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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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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오래된물건 ] 나의 아름다운 남자들

등록 2006-04-26 00:00 수정 2020-05-02 04:24

▣ 오경철 인천시 가좌2동

어릴 때 용돈을 아껴 하나씩 사모았던 음악 테이프들이 CD와 MP3 때문에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도 오래되었다. 처치 곤란한 잡동사니들처럼 먼지를 푹 뒤집어쓴 채 방 한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그것들이 문득 안쓰러워 보여 이것저것 훑어보았다. 퀸, 딥 퍼플, 비지스 따위들이 보인다.

이 가운데서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테이프가 하나 있었다. .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샀던 것이다. 등 귀밑이 복숭아처럼 보송보송했던 까까머리 중학생의 마음을 대책 없이 뒤흔들어놓은 노래들이 낡은 편집 테이프 속에 전부 담겨 있었다. 빛 바랜 표지 사진을 채우고 있는 네 명의 청년. 폴 매카트니의 계집아이 같은 미소와 존 레넌의 새하얀 얼굴, 조지 해리슨의 그윽한 눈빛과 링고 스타의 큼지막한 앞니를 나는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파란 눈의 말쑥한 남자들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때 나는 열네 살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들어버리고 말았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자면 그 노래를 듣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닐까 했을 정도였다. 예스터데이 올 마이 트러블 심 소 파러웨이…….
그 뒤 며칠 동안 어머니를 졸라 10만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노란색 삼익 기타를 샀다. ‘딩딩딩딩 딩딩딩딩’ 울려퍼지는 의 유명한 전주에 홀딱 반해버렸기 때문이다. 손때 묻은 비틀스의 테이프를 이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구식 전축에 끼워넣고 오랜만에 익숙한 기타 선율이 흘러나오길 기다렸다. 1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노래를 듣고 있자니 가슴 한구석은 또 소년처럼 마냥 설다. 지금도 어딘가 이 아름다운 남자들의 음악을 듣는 아이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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