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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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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아들아, 밥은 은수저로 먹으렴”

등록 2007-10-19 00:00 수정 2020-05-03 04:25

▣ 정태웅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

15년 전 산골 마을 동구 밖에서 나는 나이 드신 부모님의 배웅을 받고 있었다.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하고 까칠까칠한 머리 그대로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도시로 유학을 떠나는 길이었다. 도회지 생활을 해본 적도 없거니와 어린 나이에 막내이다 보니 부모님께선 걱정이 많이 되셨던 모양이다.

아버지께서는 가난한 시골 농부이셨지만 특히나 교육열이 높으셨다. 자식들에게 어릴 적부터 한자를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노력하셨다. 굶을지언정 자식들은 아예 농사일을 돕지 못하게도 하셨다.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도회지로 유학생활을 하러 가던 날, 몹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부모님의 얼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얼굴은 지금껏 나를 지탱해주고, 지켜주는 수호신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날, 어머니께서는 하나의 선물을 챙겨주셨다. 바로 은수저 세트이다. 내 기억으로는 누님이 결혼할 때, 자형이 부모님께 선물로 가져온 것이었다. 그것을 고운 보자기에 칭칭 감아두셨다가 나에게 주시면서, 그 수저로 항상 밥을 먹으라고 당부하셨다. 독극물이 든 음식에는 바로 반응을 보일 거라고 하시면서. 물론 시골 가난뱅이 유학생을 누가 독극물로 해치려고 하겠는가. 부모 마음이셨던 것일 게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 수저로 밥을 먹어보지 않았다. 아깝기도 하고 괜히 사용해선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다.

얼마 전 이사를 하다가 다시 그 수저를 발견했다. 반짝반짝 순백으로 눈부시던 것이 어느새 놋쇠처럼 변해버렸다. 그동안의 관리 소홀이 느껴졌다. 부모님의 마음을 자식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소홀히 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이번 주말엔 은수저에 다시 윤이 나도록 열심히 닦아봐야겠다. 마음이라도 좀 편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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