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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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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물건] 나의 쉼터, 느티나무 한 토막

등록 2007-04-20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박정도 부산시 사하구 다대2동


지금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태어나서 스무 살까지는 시골에서 살았다. 시골에 살 적에는 부모 따라 농사를 돌보고 농한기에는 가축의 먹이를 구하거나 땔감을 준비하느라 몹시 바빴다. 사는 게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다채로운 추억을 쌓고 자연을 벗삼아 멋진 일화를 연출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산에 땔감을 마련하러 갔다가 기기묘묘한 느티나무 괴목을 발견했다. 추운 겨울인데도 땀을 흘리며 캐내서 집으로 가져와서는 열심히 다듬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가마솥에 넣어 푹 삶아서 껍질을 벗겨 니스칠을 하고 나니 멋진 공예품이 되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내게는 소중한 보물이고 고향의 추억이 깃든 물건이다.

시골에 살 때에는 느티나무 괴목의 진면목을 알아보기가 어려웠는데 도시에 살면서 집안에 자연의 축소판인 느티나무 괴목이 있으니 즐겁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아내는 나무토막이 무슨 보물이냐고 하지만 내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분신 같은 존재이다. 인공의 공산품보다는 자연친화적인 괴목이 훨씬 친근감이 든다. 서재에 두고 가만히 바라보면 느티나무 속에서 산새의 지저귐이 들리고 푸른 잎이 흔들리는 것 같다.

느티나무는 내가 좋아하는 나무의 하나이다. 시골에 가면 마을 한복판 곳곳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느티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이고 나무 주변은 주민들의 휴식처이다. 나무 아래에서 낮잠도 자고 한담도 즐긴다. 느티나무는 잘 자라고 벌레와 새의 보금자리 구실도 톡톡히 한다. 느티나무 괴목은 내게 환상 속의 쉼터 역할을 하고 때때로 아늑한 고향의 향수에 젖게 한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느티나무 괴목을 버리지 않고 오래 간직할 것이고 나의 반려자처럼 늘 곁에 둘 것이다. 느티나무 괴목을 보며 일상의 권태나 따분함을 달래고 전원생활의 꿈을 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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