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중에서도 오래 늙어 아름다운 조선 소나무에 애착한다. 예전에 우리는 소나무 금줄에서 태어나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살다가 소나무 관에 누워 흙으로 돌아갔는데, 어느새 세상의 속도는 소나무와 함께하는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 집엔 할머니가 쓰던 소나무 반닫이가 있었다. 어머니 말을 믿고 그것이 할머니의 혼인 예물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 때는 안방 윗목에 버티고 있던 소나무 반닫이 앞면을 화판 삼아 크레용으로 낙서를 했다. 지금도 그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반닫이의 유래에 관해 올해 예순여덟이 되신 작은아버지가 생뚱한 말씀을 하셔 놀라고 한참 어리둥절했다.
반닫이는 할머니의 혼인 예물이 아니라 한국전쟁 중 피난민에게 받은 감사의 답례품이란다. 풀어 얘기하자면, 그때 우리집은 강원도 홍천 내면에 살고 있었는데 피난 중인 한 가족을 일주일가량 재워주게 됐다. 그 가족이 떠날 때 고맙다며 지게로 지고 가던 반닫이를 내려놓고 가버렸다는 것이다. 가로세로 석 자 정도 되니 애초 생각대로 지고 가기 힘든 피난길이었을 테다. 할머니 또한 몇 번의 이사에도 버리지 않았다. 어느새 자물쇠를 잃어버려 새것을 황학동에서 하나 구입해 끼워넣었다.
도회지에 살 땐 마루 한구석에 박혀 있었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땐 헛간 구석에서 녹슬어갔다. 귀퉁이에 흰색 페인트도 묻어 있다. 몇 해 전 가을, 비로소 먼지를 걷어내고 들기름으로 닦고 또 잣기름을 먹여 말끔히 손질한 뒤 내 방에 곱게 들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지 않는 옷들을 넣어두는 옷장으로 손색이 없다.
피난을 떠난 가족의 안부는 알 수 없고, 내 할머니도 오래전 흙으로 돌아갔다. 세월이 준 귀하디귀한 선물, 소나무 반닫이만이 내 곁에 남아 있다.
김혜자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송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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