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숙 대전시 유성구 송강동
일기예보에서는 이번주에 장마가 끝난다고 했다. 어제오늘, 하늘은 잔뜩 비를 품고 있다가 갑자기 쏟아지기도 하고 잠깐씩 해가 발끈 났다가는 다시 흐린다. 끈끈한 날씨에 하루라도 씻지 않으면 제대로 잠을 이룰 수도 없다.

끈적끈적한 요즘 같은 날씨에 식구들 속옷은 날마다 빨래통에 쌓이고 세탁기도 덩달아 바쁘게 덜컹거리며 돌아간다. 땀이 밴 속옷이나 양말은 모아둘 수 없어 손빨래를 한다. 그럴 때 내 힘을 덜어주는 빨래판이 새삼 고맙다. 화장실에 들여놓고 쓰다가 가끔 베란다 창가에 세워놓고 말려서 다시 쓰곤 하는데 가만 생각하니 이 나무 빨래판이 솔찮게 오래되었다. 나이로 치면 빨래판 할아버지 뻘로 ‘옹’이다.
결혼하고 시집에 온 그 다음날부터 나와 함께한 빨래판. 큰애가 지금 고3이고, 시어머니가 써왔던 물건이라 족히 20년이 넘었다. 무슨 나무로 만든 것인지는 모른다. 빨래판은 물에 젖어 판판해졌다가 햇빛을 받으면 살짝 휘어지기도 한다. 나무의 성질이 물기를 먹었다가 내뿜으니 그럴 것이다.
‘이쁜’ 20대에 만나 귀밑머리 희끗한 흰머리가 눈에 띄기 시작하는 40대 중년이 되기까지 나와 함께한 빨래판 ‘옹’은, 역시나 세월은 피할 수 없어 빨래로 비벼진 가운뎃부분은 골이 무뎌지고 아래위로 금이 쩍쩍 갈라졌다. 테두리는 닳고 닳아 저절로 부드러워지고, 이제는 그나마 남아 있는 손이 덜 간 쪽에 몇 개의 골만 남아 있다. 뾰족하게 날이 서고 괜한 일에 투정이 많았던 나도 빨래판처럼 어지간히 무뎌졌다.
마트에 가면 바닥에 착 달라붙는 빨래판도 있다. 가볍기는 그만이고 색깔도 다양하지만, 아직 이 나무 빨래판은 우리 식구를 떠날 마음이 없는 것 같다. 시어머니가 올해로 아흔이시다. 가끔 우리 집에 오시면 당신이 썼던 물건을 아직도 쓰고 있는 며느리가 기특한지 꼭 한마디 하신다. “저걸 내버리두 않구 안즉도 쓰고 있네!”
주름으로 쪼글쪼글한 어머니의 흐뭇한 표정이 올해도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나는 보고 싶다. 어머니 손등 같은 빨래판 ‘옹선생’이 오늘도 바닥에서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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