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의 9회 말을 맞이한 기념으로 선물받은 휴가를 만끽하고 있던 때다. 막상 할 일이 없어 방에서 쉬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버려둘 수밖에 없었던 책상을 발견하고는 미안한 마음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랍 속 물건들을 모두 엎어 정리하다가 낯익은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대학 초년 시절. 나에게 ‘마술’이란 놀라운 세상을 안겨줬던 바이시클 카드. 상자는 곳곳이 찢어져 너덜너덜한 걸레 조각이 됐고, 그 속에 몇장 남지 않은 카드들은 하도 만지고 비벼댄 탓에 손때가 가득 묻은 회색 바탕의 카드로 변해버렸지만, 그 시절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신선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껌 한통 살 수 없는 1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친구들의 눈동자를 크게 만들고, 날렵한 손동작이 사람들을 웃고 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마술이란 단어는 내 젊은 날의 생활 속에 끼어들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바이시클 카드와 함께 시작한 마술 동아리 생활은 소주와 맥주가 전부였던 대학 생활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줬고, 그때부터 나의 전공은 마술이 됐다. 마술 덕분에 가끔 불쑥 고개를 내밀어 날 괴롭히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칠 수 있었으며, 몇몇 고등학교에서 특별활동 선생님으로 학생들에게 마술을 가르치는 값진 경험도 했다. 잠시 전공이 바뀌어버린 탓에 성적표엔 쌍권총(F학점)의 흔적이 몇 군데 남았지만,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나날을 선물해준 바이시클 카드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제 군 생활을 마치고 다시 민간인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비록 이젠 마술을 전공으로 할 생각은 없지만, 사람들의 얼굴에 작은 미소를 피울 수 있다면 취미로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나도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은가.
임홍택/ 서울시 성북구 길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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