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6월30일 저녁 18기 독자편집위원회의 두 번째 회의가 열렸다. 첫 회의 뒤 두 달 만의 만남이어서 어색할 법도 했지만, 안부를 묻는 독편위원들 사이에서 편안한 웃음들이 배어났다. 출판사에서 새로운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는 최고라 위원이 예쁜 수첩을 선물로 돌려 참석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으며, 고교생인 권순부 위원은 “중간고사 시험 기간에 첫 번째 회의가 있었는데 이번엔 기말고사 시험 기간 중”이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부드러운 웃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두 달 동안 발간된 758~766호를 보는 독편위원들의 눈은 한없이 매서웠기 때문이다. 검토할 권수가 평소 회의 때보다 많아선지 유난히 할 말들도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큰 이슈를 다룬 의 태도와 관련해서는 논쟁이 일어날 만큼 치열한 대화가 이뤄졌다. 여기에 연중기획인 ‘지구를 바꾸는 행복한 상상 Why Not’에 대한 쓴소리까지 쏟아지면서 회의 분위기는 요즘 날씨처럼 후끈 달아올랐다.
“급격한 논조 변화” VS “그럴 수 있는 수준”
사회=오래만에 모였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 오늘 살펴볼 이 아홉 권이나 돼 벅찰 듯한데, 아무래도 노 전 대통령 서거 보도부터 얘기해봐야겠다.
박홍근=서거 이후 뿐만 아니라 언론 전반적으로 자성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쟤네들은 이만큼 했지만, 우리는 요만큼밖에 안 했다’는 투였다. 반성한다면서도 ‘내 허물보다는 네 허물이 많다’는 식이다. 그런 가운데 은 ‘굿바이’에서 ‘가지 말라’로 논조가 바뀐 것에 대해 설명조차 없었다. 왜 그랬는지에 대해 먼저 얘기하고 갔더라면 좀더 신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회=허물을 일부 인정하지 않았나. 763호 ‘만리재에서’에 “너무 야박하게, 당신을 지우고 당신의 시대를 뛰어넘자고” 한 데 대해 반성한다고 농축적으로 쓰지 않았나.
이오주은=지난번 회의에서 756호 표지이야기 ‘굿바이 노무현’을 다룬 기억이 난다. 기사를 다루는 방식이 선정적이지 않았냐고 지적했는데, 서거 뒤에도 같은 생각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뒷모습을 보인 756호 표지와 앞모습을 보인 763호 표지 사이에 변화가 너무 크다. 는 이런 점을 두고 “‘노무현 죽이기’를 하더니 말바꾸기를 했다”고 비판하던데, 나는 그보다는 와 매체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이번 일을 진보언론으로서 다시 자리잡기를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나 싶다.
박홍근=해명 또는 설명하는 수준에서 그치기보다는 이를 계기로 (검찰 수사 사건 보도에 대한) 내부 지침을 마련한다든지 시스템적인 논의를 했으면 한다.
사회=안 그래도 회사 차원에서 ‘범죄수사 보도 시행세칙 제정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논의 중이다.
김승미=나는 생각이 다르다. 액수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비리 의혹은 사실이었고, 이 제대로 다룬 것은 잘했다. 논조가 변했다기보다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서거한 만큼 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애도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다.
최고라=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앞뒤가 다르다는 건 아닌 것 같다. 언론이라면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보도하는 게 최우선 아닌가. 주변에서 ‘굿바이하더니 다시 불러세워 인사시킨다’며 말들이 많긴 했지만, 나는 ‘굿바이 노무현’ 표지이야기가 잘못되고 왜곡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시에는 그런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고, 진보 매체에서 먼저 그런 논의할 지점을 찾아주는 게 낫지 않나.
권순부=있는 사실이라면 보도하고, 읽는 사람이 생각하도록 제대로 보도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오주은=보도를 안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서거 뒤 많은 시민들의 생각은 ‘누구는 일상이 비리고 일상이 횡령인데, 10억 해먹은 대통령을 두고 저래야 됐나’였다. 왜 이런 (표적) 수사가 진행되고 있냐는 부분을 제대로 조망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K=나는 아직 노 전 대통령 사진만 봐도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주변 윗분들은 “서거는 무슨 서거냐 자살이지”라며 보수 신문에서 주장하는 얘기들을 늘어놔 괴로웠다.
사회=763호와 764호가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직접 다뤘다면 765호와 766호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행태와 그에 저항해 살아가는 작은 저항들을 다뤘다. 서거 연장선상에 있는 이 이야기들인데 어땠나.
이오주은=은 서거 뒤 포커스를 차세대 주자가 누구인지에 맞추더라. ‘포스트 노무현’에 대해 조명하며 더 부추기는 느낌이었는데, 은 서거 이면에 깔린 정권의 본질과 500만 국민의 애도 등을 짚어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더라. 서로 다른 포커스로 맞춰가는 두 진보 매체의 흐름을 살피는 재미가 있었다.
박홍근=뿐 아니라 도 비슷했다. 은 서거 연장선상에서 이명박 정권 비판과 은밀한 저항까지 길게 가져갔는데, 전체적으로 긴장을 오래 끌고 가 지친 느낌이다.
최고라=나는 공감하면서 763호와 764호를 봤다. 지금 다들 공황상태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포스트 노무현 등 큰 틀에 대한 얘기도 중요하지만, 처럼 국민들의 시야를 정비하고 자기 관점을 정리할 과정을 주는 기사도 필요하다고 본다.
K=보수 신문이 비판받는 이유가 너무 오버하고 침소봉대해서 그런 것 아닌가. 764호 표지이야기 ‘파시즘X의 탄생’에서 파시즘 얘기가 나왔는데 ‘우리도 우익을 너무 침소봉대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라니까 좀 이상한데. (웃음) 내가 보기에도 그들의 단점밖에 안 보이지만 너무 공격한다는 느낌은 들더라.
사회=노 전 대통령 서거 관련 보도는 어느 정도 얘기가 된 듯하다. 758∼762호, 766호에서는 검찰부터 어린이, 입양, 호남 이야기, 경찰의 범죄정보관리시스템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표지이야기로 다뤄졌다.
박홍근=‘어린이 절대평등 선언’(759호) 기사가 제일 아쉬웠다. 최근에 조사한 통계로 기사를 썼는데, 심각한 팩트에 비해 대안은 ‘선언’에 그쳐 좀 어색했다. 아기자기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 심각한 얘기를 하면서 짚어야 할 부분들을 짚지 못했다. 실태는 자세한 반면, 제도적 접근은 미흡했다. ‘절대평등 선언’이라는 두루뭉술한 얘기로 끝낼 주제가 아니지 않은가.
어린이 평등, 선언으로 그칠 일인가김승미=정말 당연한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문제를 풀지 등에 대해 얘기해야 하지 않나. 그런 게 전혀 없더라.
박홍근=760호 기사와도 비교되더라. 입양기관들의 돈 문제나 국가의 무관심 등 다각도로 입양 문제를 조명했다. 아기 살 돈으로 친엄마를 지원하면 어떨지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다. 761호 표지이야기 ‘무등산이 내려앉고 있다’는 좋았다. 뉴타운, 로또 등 돈이면 친구도 배신하는 시대에 유독 광주나 호남에는 청렴이나 결백을 요구하는 심리가 있는데 잘 짚어줬다. 766호 ‘경찰은 지난여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의 ‘심스’(CIMS) 관련 기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전두환·박정희는 목숨을 협박하는 걸로 통치했지만 이제는 각종 정보를 이용해 통치하는 시대지 않나. 옛날엔 옆에 경찰이나 군인만 없으면 됐는데, 지금은 우리끼리 있어도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저항만 은밀하게 된 게 아니다.
K=사람들이 막연하게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등을 통해 감시당하겠다는 생각을 할 뿐인데, 심스 기사를 통해 위험을 체감하고 머릿속에도 남게 되는 것 같다.
이오주은=그런 위험에 대해 알게 돼 좋긴 한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더 걱정이다. 국가나 재벌들의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홍근=그래도 알아야 저항을 할 수 있다. 토론을 통해 퍼지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K=766호 세계 ‘혁명 30주년, 이란은 다시 혁명의 기운에’ 기사를 읽으며 광주를 보는 듯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부정선거가 없었다고 얘기했는데, 그럼 100% 넘는 투표율을 보인 지역들은 뭔가. 그 사람이 보는 이란과 국민들이 얘기하는 이란은 서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우리도 비슷해져가는 듯하다. 정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며 추진하는 정책들을 보면 과연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국가나 국민은 무엇인지 궁금해지더라.
최고라=이 올해의 슬로건으로 내세운 ‘Why Not’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사실 처음 초콜릿 기사는 히트를 쳤는데, 그 뒤로는 기사가 생활밀착형이냐 아니냐가 확실히 나눠지는 것 같다. 유럽의 친환경 슈퍼마켓 이야기 등은 굉장히 빨리 넘기게 되더라. 친환경이나 지구 살리기를 위해 복사용지를 덜 쓰자는 게 나아갈 방향이지만, 좀더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출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현지 취재 기사가 나오는데, 방문지들이 국내에 많이 소개됐거나 책으도도 이미 나온 곳들이어서 신선함이 좀 떨어지더라. 국내와 엮어서 얘기를 끌어내야 설득력이 높지 않을까.
박홍근=‘Why Not’이라는 연중기획이 과 따로 노는 느낌이다. 미래 제안 형식이어서 피부에 와닿지도 않는다. 선진국 얘기를 계속 하는데, 선진국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잖나. 이런 게 공정무역이고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한다더라 식의 기사는 너무 피상적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같은 것으로 연중기획을 했으면 어땠을까.
최고라=‘워킹맘’ 얘기는 주변 독자들 호응이 높더라. 얘기가 되는 것도 있긴 하다.
이오주은=중요한 문제인 만큼 다룰 수는 있다. 문제가 된다면 좀더 잘 알 수 있게 전달하고, 국내에서 찾을 수 있는 대안은 뭔지 등 보강이 필요하다. 사실 사회 전반적으로 어젠다만 있을 뿐 실제 대안은 없는 상태에서 이 ‘Why Not’을 통해 콘텐츠를 모으고 있는 것 아닌가.
K=나는 ‘Why Not’을 챙겨보는데, 너무 외국 사례만 얘기하더라. 국내 사례를 좀더 소개했으면 한다.
최고라=비닐봉투를 없앤 마트도 있잖나. 우리가 움직였을 때 가장 먼저 바꿀 수 있는 것에 눈길을 먼저 주는 게 연중기획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큰 포커스로 옮겨가면서 외국 사례만 얘기하니까 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권순부=처음 초콜릿 기사가 나왔을 때는 초콜릿을 사러 가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너무 먼 나라 얘기만 하는 듯해서 잘 안 본다. (웃음)
‘Why Not’-‘아름다운 동행’ 결합 고려해볼만김승미=나도 비슷하다. 지금은 뭘 말하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 그렇다면 ‘아름다운 동행’ 캠페인에 참여하는 단체를 다뤄보는 건 어떨까. 사실 캠페인에 참여하는 단체들을 잘 모르지 않나.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 없이 캠페인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Why Not’ 차원에서 잘 알지 못하는 단체를 소개도 해주고 동참하도록 하는 코너를 꾸미는 건 어떨지.
최고라=‘아름다운 동행’ 캠페인에 참여하는 단체 중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 모르는 곳이 꽤 되더라. ‘Why Not’에서 외국 사례만 다룰 게 아니라 비슷한 우리나라 단체도 소개해주면 좋지 않을까.
사회=좋은 제안이다. 적극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사회·정리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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