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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거래’가 수상하다

등록 2008-07-04 00:00 수정 2020-05-03 04:25

711호부터 715호까지 대토론회… 촛불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런 ‘전제’는 달갑지 않네

▣ 정리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광장에서 이명박 정부 정책과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민대토론회’가 벌어진 6월24일 화요일, 한겨레신문사 한쪽 회의실에서는 기사에 대한 ‘대토론회’가 펼쳐졌다. 3주 연속 이어진 ‘촛불집회’ 관련 표지 이야기를 할 때는 독편위원의 개인적인 소회가 풀려나왔다. 김기홍씨는 진주에서 촛불문화제 공연에 불려나가 피리를 불었으며, 강인경씨는 천안 시내를 아이와 함께 걸었다고 한다.

711호 10대 레즈비언은 어떻게 확신할까

이미지: 특별히 네 개의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먼저 표지이야기. 그동안의 ‘인권OTL’에 비해 훨씬 좁은 소재를 밀도 있게 다룬 점이 돋보였다.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레즈비언 모임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한데 표지사진 설명은 어디로? 영화 포스터라던데. 궁금증을 뒤로하고 다음 쪽으로 넘어가보면 나오는 이스라엘 독립 60주년 특집 기사가 나온다. 누군가에겐 희망의 시작(욤 하츠마우트)이었던 그날, 1948년 5월14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재앙의 시작(나크바)이었다는 지적이 신선했다. 세대 간 괴리를 다룬 점도 눈길을 끌었다. “처음엔 이내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며 고향을 그리는 노인과 “난 요르단인일 뿐”이라며 냉랭한 젊은이는 곧 분단 60주년을 맞는 우리의 모습은 아닐지. 이어 심각한 기사들의 질곡을 지나 ‘레드’ 면에 들어서면 한 청량한 기사가 나를 맞는다. 영양실조 걸리는 메뉴 개발자? 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은 이 기사는 메뉴 개발자란 생소한 직업을 그리며 그들의 고충과 업계 일반의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버무려내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기사 주인공들은 ‘술집’ 메뉴 개발자. 메뉴 개발자 전체로 일반화할 수 있는 예일까? 마지막은 다시 앞으로 넘어와 미국산 쇠고기 파문에 대한 두 교수님의 기고. 필자 선정도 훌륭했지만, 그동안 추이 보도에 그쳐 아쉬웠던 촛불 이야기를 톺아보는 계기가 돼 좋았다.

홍경희: 조금 다르지만, 10대에 정체성이 정해지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어렵다.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인데,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까에 대해서 기사 첫머리에 알려줬으면 좀더 공감하기 쉽지 않았을까.

김기홍: 레즈비언 사이에 새로 개발된 은어가 나온다. 이것을 다 밝힐 필요가 있었을까. 자기들끼리만 알고 있는 용어인데, 그것을 변경했던 이유가 이런 ‘외부의 폭로’ 때문이 아닐까 한다.

712호 죽음의 품격, 표지의 품격

임현욱: 한 장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연상되는 표지가 눈에 띄었다. 표지이야기인 ‘죽음의 품격’이 느껴지고, ‘표지의 품격’도 느껴졌다. “인간답게 죽고 싶다”는 절박한 호소가 가슴을 파고드는 표지이야기는 인간으로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인상적인 기획이었다. 특집 부처 대변인회의 참고자료 기사는 놀라웠다. 특히 상자기사로 다룬 문화부 홍보지원국 교육자료는 충격적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보도 그 뒤’는 서명용 펜이라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소재에 접근해 재밌게 이야기했다. 특히 마지막 문장 “모나미 300원짜리 플러스펜”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프로농구 최고령 선수인 이창수 선수의 이야기를 다룬 ‘스포츠’는 오랜 시간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온 이창수 선수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홍경희: 사회복지의 성긴 그물망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영향에 가장 취약한 자들이 겪는 고통을 보여주었다. 호스피스는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도다. 인권을 다룰 때 ‘빼앗긴 권리’ ‘없는 권리’를 많이 다루는데, 이번에 보편적 제도의 결여가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히 담았다. ‘피해자-가해자’의 접근법이 아닌 기획은 독자가 인권을 받아들이는 폭을 확장시킨다.

한성곤: 차용규의 카작무스 의혹 내용을 읽어보면 차용규씨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국내 투자에 대해 이런 것 같다, 저런 것 같다는 의혹만 제시하고 있다. 한번 찔러보기만 하는 의혹 기사는 아닌가. 경제 ‘3등은 소중하다’ 같은 내용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적 실정과는 다르다. 시장 경쟁적인 상황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며 이렇게 되면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3등이라고 해봤자 꼴찌가 3등이다. 그리고 이 서너 개 기업이 담합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기름값 담합에서도 잘 나타나지 않나.

713호 이동관의 씁쓸한 코미디

한성곤:713호부터 촛불과 관련되 기사가 표지 전면에 배치됐는데, 계속 타오르는 촛불이 두려워 깨진 유리창을 어떻게든 맞추려는 경찰이 황당하면서 어이가 없다. 그러나 촛불집회를 하면서 같은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집단으로 비난하는 모습 또한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더불어 쇠고기만큼이나 관심이 높은 수돗물 민영화에서는 기업과 권력의 유착이라는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아직 미미하다고 여겨진다. 오히려 라는 느낌이 드는 기사는 이번 청와대 인사에서 불사조로 환생한 이동관 대변인의 어찌할 바 모를 춘천 땅이라는 씁쓸한 블랙코미디와 굶주리는 북한의 실상이었다. 북한 기사는 같은 동포로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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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인권OTL’에 미국 비자 발급 굴욕기는 어울리지 않았다. ‘지문 찍기’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정작 기분 나빴던 건 에티켓 때문이더라.

임현욱: ‘난 네가 병원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에서 성형외과가 나오는데, 검찰청 등의 기록 보관도 문제다. 검찰청에서 근무하다 보면 사건 기록들이 무방비로 방치된 채 있는 걸 보게 된다. 성폭행 증거 사진, 살인사건 사진 등을 스캔해서 가져갈 수도 있다. 검찰청에서도 그런데, 세무서에서도 안 그럴 리 없겠다.

714호 예비군복과 맨발 청춘의 대비

홍경희: 표지이야기 ‘협상 타결 전에 쇠고기 거래됐다’는 쇠고기 거래가 한-미 간 거래라기보다 이해관계가 얽힌 경제자본의 거래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협상의 유·불리만 논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협상을 둘러싼 실체들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보여줬다. 이렇게 파헤치고 추적하는 기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 특집 ‘16빛깔 촛불 무지개’는 현장성을 재치 있게 보여준 기획이다. 다른 목소리들을 한데 불러모았다. 예비군복 입고 나온 이와 그런 이들이 불편하다는 ‘맨발의 청춘’의 대비가 서로 다른 것 같지 않았다. 지역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대구 기사의 소개가 반가웠다. 대한민국 집속탄 생산국 기사의 사진을 보며 혐오감과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다. 한국(기업)이 대량살상무기에 이 정도로 엮여 있을 줄 몰랐다. 비판의 칼을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로도 겨눠야 할 것이다. 레드 기획 ‘야구는 미친 짓이다’에 담긴 열정이 빛났다. 기사의 어조, 내용, 무엇보다 취재 대상에 담긴 뜨거운 기운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했다. 야구에 문외한인 사람도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기사였다.

윤이삭: 714호의 표지는 낚시성 아닌가 싶다. 표지를 보면 ‘협상 타결 전에 쇠고기가 거래’됐으며, 이를 수입업자 25명이 양심고백했으며, ‘30개월 이상 계약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는 고발인 것처럼 했다. 하지만 내용에서는 수입업자의 모임에 참석한 것이고, 표지에 나온 말은 한두 줄만 나온다. 그 내용에 대해서도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면 수입업자들은 당연히 수입을 할 것이고 타결 이후를 위해서 가격 협상과 계약을 한 게 무슨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수입업자들의 양심고백 부분과 ‘협상 타결 전 거래’ 부분을 두 개의 기사로 분화시켰다면 좀더 깔끔했을 것 같습니다. 해당 기사의 의도는 미국 축산기업의 막강한 권력을 강조함으로써 우리쪽 일부 수입업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허가제를 기반으로 한 자율규제가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쇠고기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국 축산기업과 우리 쪽 수입업자들이 협상타결 여부를 정확히 예측하고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편집자)

715 국내는 아고라, 국외는 블로그

강인경: 비슷한 느낌의 야간 촛불집회 표지가 연속 3주 이어져 다소 지루한 느낌이다. 한 번쯤은 발칙하고 환한 분위기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두께가 얄팍한데도 헌법 전문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편집장 칼럼을 보니 의무감 아닌 다른 마음으로 헌법을 일독해보고 싶다. 아고라를 통해 촛불 민심을 읽어보려 한 기획을 통해 촛불에 담긴 다양한 의견을 엿볼 수 있었으나,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은 ‘촛불은 계속 타올라야 한다’는 전제가 설문의 결론인 것처럼 읽힐 수 있어 문항 구성이 적절치 못했다.(설문조사 대상이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이 아니라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커뮤니티 회원들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설문과 달리 그런 전제가 어느 정도 깔려 있었습니다-편집자) 미국산 쇠고기에 관한 ‘줌인’의 세 기사는 일관성이 있어 좋았다. 쇠고기 시장이 ‘셀러스 마켓’ 구조라는 지적을 상세히 알려줘 자율규제의 허구성을 명확히 이해하게 해주었다. 기름에 관련된 경제 기사들을 읽으면서 현실이 더욱 갑갑하게 느껴졌다. 정유사 원가 공개를 압박하는 것도 오일쇼크 시대를 견디는 한 방법이 아닐까? 미국 대선을 해외 블로거들의 견해와 함께 소개한 기사는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제3세계와 아랍권 블로거들의 견해를 접할 수 있어 재미있었다. 아줌마들의 ‘진화’를 잘 짚어준 영화 기사를 보니 영화관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홍보사는 고마워해야 한다.

임현욱: 표지이야기가 사이버 공간을 다룬 기사인데 표지 사진은 이를 잘 살리지 못한 것 같다. 숨은 인권 찾기 ‘여성 보호 됐거든요’는 충격이었다. 여성 보호가 항상 옳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이미지: 인권 OTL ‘전·의경은 현대판 노예인가’에서 다룬 문제는 군대의 문제로 일반화해야 한다. 시위 진압 이야기만 하지, 그들 내부의 이야기는 없다. 예전 이라크 파병 갔다 온 군인들 이야기처럼 실제적으로 다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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