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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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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들어가면 읽힌다

등록 2012-07-17 18:02 수정 2020-05-03 04:26

사회·정리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23기 독자편집위원회 마지막 회의였다. 7월10일 비 내리는 저녁, 우리는 이번에도 서울 홍익대 앞에서 모였다. 저녁을 먹고 회의를 시작하려는데, 이정주씨가 ‘저기…’ 하더니 가방에서 꾸러미를 꺼냈다. 스포츠 양말을 선물했다. 직접 쓴 엽서도 나눠줬다. 평소 좌중을 압도하던 기개는 쏙 들어가고 쑥스러워했다. 그 때문인지 회의 분위기는 내내 화기애애. 독편위원들은 웃으며 칭찬하고 비판하는 내공을 보여줬다. 헤어지는 게 아쉬워 뒤풀이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위험한 질문, 읽기도 조심스러워

김자경: 914호 표지이야기 ‘민혁당과 주체사상, 위험한 질문에 답하다’가 반가웠다. 정면 승부, 남들이 피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아 좋았다. 그런데 주변에 표지 자체가 불편해서 가지고 읽기 힘들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정주: 긴 편집자 주가 있었다. 이 기사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는 이렇다고 설명해주는.

김자경: 인용이 너무 많았다. 차라리 인터뷰 형식으로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임성빈: 멘트를 주는 사람이 부담을 느낄 수도 있으니 그렇게 처리한 것 아닐까.

장슬기:다 읽고 나면 친한 사람에게 을 주는데, 이번호는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형한테 줬다. 그런데 표지이야기는 읽지 않고 넘어가더라. 공을 많이 들였을 텐데, 읽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더라.

이정주: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인터뷰를 거부했기 때문에 한계는 있겠지만, 이런 기획은 공세를 받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작정을 했다는 것일 텐데.

장슬기: 특집 ‘서울의 분뇨차를 새벽같이 쫓다’가 좋았다. 이미지를 일러스트로 처리한 것도 현명했다. 사진이었다면 좀….

임성빈: 생활과 닿아 있는 이야기에 공감이 컸다. 이런 기사가 크게 나오면 이 약간 연성화하는 듯 보이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좋았다. 이번 표지이야기처럼 센 이야기가 있을 때는 더더욱.

장슬기: 915호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는 내가 보낸 거다. (일동 웃음)

김자경: 일거리를 보내셨구만.

이정주: 표지이야기 ‘힐링 투게더’에서 표지 사진을 다른 걸로 했다면 어땠을까. 기사를 보면 국가가 개인에게 행한 폭력에 대한 것이었는데, 표지에서는 국가-개인의 관계를 읽을 수 없었다.

김자경: 표지도 그렇고, 표지이야기 기사 제목 색깔도 녹색이어서 농촌 이야기인 줄 알았다.

장슬기: 아파본 자의 연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 힐링 유행과 관련한 내용의 기사가 붙어서 어색했다. 차라리 여기에 평범한 사람들이 치유하는 이야기를 담았다면 어땠을까. 조작간첩처럼 심각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권채원: 사회적 상처와 개인적 상처를 나눠 다뤘다면 좋았을 텐데 구분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쉬웠다.

‘부동산 불패’ 깨지면 살림집에 관심 가질까

장슬기: 레드 기획 ‘동네를 살리는 살림집 지어요’를 읽고 인간이 자연적인 것에서 너무 유리돼왔다는 생각을 했다.

임성빈: 첫 줄에 “한국의 건축가들은 주택 문제에 흥미를 상실했다”는 문장이 와닿았다. 그런데 이게 조금씩 깨져나가는 느낌이다. 모두가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개인적으로 주택을 짓는 것 자체가 어렵다. 법규도 알아야 하고, 잘하는 건축가도 찾아야 하고. 그런데 이런 트렌드가 생기는 것 자체가 희망적이다.

조원영: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지고 나면 더 나아지지 않겠나.

임성빈: 916호 표지이야기 ‘젊은 아빠들의 육아 딜레마’는 아빠로서, 책을 받자마자 펼쳐서 읽었다.

이정주: “30~40대는 어려서 아버지와 놀아본 적이 없다”는 문장이 와닿았다. 나도 그랬다. 그런 내가 어른이 되었고, 경험이 없으니 같이 놀아줄 줄 모르는 것이다.

임성빈: 세대 간에 이어지는 문제가 되는 거지.

장슬기: “사람들이 아빠라고 놀렸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했느냐면, 나는 지금 대학생인데 남자친구들과 모이면 여자친구가 자꾸 전화해서 확인을 할 때 친구들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남성만의 문화라는 게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 세대가 이대로 크면 아빠라고 놀린다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김자경: ‘한국과 유럽의 출산·육아휴직 제도’를 읽으며 우리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가능해?’ 이랬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내가 얼마나 갇혀 있는지 보여준다.

이정주: 특집2 ‘희망버스 1년, 희망고문 1년’ 처음에는 읽지 않고 그냥 넘겼다. 주제에 대한 피로감이 있다. 이제 다른 테마를 다뤄야 할 때라는 생각도 들고. 도매금으로 ‘이창근의 해고 일기’까지 쭉 안 읽었다. 영 궁금해서 다시 돌아가 읽긴 했지만.

장슬기: 희망버스에 참여한 것 자체가 희망을 보여줬다는 것을 뜻했다. 민주주의를 입증했다는 것 아닌가. 메인 기사는 비관적인 느낌이었는데, 사이드 기사에서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것임을 엮어줘서 좋았다. 하지만 노동문제 말고도 다뤄야 할 중요한 이슈가 많다는 이정주씨의 의견에는 동의한다. 환경, 평화 등 다른 이슈들에도 주목하면 좋겠다.

조원영: 노동문제가 중요한 이슈임에도 해결이 잘 안 되니까 계속 얘기하는 것 아니겠나.

이정주: 다른 방식으로 얘기를 해봐도 된다. 예컨대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은 방식으로 노동문제를 품어보는 것이다.

성노동자, 논쟁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장슬기: 917호 ‘나는 성노동자다’는 문제적 표지였다. 인터넷에 기사가 나왔을 때 페이스북에 링크를 걸어놨다. 친구 댓글이 충격적이었다. 요약하면 ‘당신들이 하는 일 인정은 하겠으되 거기에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연결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권채원: 성노동자라는 다소 급진적인 주제를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전 성매매 시리즈에서는 수요자인 남성들의 말이 많이 들어갔다면 이번에는 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조원영: 나는 노동으로 인정하는 쪽이다. 그런데 딜레마에 빠진다. 성매매 노동자를 인정하면 사용자와 소비자도 인정해야 하는데 이건 또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성이 자본화하는 것인데 그걸 인정해도 될까.

권채원: 여성주의 안에서도 성매매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이 갈린다. 이게 양지로 나와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필요악이라 생각하거나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장슬기: 이런 주제를 다뤘다는 자체가 논쟁을 만들어내고, 논쟁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김자경: 918호 표지이야기 ‘두근거리며 삼성행 버스를 탔던 소녀들은…’은 노동 이야기다. 삼성반도체 사망자 문제 또한 여러 번 되풀이돼왔다. 이 기사가 한 페이지짜리였다면 우리는 또 피로감이 든다고 얘기했을지 모른다. 깊이 들어가면 읽힌다는 것을 보여줬다. 앞으로 노동 기사가 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것 아닐까.

장슬기: 일기를 읽고 슬펐다. ‘희생당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순수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자경: 반도체 공정 자체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까 조금 답답했다. 여기서 일하면 백혈병에 걸리는구나, 까지만 알겠더라. 정전이 나서 큰일 났다고 나오는데 왜 무엇이 문제인지, 배경지식을 좀 알려줬다면 좋았겠다.

이정주: 특집1 ‘부채도사가 키운 거품성장의 종말’에서 거시경제를 다뤘다면 뒤에 이어지는 ‘시민 K, 살기 위해 빚 다이어트 해야’에서는 개인에게 부채가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섬세하게 설명해줘서 좋았다.

장슬기: 개인적으로는 불만이다. 기업에 대안을 제시해주면 좋겠는데, 가계에 모든 책임을 묻는 듯했다. 구조적인 문제를 짚으며 해결책은 개인에게 제안하는 게 답답했다.

조원영:: 국가가 뭔가 해주길 바라는 것은 이제 포기 단계고, 이제 가계에서라도 해결을 봐야 하는 수준이 된 거다.

거품성장, 왜 개인에게 책임을 묻나

장슬기: 특집2 ‘나이든 소년, 소비욕에 눈뜨다’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기사였다.

임성빈: 문화 기사가 앞에 나오니까 좋다. 얘기했듯 연성화된다는 우려가 있지만 독자층을 확대하려면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정주: 특집1 기사에 비하면 특집2에서 다룬 드라마 이야기는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조원영: 현실과 괴리가 있는 것은 맞는데, 또한 이렇게 이중적으로 사회가 흘러가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24기 독자편집위원 모집
‘잔소리 찬스’를 쓰실 분들~

24번째 당신을 기다립니다. 매주 에 실리는 묵직한 이슈, 가슴 아픈 이야기, 세태를 짚는 시선들을 한 번만 읽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나요? 같은 기사를 읽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입니다. 이슈 메이킹의 짜릿한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무얼 잘하고 못했는지 ‘잔소리 찬스’를 쓰실 독자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지원하세요. 열린 귀를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독자편집위원회 활동1. 매주 4명의 위원이 ‘독자와 함께’면의 지면 평가 꼭지인 ‘이 기사, 주목’에 기고를 합니다.2. 6주에 한 번씩 정기회의를 합니다. 회의 결과는 다음호 지면에 실립니다. 회의 참석 때 소정의 좌담료를 드립니다.3. 임기는 6개월입니다.4. ‘독자가 뛰어든 세상’ 등 직접 기사를 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자격: 학력·직업·나이에 관계없이 을 사랑하는 독자
지원 방법: 아래 내용을 담은 지원서를 보내주세요(분량은 각각 A4용지 1장 이내)① 자기소개와 지원 이유(주소·휴대전화 등 연락처, 직업, 성별, 나이 기재)② 최근호 기사에 대한 소감
신청 마감: 2012년 8월5일(일) 밤 12시
문의 및 접수: 전자우편 han21@hani.co.kr(제목에 [독편위 모집 응모] 말머리를 달아주세요)
선발 및 공지: 신청 접수 여부는 8월8일(수) 전자우편으로 알려드립니다. 선발된 독자편집위원은 8월9일(목) 개별 통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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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기 독자편집위원회를 마치며
애정을 듬뿍 담아 마침표
임성빈 일단 반성부터 해야겠다. 독편위에 참여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을 평소보다 더 자세히 보지 못했다는 역설을. 다른 잡지들을 같이 보며 비교하는 독편위 동기들을 보면 스스로 채찍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 과장이고, 여러 독자들의 실체를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좀더 다양한 직업이나 연령대의 사람들과 만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김자경 고작 리뷰 300자를 쓰면서도 많이 허덕거렸다. 아무래도 좀 자질이 부족했나. 숙제를 하려고 좀더 열심히 을 읽고, 회의를 하며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은 아주 상큼달달했는데…. 생각해보니 별 도움이 되지는 못하고 나만 큰 도움을 받은 거 같아 죄송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항상 응원하겠다. 애정을 듬뿍 담아 마침표를 찍는다.

권채원 처음엔 같은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컸다. 시작한 뒤엔 작은 모임 안에서도 다양한 시각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고민하는 자세가 되었다. 내 고민이 뻔하지 않게 전달될 수 있도록 애썼지만 매번 부족했던 것 같다. 그동안 행복했던 건 애정을 가진 동반자적 매체와 매 순간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 남아 있는 아쉬움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서 실천과 행동으로 보답하겠다.

이정주 다소 거리감이 있던 ‘모범생’ 친구 과 6개월간 단짝으로 지낸 느낌이었다. 매주 월요일에 아이템을 발제하고 주중엔 취재하고, 금요일 저녁 마감을 간신히 넘긴 뒤 소맥으로 위안하며 찰나의 희열을 느끼는, 그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기분이었다. 미안했다. 그렇게 고생하는 친구의 속도 모르고 지적질만 해댄 건 아닌지. 고마웠다. 작은 기사 하나에도 그렇게 많은 정성을 쏟는지 몰랐다. 늘 지켜보고 응원하겠다.

조원영 초심만큼 꼼꼼하고 치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부끄러운 생각도 들지만, 늘 시간이 부족했던 독편위 회의도, 리뷰를 위한 기사 정독도 모두 떠올리면 즐거운 기억이다. 특히 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던 독편위원들 사이의 공감대는 많이 그리울 듯하다. 그들의 다양한 의견을 매번 진지하게 들어준 에도 감사의 말씀을!

장슬기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은 어려웠다. 그보다 더 어려운 건 23기 독편위를 하는 동안 더욱 팍팍해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칭찬과 비판을 주고받으며 많이 배웠고, 세상에 대한 관심도 더욱 많아졌기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독편위원들과 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멋진 모습이길 바란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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