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기 독자편집위원회 마지막 회의였다. 7월10일 비 내리는 저녁, 우리는 이번에도 서울 홍익대 앞에서 모였다. 저녁을 먹고 회의를 시작하려는데, 이정주씨가 ‘저기…’ 하더니 가방에서 꾸러미를 꺼냈다. 스포츠 양말을 선물했다. 직접 쓴 엽서도 나눠줬다. 평소 좌중을 압도하던 기개는 쏙 들어가고 쑥스러워했다. 그 때문인지 회의 분위기는 내내 화기애애. 독편위원들은 웃으며 칭찬하고 비판하는 내공을 보여줬다. 헤어지는 게 아쉬워 뒤풀이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위험한 질문, 읽기도 조심스러워김자경: 914호 표지이야기 ‘민혁당과 주체사상, 위험한 질문에 답하다’가 반가웠다. 정면 승부, 남들이 피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런데 주변에 표지 자체가 불편해서 가지고 읽기 힘들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정주: 긴 편집자 주가 있었다. 이 기사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는 이렇다고 설명해주는.
김자경: 인용이 너무 많았다. 차라리 인터뷰 형식으로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임성빈: 멘트를 주는 사람이 부담을 느낄 수도 있으니 그렇게 처리한 것 아닐까.
장슬기:다 읽고 나면 친한 사람에게 을 주는데, 이번호는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형한테 줬다. 그런데 표지이야기는 읽지 않고 넘어가더라. 공을 많이 들였을 텐데, 읽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더라.
이정주: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인터뷰를 거부했기 때문에 한계는 있겠지만, 이런 기획은 공세를 받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작정을 했다는 것일 텐데.
장슬기: 특집 ‘서울의 분뇨차를 새벽같이 쫓다’가 좋았다. 이미지를 일러스트로 처리한 것도 현명했다. 사진이었다면 좀….
임성빈: 생활과 닿아 있는 이야기에 공감이 컸다. 이런 기사가 크게 나오면 이 약간 연성화하는 듯 보이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좋았다. 이번 표지이야기처럼 센 이야기가 있을 때는 더더욱.
장슬기: 915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는 내가 보낸 거다. (일동 웃음)
김자경: 일거리를 보내셨구만.
이정주: 표지이야기 ‘힐링 투게더’에서 표지 사진을 다른 걸로 했다면 어땠을까. 기사를 보면 국가가 개인에게 행한 폭력에 대한 것이었는데, 표지에서는 국가-개인의 관계를 읽을 수 없었다.
김자경: 표지도 그렇고, 표지이야기 기사 제목 색깔도 녹색이어서 농촌 이야기인 줄 알았다.
장슬기: 아파본 자의 연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 힐링 유행과 관련한 내용의 기사가 붙어서 어색했다. 차라리 여기에 평범한 사람들이 치유하는 이야기를 담았다면 어땠을까. 조작간첩처럼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권채원: 사회적 상처와 개인적 상처를 나눠 다뤘다면 좋았을 텐데 구분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쉬웠다.
‘부동산 불패’ 깨지면 살림집에 관심 가질까장슬기: 레드 기획 ‘동네를 살리는 살림집 지어요’를 읽고 인간이 자연적인 것에서 너무 유리돼왔다는 생각을 했다.
임성빈: 첫 줄에 “한국의 건축가들은 주택 문제에 흥미를 상실했다”는 문장이 와닿았다. 그런데 이게 조금씩 깨져나가는 느낌이다. 모두가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개인적으로 주택을 짓는 것 자체가 어렵다. 법규도 알아야 하고, 잘하는 건축가도 찾아야 하고. 그런데 이런 트렌드가 생기는 것 자체가 희망적이다.
조원영: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지고 나면 더 나아지지 않겠나.
임성빈: 916호 표지이야기 ‘젊은 아빠들의 육아 딜레마’는 아빠로서, 책을 받자마자 펼쳐서 읽었다.
이정주: “30~40대는 어려서 아버지와 놀아본 적이 없다”는 문장이 와닿았다. 나도 그랬다. 그런 내가 어른이 되었고, 경험이 없으니 같이 놀아줄 줄 모르는 것이다.
임성빈: 세대 간에 이어지는 문제가 되는 거지.
장슬기: “사람들이 아빠라고 놀렸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했느냐면, 나는 지금 대학생인데 남자친구들과 모이면 여자친구가 자꾸 전화해서 확인을 할 때 친구들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남성만의 문화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 세대가 이대로 크면 아빠라고 놀린다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김자경: ‘한국과 유럽의 출산·육아휴직 제도’를 읽으며 우리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가능해?’ 이랬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내가 얼마나 갇혀 있는지 보여준다.
이정주: 특집2 ‘희망버스 1년, 희망고문 1년’ 처음에는 읽지 않고 그냥 넘겼다. 주제에 대한 피로감이 있다. 이제 다른 테마를 다뤄야 할 때라는 생각도 들고. 도매금으로 ‘이창근의 해고 일기’까지 쭉 안 읽었다. 영 궁금해서 다시 돌아가 읽긴 했지만.
장슬기: 희망버스에 참여한 것 자체가 희망을 보여줬다는 것을 뜻했다. 민주주의를 입증했다는 것 아닌가. 메인 기사는 비관적인 느낌이었는데, 사이드 기사에서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것임을 엮어줘서 좋았다. 하지만 노동문제 말고도 다뤄야 할 중요한 이슈가 많다는 이정주씨의 의견에는 동의한다. 환경, 평화 등 다른 이슈들에도 주목하면 좋겠다.
조원영: 노동문제가 중요한 이슈임에도 해결이 잘 안 되니까 계속 얘기하는 것 아니겠나.
이정주: 다른 방식으로 얘기를 해봐도 된다. 예컨대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은 방식으로 노동문제를 품어보는 것이다.
성노동자, 논쟁의 수준을 업그레이드장슬기: 917호 ‘나는 성노동자다’는 문제적 표지였다. 인터넷에 기사가 나왔을 때 페이스북에 링크를 걸어놨다. 친구 댓글이 충격적이었다. 요약하면 ‘당신들이 하는 일 인정은 하겠으되 거기에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연결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권채원: 성노동자라는 다소 급진적인 주제를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전 성매매 시리즈에서는 수요자인 남성들의 말이 많이 들어갔다면 이번에는 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조원영: 나는 노동으로 인정하는 쪽이다. 그런데 딜레마에 빠진다. 성매매 노동자를 인정하면 사용자와 소비자도 인정해야 하는데 이건 또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성이 자본화하는 것인데 그걸 인정해도 될까.
권채원: 여성주의 안에서도 성매매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이 갈린다. 이게 양지로 나와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필요악이라 생각하거나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장슬기: 이런 주제를 다뤘다는 자체가 논쟁을 만들어내고, 논쟁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김자경: 918호 표지이야기 ‘두근거리며 삼성행 버스를 탔던 소녀들은…’은 노동 이야기다. 삼성반도체 사망자 문제 또한 여러 번 되풀이돼왔다. 이 기사가 한 페이지짜리였다면 우리는 또 피로감이 든다고 얘기했을지 모른다. 깊이 들어가면 읽힌다는 것을 보여줬다. 앞으로 노동 기사가 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것 아닐까.
장슬기: 일기를 읽고 슬펐다. ‘희생당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순수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자경: 반도체 공정 자체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까 조금 답답했다. 여기서 일하면 백혈병에 걸리는구나, 까지만 알겠더라. 정전이 나서 큰일 났다고 나오는데 왜 무엇이 문제인지, 배경지식을 좀 알려줬다면 좋았겠다.
이정주: 특집1 ‘부채도사가 키운 거품성장의 종말’에서 거시경제를 다뤘다면 뒤에 이어지는 ‘시민 K, 살기 위해 빚 다이어트 해야’에서는 개인에게 부채가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섬세하게 설명해줘서 좋았다.
장슬기: 개인적으로는 불만이다. 기업에 대안을 제시해주면 좋겠는데, 가계에 모든 책임을 묻는 듯했다. 구조적인 문제를 짚으며 해결책은 개인에게 제안하는 게 답답했다.
조원영:: 국가가 뭔가 해주길 바라는 것은 이제 포기 단계고, 이제 가계에서라도 해결을 봐야 하는 수준이 된 거다.
거품성장, 왜 개인에게 책임을 묻나장슬기: 특집2 ‘나이든 소년, 소비욕에 눈뜨다’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기사였다.
임성빈: 문화 기사가 앞에 나오니까 좋다. 얘기했듯 연성화된다는 우려가 있지만 독자층을 확대하려면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정주: 특집1 기사에 비하면 특집2에서 다룬 드라마 이야기는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조원영: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것은 맞는데, 또한 이렇게 이중적으로 사회가 흘러가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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