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원식 서울시 서초구 방배4동
이 시집이 내게로 온 건 나로선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경림 시인의 시집 (農舞)는 1979년 발행된 7판인데, 기억을 되살려보면 1988년 5월쯤에 선배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시집이 내 품에 들어온 것은 인쇄된 지 10년 정도 지나서이고, 또 지금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1988년은 6월 민주화운동 이후 정치권의 분열로 인해 허무하게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해다. 386세대로 대학 졸업반이던 나는 대학생으로 네 번째 5월을 맞이하고 있었고, 또 졸업 뒤의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힘든 시기였다. 그런데 시집을 준 선배는 그 시집을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다른 선배에게 전해달라고 한 것인데, 내가 먼저 읽고 차일피일 미루다 지금까지 왔다.
아름다운 시도 시려니와 책 표지 뒤에 선배가 쓴 ‘생활 속에 살아 있는 서늘한 시인의 정신’이란 글이 마음에 다가왔다. 하여 졸업 뒤 이곳저곳 자취방을 전전하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짐짝에 넣어둬 꼬깃꼬깃 구겨졌지만, 주옥같은 시와 선배의 글은 아직도 큰 감동을 준다. 그러나 늘 함께하며 같은 길을 가자던 약속도 헛되어 선배들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도 알 수 없고, 또 얼굴조차 희미하다.
요즘엔 시인이 1973년에 발표한 ‘해후’라는 시가 더욱 마음에 다가온다. 시인은 어떻게 30년도 더 전에 내 마음을 시에 쏙 담았을까? 시집 속 시인의 눈빛은 처마의 고드름으로 줄곧 서늘하게 빛나고 있다. “메밀꽃이 피어 눈부시던 들길/ 숨죽인 욕지거리로 술렁대던 강변/ 절망과 분노에 함께 울던 산바람// 우리가 달려온 길도 그 노랫소리도/ 그 여자는 이제 다 잊은 것 같다/ 끝내 낯선 두 나그네가 되자고 한다/ 내려치는 비바람 그 진흙길을/ 나 혼자서만 달려 나가라 한다”(‘해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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