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대부분은 일기, 사진, 편지, 요즘은 개인 홈페이지나 비디오 영상물 등을 통해 살아온 삶을 반추해본다. 하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으니 바로 ‘가계부’다.
결혼 몇년 뒤 분가해 내 살림을 시작하면서 조금이라도 절약해볼 요량으로 쓰기 시작한 가계부. 잠자기 전 일기 쓰는 아이들 옆에서 같이 가계부를 쓰던 것이 이제는 습관이 돼버렸다. 그게 30년이 다 돼간다.
처음에는 마땅한 가계부가 없어 아이들 쓰는 공책에 끼적였는데 요즘은 날짜, 요일, 요리법, 신년운세 보는 방법 등 다양한 정보까지 적혀 있어서 가계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세월의 변화를 느낀다. 그런가 하면 가계부 여기저기에 적혀 있는 소소한 정보들, 예를 들면 아이들 학교 행사, 예방접종뿐만 아니라 각종 영수증이 너덜너덜 붙어 있어 그 당시 생활이며 물가 등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돼준다.
이런 ‘귀한’ 가계부도 살림 초기 잦은 살림으로 인해 아주 오래된 몇권은 없어졌지만 얼마 전 청소를 하며 켜켜이 쌓여 있는 가계부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어쩌면 짐처럼 느껴지는 가계부를 버리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당시 차마 남에게는 꺼내기 힘들었던 나의 넋두리가 한켠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30여년간의 결혼 생활인 만큼 하고 싶은 말도 많지 않겠는가? 시아버님의 힘든 병간호에 담긴 사연, 한창 사춘기인 아이들 때문에 마음고생 했던 일.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내 인생의 봄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요즘에는 가계부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거니와 쓴다고 해도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비해 구시대적인 나에게 딸들은 핀잔을 주곤 한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하찮아 보일지언정 가계부 쓰기는 내 인생의 또 다른 기록이며, 나의 작은 낙이 돼주니 더없이 소중하다.
장득남/ 부산시 남구 용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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