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랑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학창시절, 나는 무척 내성적이고 소심했다. 그런 내가 시골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큰언니가 살고 있던 서울로 올라와 조그만 중소기업에 취직했으니 직장 생활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울고 웃으며 회사 생활을 하던 중 어느 정도 적응을 했을 무렵 관리부서에 새로 입사한 남자 직원과 야근을 계기로 만남을 가졌다. 그렇게 사랑에 빠져 그와 5년 동안 연애를 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게 임신을 하고 말았다.

그 당시엔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 서둘러 날짜를 잡고 결혼식을 올렸다. 첫딸을 낳고 2년 터울로 둘째딸도 얻었다. 큰딸은 어렸을 때부터 우리 부부의 기념일을 유난히 챙겼고 우린 그 순간순간들이 정말 행복했다. 큰딸이 고1이 될 무렵, 결혼기념일이 다가오자 이것저것 옛 사진첩을 뒤지며 큰 스케치북을 오리고 장식하면서 글도 쓰고 하다가 장식장 깊숙이 둔 먼지 뽀얗게 쌓인 결혼기념패를 발견했다.
그 옛날엔 친구들이 결혼을 기념하여 기념패를 선물로 해줬다. 세월이 흘러 잊혀진 그 물건이 우연히 딸의 눈에 띈 것이다. ‘축 결혼, 1989년 1월15일’. 1989년 6월에 태어난 큰딸은 ‘1989년 1월’이란 날짜를 보고 만 것이다.
“엄마! 엄마!” 천둥 같은 소리에 뛰어가보니 딸이 결혼패를 들이밀며 “엄마 아빠가 이럴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고는 얼마나 놀려대던지. 칠삭둥이라는 궁색한 변명이 통할 리 만무하고. 지금까지 가끔 생각 날 때마다 그 ‘사건’을 반복해서 재잘대는 우리 딸들에게 지금도 할 말 없는 성교육이 된 것이다.
딸들아 이해해주렴. 엄마 아빠는 너무 사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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