도 그가 늘 나쁜 행동만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좋은 행동을 할 때가 있고 평범한 행동을 할 때도 있죠. 하지만 일단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그가 하는 나쁜 행동만 유독 눈에 밟힙니다. 그래서 흔히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그것 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호랑이가 제 말 하면 나타나는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김경일 아주대 교수(심리학)는 “내가 특정인을 만날 확률과 내가 대화 중에 특정인을 거론할 확률이 존재한다면,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마침 그 사람을 만날 확률도 일정하게 존재한다”며 “물론 이와 반대로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 경우나 그와 마주칠 때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경우도 있는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은 전자의 경우에만 유독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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