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한겨레21’다움의 의미

874호부터 878호까지 톺아본 22기 독자편집위원회 세 번째 모임… “탁월한 시선 vs 내용 부족”
등록 2011-10-07 15:55 수정 2020-05-03 04:26

만리재에도 가을이 완연하던 지난 9월26일, 22기 독자편집위원회가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세 번째 회의를 했다. 환절기와 축제 기간이 겹쳐서일까.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김종옥·손웅래·유미연 위원을 제외하고 5명의 위원이 자리했다. 지난번 불참을 만회하려는 듯 광주에서 부지런히 올라온 ‘완전 동안’(?) 류하경 위원이 1등으로 회의실 문을 열었다. 언제나 밝은 표정의 유지향 위원과 상냥하고 친절한 박소영 위원이 2등과 3등으로 그 뒤를 따랐다. 씩씩하고 활달한 정은진 위원과 꼭 필요한 말만 하는 듬직한 김아무개 위원이 4등과 5등을 차지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다룬 874호부터 종교인과 종교시설의 비과세를 정면에서 비판한 878호까지, 독편위원들은 비판과 칭찬을 비슷하게 쏟아냈다. 조촐해서 더 오붓했던 세 번째 모임은 그렇게 에 대한 질정과 격려를 교환했다. 긴 회의를 마친 뒤, 깊어가는 가을밤이 아쉬운 독편위원들은 새벽녘까지 술잔을 앞에 두고 서로의 희망도 교환했다.

‘낚였다’는 느낌 든 표지 제목
사회: 오랜만이다. 미국의 경제위기와 세계적 신용평가사의 문제점을 표지이야기로 다룬 874호부터 이야기를 나누자.
박소영: 시작은 칭찬부터. (웃음) 경제 쪽으로는 잘 모르는데 쉽게 써서 좋았다. ‘사람 10명 사는 마을’ 등의 비유를 들어 이해가 쉬웠다. 신용평가사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자본주의의 생로병사와 연결한 시각도 좋았다.
김아무개: 신용평가사 등을 비판하는 내용은 경제월간지 에서 1년 전에 다뤘다. 차라리 이 내용을 표지이야기로 하려 했다면 사이드 기사인 ‘자본주의 제국의 생로병사’를 더 키우는 게 어땠을까. 표지 문안은 ‘임박한 제국의 몰락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였는데 메인 기사는 신용평가사를 다뤄서 낚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웃음) 답지 않았다.
류하경: 세계 ‘우리는 희망이 없다는 절규’가 인상 깊었다. 영국의 빈촌인 토트넘과 부촌인 햄프스티드를 대비해 ‘양극화’라는 폭동의 한 원인을 이해시켰다.
박소영: 유럽과 남미, 중동의 시위를 다룬 사이드 기사도 좋았다. 특히 우리의 ‘88만원 세대’로 비유되는 그리스의 시트콤 관련 내용은 소름이 끼쳤다.
유지향: 특집 ‘청산 안된 식민, 복원 안된 광장’은 오래된 얘기인 듯싶었다. ‘닫힌 광장’ ‘축’ 등 예전에 들은 내용 같았다. 반면 상지대 사태를 다룬 초점 ‘아주 오래된 분쟁의 이름, 김문기’는 잊을 만하면 되새겨줘서 좋았다.
정은진: 광복절 특집이라고는 하지만 ‘갑자기 왜 광화문 광장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줌인 ‘소비자도 우롱하는 피죤의 거짓 경영’을 보니 피죤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듯했다.
류하경: 유성기업 노동자 홍완규씨를 다룬 ‘2011 만인보’가 인상 깊었다. 유성기업과 관련한 어떤 기사보다 더 깊이 와닿았다.
사회: ‘종북좌파’ 운운하는 MB 검찰을 다룬 875호로 넘어가자.
김아무개: 내가 너무 보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표지이야기 가운데 ‘오리도 가지 못할 닭짓’이라는 제목은 조금 경박하다. 어렵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시 보니 이 제목을 이해 못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박소영: 김남일 기자의 기사 작성법이 신선했다. 블로그에 쓴 글 같았달까. 첫 번째 중제 ‘여전히 헐값인 표현의 자유’ 이후 친구가 말하는 것처럼 편하게 와닿았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국제 기사
유지향: 소설가 김중혁이 쓴 특집 ‘감상적이고 개인적인 육상 종목 용어설명집’은 열심히 쓴 것 같기는 한데, 왜 이런 지면을 기획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개인적인 얘기를 써서 공감되지 않았다.
정은진: 기획2 ‘폭동 없는 한국은 좋은 나라?’가 인상적이었다. 한국 사회는 평화적 해결이 아니라, 너무 순진하게 당하고만 사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민봉기부터 짚어준 것도 친절해서 좋았다.
김아무개: 미국의 정치인 미셸 바크먼을 분석한 세계 ‘티파티 총아의 불길한 내일’은 훌륭했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 정치의 깊은 부분까지 찾아서 잘 다뤘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성실한 국제 기사였다. 외국 인사 한 명을 이 정도 분량으로 분석한 기사는 드물지 않나.
정은진: 한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기사를 써서 더 와닿았다. 티파티의 분파도 알게 됐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아내를 다룬 ‘2011 만인보’도 좋았다. 농성 중에 가족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는데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사회: 주민투표의 문제점을 표지이야기로 다룬 876호는 어떻게 봤나.
류하경: 먼저 노숙인을 다룬 특집을 얘기하고 싶다. 기존 노숙인 기사가 보여준 차별과 배제를 비판하는 문제의식을 넘어 우리 안의 시선을 다룬 것이 좋았다. 특히 ‘도시위생학’이라는 용어가 적절했다. 노숙인에게 노동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님을 알려줬다.
정은진: 우리와 노숙인을 분리하지 않는 시선이 맘에 들었다. 도표랑 통계를 많이 인용한 기사가 아니라, 시선이 ‘한겨레’스러웠다. 평소 노숙인을 보면 ‘더럽다’ ‘일을 안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이를 반성하게 됐다.
유지향: 노숙인 관련 기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문제가 뭔지 알게 해줘서 더 좋았다.
김아무개: VS ‘경제민주화는 야권 연대의 플랫폼’에서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노무현 정부는 재벌 개혁을 하지도 않았다”라고 한 지적은 의미심장했다.
류하경: 영화 와 을 소개한 문화 ‘뒤틀린 몸과 시선을 이해하다’가 인상적이었다. 보다 을 분석한 내용이 더 많아 작은 영화를 배려한 듯해 좋았다.
사회: 추석 합본호인 877호로 넘어가보자.
김아무개: 표지이야기 ‘부산·경남이 변한다 한국이 바뀐다’에서 부산·경남의 민심 변화를 짚어준 거 시의적절했다. 추석은 정치 담론의 장이 펼쳐지는 날이니까. 이건 사실 주간지 배달 문제인데, 기사에서 박원순이 출마할지 모른다고 했는데 배달 온 금요일에 보니 너무 늦은 감이 있더라.

기사 분담 조절 필요
박소영: 기대한 것보다 별로였다. 그랬겠지 싶은. 당연하고 특별할 게 없었다. 예전에 나온 얘기였다. 제목만 있고 내용이 없는 게 아닌지.
유지향: 부산·경남 민심은 한나라당과 현 정부가 싫은 거지 다른 세력과 복지 세력을 지지하는 건 아닌 듯하다.
정은진: 제목은 ‘변한다’인데 변화가 안 보였다.
김아무개: 난 다르게 본다. ‘부산·경남이 변한다’만으로도 충분히 값한다고 본다. 실제 부산·경남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위기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정은진: 특집 ‘민족 너머 사람을 보다’가 눈에 띄었다.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으로서 재일동포들이 일본인을 도왔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지진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의연한 동포들의 모습이 짠했다.
정은진: 특별한 여름휴가를 다룬 기획은 너무 평범했다. 그걸 인정하면 슬퍼지니까 ‘그렇지만 우린 특별했어’라고 자위하는 느낌이랄까. 차라리 돈 없이 휴가 보내는 법 등 주제를 한정했으면 어땠을까.
사회: 종교인의 비과세를 정면에서 비판한 878호에 대해 톺아봐달라.
김아무개: 표지이야기를 보니 10쪽을 고나무 기자 혼자 썼더라. 큰 기획을 한 기자에게 다 맡기는 건 업무 분량이 너무 많지 않으냐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가 생기지 않겠나. 기사 분량을 나누면 좋을 것 같다.
류하경: 21쪽 하단 표에 ‘ 재인용’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위에 의 설문이라고 해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라.
정은진: ‘김성윤의 18 세상’은 동등한 위치에서 청소년을 봐서 좋다. 같이 생활하는 친구의 눈으로 청소년을 대변하는 것 같다. 기획 ‘의사 사회 성윤리의 현주소를 논하다’는 대담자들이 모두 몸을 사리는 것 같아 의대의 현주소를 역으로 느끼게 해줘 씁쓸했다.
박소영: 특집2 ‘국적보다 중요한 인간의 삶’을 읽고 귀화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었다. 인간의 삶이 중요함을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됐다. 민족주의 너머를 모색하는 의 시각이 느껴졌다.
정은진: 초점 ‘영구 없다, 독선가는 있었다’를 읽고 그동안 왜 심형래씨의 독선적 경영 사실이 묻혀 있었는지 놀라웠다. 다른 사람의 꿈을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에 화가 났다.
유지향: 개인적으로 ‘독자 10문10답’에 나온 젊은 할머니가 반가웠다. 지면에 어르신 관련 기사가 좀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그들도 사회적 약자 아닌가.
사회·정리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내가 편집장이라면
“이소선 어머니를 표지로 했을 것”

유지향 십자가에 납세 도장이 찍힌 878호의 표지는 하려는 말을 명확히 읽어낼 수 있었다. 돌아가신 이소선 여사에 대한 이야기와 관련 사진이 실렸는데, 이야기의 중요도에 비해 분량이 짧았다. 종교인의 납세보다 이소선 여사의 이야기를 표지에 한 번 더 표현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때 이소선 여사를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닌 열사의 모습으로 구성해 표지에 그려낸다면 더 좋을 것이다. 물론 다른 주간지들이 이소선 어머니를 다루지 않은 것에 비해 이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한 것을 모르지 않지만, 더 요구하게 되는 건 이기 때문이다.
박소영 일단 밑밥을 깔자면, 저는 근래의 표지이야기 모두 시기적절하게 잘 선정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시류를 과하게 따르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 지적하면, 876호의 서울역 노숙인 추방 기사가 표지이야기가 되지 못해 아쉽습니다. 874호에 실린 영국 런던 폭동 관련 기사와 남미·중동의 청년 시위 기사에 875호의 ‘폭동 없는 한국’ 기사가 함께 엮이긴 힘들었을까요? 시들해진 ‘반값 등록금’ ‘청년실업’ 등의 논의를 다시금 생각하도록 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폭동을 부추기라는 얘기는 아니고요! ^^.
정은진 이소선 어머님의 마지막을 배웅하고 삶을 되짚은 기사는 의미 있었다. 다만 그분이 우리에게 보인 사랑과 포용의 궤적에 비해 기사 분량이 조금 적지 않았나 싶다. 딸의 처지에서 회고한 어머니, 마지막 날의 사진 기사가 실린 만큼, 그분의 삶이나 그분이 보인 영향력에 대한 기사를 하나 실었으면 더욱 좋았을 듯싶다. 이번호 표지이야기가 무게감이 약했다거나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분에 대한 애도와 아쉬움의 마음을 담아 주어지지 않은 권한이지만 ‘내가 편집장이라면’으로나마 그분께 표지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류하경 875호 이슈추적 ‘용산 참사냐 두리반이냐’는, 철거는 재산권의 문제이기 이전에 생존권 문제라는 점을 상기시켜줘 좋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1,200만원대 회원권 출시! ○○리조트” 광고가 크게 실렸는데요, 내가 편집장이라면 “고품격 리조트” 광고는 다른 쪽으로 옮겼을 것 같아요. 지나치게 예민한 편집장이라 욕먹을까요? 그리고 ‘만리재에서’를 발랄하게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나는 꼼수다’처럼 가볍지만 핵심을 정확히 관통하는 풍자식의 ‘만리재에서’는 의 박하향 나는 에피타이저가 될 것 같아요.
김아무개 874호 표지이야기는 ‘신용등급 강등 이후의 미국’이 아니라 신용평가사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다룬 듯하다. 백악관을 뒤집은 표지 사진과 ‘제국의 몰락’이라는 문구를 보면 독자는 ‘미국 패권의 약화를 다루겠구나’라고 예상할 텐데, 정작 관련 내용은 세 번째로 밀렸다. 표지와 본문 기사 순서가 썩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편집장이라면 ‘흔들리는 미국’에만 초점을 맞췄을 것이다. 신용평가사 문제는 맨 뒤로 두고, 한국 경제의 취약성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전망을 다룬 기사는 아예 뺐을 것이다. 특히 신용평가사 문제는 올해 초부터 많이 거론돼서 뒤늦은 감이 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