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영
외갓집은 어린 나에게 보물섬 같은 곳이었다. 광에는 항상 푸짐한 음식이 가득했고 밖에 나가면 외할아버지께서 손주를 위해 일부러 남겨두신 속이 꽉 찬 밤송이들이 굴러다녔다. 외양간의 송아지는 내가 좀 놀래키면 엄마 소 뒤에 꼭 숨곤 해서 나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엄마 소를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외삼촌들은 위험하다고 말리는데도 나는 꼭, 벌이 바삐 날아다니는 벌통 앞을 할 일 없이 지나다녔다. 외갓집은 그렇게 세상의 모든 신기하고 재밌고 맛있는 것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의 사랑을 받은 것은 삼촌과 이모들이 어릴 적 보았던 책들이었다. 이미 몇십 년은 된 거라서 속은 누렇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오래된 책들 말이다. 윤동주의 시집부터 75년 부록인 안데르센 동화집까지. 세로쓰기인 것도 있고 죄다 ‘읍니다’로 끝나는 책들이지만, 간혹 그 속에서 외삼촌들이나 이모들이 예전에 넣어둔 쪽지나 서명을 발견할 때면 나는 큰 보물을 발견한 것 같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과는 다른 문체가 낯설면서도 왠지 고풍스러워 좋았다. 책 속에서는 영화 의 극장표가 책갈피로 나온 적도 있고, 야간공습훈련 안내서도 발견한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신기해서 몇 번이나 다시 꺼내 읽어보곤 했다.
그래서 나는 외갓집에 갈 때마다 내 마음에 든 책 몇 권씩 들고 와 내 책장에 꽂아두었다. 이 ‘오래된 물건’들은 비록 원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지금까지 내게 보물같이 소중하다. 이제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밤나무도 베어진 것처럼 언젠가는 나의 보물섬이었던 그 공간도 사라지겠지만, 이 보물들을 보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던 외갓집의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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