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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내 자존심, 정품 게임들

등록 2008-05-23 00:00 수정 2020-05-03 04:25

▣ 차민석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방 청소 도중 1990년대에 구매한 정품 게임이 보였다. 당시는 한 달에 회비 5천원을 내면 거의 무제한으로 게임을 복사할 수 있는 시절이었고 게임을 돈 주고 산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절 한 용감한(?) 회사가 외국 게임회사와 정식 라이선스를 맺고 국내에 게임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중학생이던 나는 정품 게임이 출시된다는 얘기에 이를 구매해서 당당히 즐기고 싶은 사명감(?)이 들었다.

용돈을 모은 5천원으로 산 게임의 감동이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비록 어린 나의 눈에도 허술한 박스, 조잡한 설명서였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소프트웨어, 음악, 영화 등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가급적 게임은 정품으로, 노래는 정식 MP3 다운로드로, 영화는 극장에서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돈이 참 많나봐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에서 공짜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데 왜 돈을 지불하냐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100% 정품만 고집하지도 않고 고집할 수도 없다. 국내 미출시작까지 해외에 주문할 만큼 투철한 정품 사용 의지는 없어도 적어도 국내에 정식 출시된 작품은 구매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가수 신해철씨는 “예술비·문화비 지출을 자기 인생에서 맨 마지막에 놓아버리잖아요. 예술이나 문화로 인해 자기가 얻을 수 있는 만족에 비해 사용하는 돈은 최대한 아끼겠다는 건데요”라고 말했다.

물질적으로 남지 않는 예술비·문화비로 얻는 만족이 과연 인생의 가장 마지막에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게 도둑질해도 괜찮은 건지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 돈 주고 구매하는 사람을 바보로 생각하는 인식부터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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