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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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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아들 키보다 작은 침대

등록 2008-04-18 00:00 수정 2020-05-03 04:25

▣ 홍경석 대전시 중구 산성동


“아들, 일어나야지!”

아들은 토요일인 오늘도 공부를 하러 가겠다고 미리 쐐기를 박아뒀다. 그처럼 부지런히 공부를 하는 까닭은 반드시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다. 만기 전역을 하고도 경제적인 이유로 복학을 1년 미뤄 올 신학기에야 비로소 복학생이 되었다. 간밤에도 공부하느라 얼추 새벽 두 시는 넘어서야 잠자리에 든 듯싶었다. 냉큼 일어나지 못하고 연방 눈을 비비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아빠 먼저 출근한다.” 비몽사몽간임에도 “잘 다녀오세요”라고 하는 아들은 그러나 오늘도 좁디좁은 침대로 말미암아 두 다리가 십리 밖쯤까지 나와 있었다. ‘어이구! 어서 아들한테 널찍한 침대를 새로 사줘야 할 텐데!’

아들이 사용하고 있는 침대는 원래 딸의 것이었다. 딸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에 사준 침대다. 당시엔 체구가 작은 딸아이에게 그 침대가 꽤 넉넉했다. 밤에 그 침대에서 혼자 자는 딸이 이불이라도 차지 않고 잘 자는가 싶어 방문을 열면 녀석은 냉큼 내 품에 안기곤 했다. “뽀뽀해주고 가세요”라고 하거나, 엄마를 떼놓고 저랑 자면 안 되겠냐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아들에겐 애당초부터 그 침대가 작았다. 아들이 쓰던 싸구려 침대가 아예 주저앉아버렸기에 새로 사야 했는데 마침 딸이 대학생이 되면서 서울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동생이 쓰던 침대가 있는데 굳이 뭣하러 새 침대를 사세요?”라며 한 푼이라도 아끼라고 하는 아들이 미덥고 고마웠다.

그렇지만 두 다리가 침대 밖까지 나와 자고 있는 아들을 보자면 빈궁한 이 아비의 가슴속으론 자괴의 찬바람이 몰아치곤 한다. 방학 때면 집에 오는 딸에게 이 침대는 여전히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아들이 누우면 마치 콩나물시루에 갇혀서 자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제 내년이면 딸이 대학을 졸업한다. 졸업 뒤에 집에 내려온다면 아직 멀쩡한 침대를 돌려주고 아들에겐 새 침대를 사주면 될 것이다. 하지만 딸이 ‘서울 사람’이 된다면 아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이 침대에 구속이 되는 건 아닐까 싶어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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