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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캠페인] “정서상의 반일에 머무르지 말라”

등록 2007-05-18 00:00 수정 2020-05-03 04:24

야스쿠니 신사와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 대만의 치와스 아리 입법의원

▣ 타이베이=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스나미 게스케 프리랜서 기자

치와스 아리(41) 대만 입법의원의 이름은 세 개다. 첫 번째 이름은 메이진(金素梅·성보다 이름을 먼저 발음), 두 번째 이름은 가오진 쑤메이(高金素梅), 세 번째 찾은 이름은 대만 타이알족 원주민의 고유 이름인 치와스 아리다. 그는 1993년 베를린영화제의 황금곰상을 받은 리안 감독의 영화 에 출연했던 세계적인 연기자에서 야스쿠니신사와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 정치가로 성장했다. 그는 “대만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배울 기회를 뺐겨 아직 식민 상태에 있다”며 “한국의 젊은이들도 정서상의 반일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야스쿠니신사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주민을 사람으로 보지 않은 일본

이름이 네 자인 점이 눈길을 끈다.

=옛날 이름은 아버지의 성을 딴 메이진이었다. 아버지는 중국 안후이성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대만 타이알족 원주민이다. 대만 입법의원(우리의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기 위해 어머니의 성인 가오(高)를 앞에 붙였다. 원래 어머니도 가오씨가 아니었지만,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륙에서 쫓겨 내려오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원주민들의 이름을 보면, 우리 침략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원주민 이름은 치와스 아리다. 치와스는 ‘아이’라는 뜻이다. 아리는 어머니의 원주민 이름인데, 풀자면 ‘아리의 아이’라는 뜻이다. 참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름이다.

원주민 정체성을 갖게 된 계기는.

=연예 활동을 할 때도 어머니가 원주민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아버지는 장제스와 중국에서 넘어온 군인으로 교육을 많이 받은 분이었다. 난징 대학살 얘기를 자주 해주셨다. 어머니는 강하고 훌륭한 분이었지만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에 원주민의 정체성에 대한 교육을 해주시지는 못했다. 게다가 대만 국민당이나 민진당 정부는 원주민이 일제 침략으로 당한 고통을 가르치지 않는다. 2002년 2월에 입법의원이 됐고, 얼마 뒤 친구가 보여준 사진 한 장과 만나게 됐다. 원주민 한 명이 손이 뒤로 묶인 채 흰 천으로 눈을 가리고 일본군에게 참수당하는 장면이었다. 큰 충격과 아픔을 느꼈고,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이후 활동은.

=일본인들은 대만 원주민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우리를 ‘번’(蕃)이라고 불렀는데, 번은 동물이라는 뜻이다. 대만 원주민 2만8863명이 우리를 죽인 침략자들과 함께 야스쿠니신사에 일본을 지킨 수호신으로 모셔져 있다. 그 대부분은 원주민들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만든 다카사고 의용대(高砂義勇隊)원들이었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2002년부터 ‘조상들의 혼을 모셔오자’(還我組靈)는 운동을 벌였고, 오사카 지방법원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신사참배가 위헌임을 따지는 소송을 제기했다(그 재판은 1심 패소 후 2심에서 승소했다). 지난해 8월, 대만 합사자들을 야스쿠니신사에서 빼오자는 소송을 다시 제기했다.

“역사적 사실 대면하려는 용기 없어”

힘든 점은.

=가장 힘든 것은 대만 정부의 무관심이다. 민간에서는 도와주는 사람이 많지만 정부는 너무 무관심하다. 일본 법원의 보수적인 태도도 문제다. 앞으로 계속 일본 법원에서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하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데, 그들은 역사적 사실을 대면하려는 용기가 없다. 그래도 계속해야 할 일이지만, 이런 것들이 고생스럽다. 올해 12월 둘째 토요일에 입법의원 선거가 있다. 재선 여부와 관계없이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한국이 어느 정도로 야스쿠니신사를 이해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더 많은 젊은이들이 역사를 발굴해내고 진실을 밝히는 데 참여했으면 좋겠다. 정서상의 반일 감정에 머무르지 말고 야스쿠니신사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더 깊이 이해를 했으면 좋겠다. 야스쿠니신사는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군국주의나 전쟁이 아닌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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