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야스쿠니 캠페인] “일본인 스스로 역사인식을 바꿔라”

등록 2007-11-16 00:00 수정 2020-05-03 04:25

한·중·일·미 학자들이 컬럼비아대학에서 진행한 심포지엄 ‘인권·문명·평화의 눈으로 야스쿠니를 본다’

▣ 뉴욕=글·사진 스나미 게스케 프리랜서 기자 yorogadi@hotmail.com

야스쿠니신사는 지난 세기 일본이 벌인 침략전쟁을 긍정하는 신사다. 야스쿠니신사는 국가가 원하면 국민은 전쟁에 나가야 하고, 다른 나라를 공격해야 하며, 그 와중에 숨지는 것을 아름다운 일이라고 가르친다. 신사는 전쟁터에 끌려가 숨진 사람들을 일본을 지킨 ‘신’으로 현창(顯彰)하고, 그들이 벌인 일을 천황과 일본을 위한다는 명제 아래 정당화한다.

우경화된 미디어가 공범

그렇다면, 그런 신사가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게 된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국·중국·일본·미국의 학자들이 11월8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 모여 ‘인권·문명·평화의 눈으로 야스쿠니를 본다’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야스쿠니신사가 살아남게 된 것은 미국이 ‘천황제’를 남겨뒀기 때문이다. 마크 셸던 미국 코넬대학교 교수는 ‘미국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사령부는 일본 점령정책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 일본의 ‘천황제’를 폐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천황제가 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떠받치는 기둥인 야스쿠니신사도 그대로 남았다. 다만 신사의 성격이 국가시설에서 독립 종교법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국이 어떻게 천황의 전쟁 책임을 면제해줬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돼왔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극동 국제전범재판에서 천황은 전쟁을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없었던 ‘꼭두각시’가 되는 방식으로 전쟁 책임을 피해갔다. 도조 히데키 전 일본국 총리가 “일본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천황의 뜻에 반대해 행동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지만, “천황이 원한 것은 평화”라며 이내 증언을 바꾸고 만다. 그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은 더글러스 맥아더 일본 점령군 사령관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배리 피셔 미국 변호사는 “미국에서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미국이 갖고 있는 동아시아 역사관에 일대 혁신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아사노 겐이치 도시샤대학교 미디어학과 교수는 일본 내에서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인식이 퇴행하게 된 이유로 ‘미디어의 우경화’를 꼽았다. 그는 “일본 언론들이 고이즈미 전 총리의 여섯 번에 걸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긍정해 헌법 위반의 공범자가 됐다”고 말했다.

일본 헌법 20조는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엄격히 분리하고 있다. 전쟁 전 일본 정부가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신도’라는 종교를 이용해 국민을 전쟁에 동원했기 때문이다. 이 국가신도의 총본산이 야스쿠니신사다. 전쟁이 끝난 뒤 가장 먼저 야스쿠니신사를 참해한 일본 총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였다. 그가 1985년 8월15일 신사를 참배했을 때 일본의 2대 일간지인 과 은 “현직 총리의 신사 참배는 헌법 위반”이라며 엄격히 비판했다. 은 ‘A급 전범 합사’ 사실을 지적했고, 은 전쟁을 미화하는 야스쿠니신사의 역사 인식에 일침을 놓았다. 당시에도 중국과 한국의 반발이 있었지만 이는 주요 뉴스로 다뤄지지 않았다. 야스쿠니신사 문제의 본질은 야스쿠니가 갖는 퇴행적 역사 인식이지 주변국들의 반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을 때 두 신문의 논조는 크게 바뀐 것으로 나타난다. 은 ‘A급 전범’ 합사를 긍정했고, 총리 참배에 대해서도 ‘헌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더 나아가 중국과 한국의 반발을 ‘내정간섭’이라고 몰아세웠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도 헌법 문제에 대해 “논의가 있다”고 소극적으로 부언하는 데 그쳤다. 다만 “근린제국의 신뢰를 해치면 국익을 잃는다”라는 국익론을 펼쳤다.

한국은 왜 무단 합사 침묵하나

아사노 교수는 “일본을 대표하는 두 미디어의 변질로 일본 내에서 ‘야스쿠니 문제=근린제국의 반발’이라는 도식이 완성됐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외국의 반발이 없으면 야스쿠니신사의 문제는 없다는 인식이 퍼지게 됐다. 그는 “야스쿠니신사가 역사관을 바로잡지 않는 것은 저널리즘이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인들이 스스로 역사 인식을 바꾸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조선인 합사자들의 합사 철회 소송을 이끌고 있는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는 “야스쿠니신사 문제의 본질은 역사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야스쿠니신사가) 전쟁 뒤 민간 종교법인이 됐지만, 지금도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 의식을 계속하고 있다”며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인 자신”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심포지엄을 열고 있지만 이 문제는 일본인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외압에 기대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서승 리쓰메이칸대학 교수는 한국 정부의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그는 “우리 조상들이 야스쿠니신사에 일본을 지키는 신으로 모셔져 일본 군국주의 부활에 이용되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이를 놓고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야스쿠니신사에 조선인들이 모셔져 있는 것은 일본이 아직 한반도를 자신의 식민지로 보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직접 나서 이를 외교 쟁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을 설득하기 위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의 투쟁은 어떤 열매를 맺을까. 11월6일 유엔본부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소개 팸플릿을 나눠주던 일본인 학생에게 남부 아시아계 남성이 질문했다. “일본의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왜 미국에 와서 호소하는 거야.” 학생은 선뜻 답변을 떠올리지 못했다. 사실 이 문제는 한두 마디로 명쾌한 답변을 내놓기 힘든 질문이다. 워싱턴에 사는 양미강씨는 “미국이 역사적으로 야스쿠니 문제에 어떻게 개입해 책임을 남겼는지 미국 사회를 설득할 수 있도록 제대로 연구해야 한다”며 “이번 반대행동의 발상은 좋았지만 미국 사회에 전하는 힘이나 논리, 전략 면에서는 아직 미숙하다”고 말했다.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세계로

그래서 고민은 점점 깊어져간다. 종군위안부처럼 문명국들의 즉각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만큼 쉬운 주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동북아시아 지역의 문제에 머물러 있던 야스쿠니 문제가 세계적인 이슈로 진화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해학 공동행동 상임대표는 “야스쿠니신사 문제의 본질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역사는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하는 일임을 일본이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야스쿠니는 평화의 문제다. 공동행동이 집중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