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경옥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는 덤벙거리는 편이라 실수가 잦다. 무슨 거창한 실수가 아니라 사소한 것들이다. 하루는 우유를 따르다가 또 흘리기에 한마디 했다. “조심 좀 하지.” 그랬더니 “엄마도 고추장 쏟았잖아요?” 뜬금없이 이게 웬 말인가. “무슨 말이야?” “엄마도 어릴 때 고추장 쏟아서 외할머니한테 혼났잖아요?”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히히히!”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장을 모두 모아두고 시집갈 때, 이사 갈 때도 가지고 다녔다. 딸아이가 그걸 발견하고 모조리 읽어본 것이다. 엄마 심부름으로 외갓집에 고추장 단지를 가져다주다가 흘리는 바람에 엄마한테 야단맞은 일이 일기장에 쓰여 있었다. 아이는 어릴 때 엄마의 모습이 재미있나 보다.
일기장을 보관해온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13년 전 결혼해서 들어가 살게 된 시댁은 남편이 중학교 때 이사를 와서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살아오고 있는 오래된 집이다. 어느 날 거실 책장에서 일기장이 눈에 띄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남편이 쓴 것이었다. 남편은 옛날 물건들을 꼼꼼히 간직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 일기장 한 권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남편의 일기장을 처음 본 순간, 내가 간직하고 있던 일기장과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랐다. 제목도 ‘비목’과 ‘회상’이라니. 남학생들도 이런 꽃무늬 일기장에 일기를 썼나? 둘 다 중학교 2학년 때니까 1981년이다. 그 시절에는 이런 일기장이 유행이었나 보다.
남편의 일기장에는 남편의 어린 시절이 들어 있었다. 내 일기장에는 한 줄도 없는 야구나 권투 이야기는 왜 그렇게 많은지·····.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경북고가 선린상고를 6:4로 이겼다든지, 박종팔 선수가 KO패를 당해서 분하다든지 하는 내용이다. 나 혼자 그 일기장을 킥킥거리며 읽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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