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경석 대전시 중구 용두동

어느 집이라도 옷을 넣어두는 장롱인 옷장이 있다. 본디 태생부터 가난하였기에 신혼 초기라고 해도 빈궁의 암운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반지하 월셋방을 얻고 비키니 옷장 하나를 사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이후 아들과 딸을 낳으면서는 비키니 옷장 하나로는 옷을 담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 사진 속의 옷장을 샀다. 헐한 값을 주고 산 옷장이지만 아이들의 옷과 우리 내외의 옷도 얼추 담을 수 있어 참으로 오랜 기간 사용했다. 이제 두 아이 모두 성년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랬던 이 옷장이 집 밖으로 쫓겨나 자전거와 함께 풍찬노숙을 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하도 오래 사용한 탓인지 시나브로 부식되기 시작한 옷장은 얼마 전부터는 아예 오른쪽 받침목까지 부식되기 시작했다. 앉은뱅이처럼 앞으로 고꾸라지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래서 실로 오랜만에 새 옷장을 샀는데 집이 좁으니 헌 옷장은 버릴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너무도 오랫동안 한 가족과도 같이 지냈기에 진득한 정이 들었던지 아내가 반대했다. 그래서 헌 옷장은 그나마 쫓겨나지 않고 현관 옆의 아들 방 창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옷장 안에는 이런저런 잡동사니가 들어 있다. 얼추 20년 가까이나 아무런 불만의 표출 없이 묵묵히 우리 가족이 넣어주는 모든 걸 수용한 호인과도 같은 옷장이다. 우리 식구 모두의 옷에서부터 양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담아주고 보관해주었던 충복이자 시종이었던 옷장! 생로병사의 수순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처럼 옷장도 수명이 오래되어 결국엔 집 밖으로 밀려나긴 했다. 그렇지만 아예 쫓겨나지 않고 그나마 우리 가족의 얼굴을 여전히 대하고 있으니 그다지 섭섭하진 않다고 대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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