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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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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캠페인] ‘명도 소송’이라는 이름의 불도저

등록 2006-12-29 00:00 수정 2020-05-03 04:24

무자비한 강제 철거를 합법적인 법 집행으로 인정하는 대한민국…법원은 1심 판결을 뒤엎고 평택 주민들에게도 ‘부동산 인도’ 명령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1980년대 기자 생활을 했던 선배들만큼은 아니겠지만, 2001년 기자가 된 이후 적지 않은 강제 철거 현장을 지켜봐왔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부수는 광경을 지켜보는 일은 난감했다.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83 일대 보금자리 마을이 허물어진 것은 2004년 12월31일이다. 이상렬(당시 나이 75) 할머니는 낮잠을 자다 포클레인 소리에 놀라 건물 밖으로 뛰쳐나와야 했다. 무너져내린 집에는 할머니의 이부자리가 여전했고 싱크대에는 씻지 않은 그릇과 수저가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편 담에는 동네 아이들이 그려놓았는지 “꿀꿀꿀 밥 줘”라는 낙서가 선명했다.

인권 유린, 유엔에서 수모 겪기도

서울 을지로 삼각·수하동에 철거 용역들이 난입한 것은 2004년 11월7일 새벽 4시였고, 한국토지공사는 2005년 8월23일 새벽 4시에 용역업체 직원 400명을 투입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판교 세입자들의 집을 부쉈다. 재개발 조합이나 토공 같은 공공기관에서는 사람이 사는 집을 (그것도 겨울이나 새벽에) 강제로 부수는 행위를 ‘합법적인 법 집행’이라 불렀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저항 과정에서 주먹을 휘두르게 마련인 세입자들을 경찰서로 연행했고, 검사는 이들을 기소했으며, 법원은 어김없이 수백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거나 수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국제 사회에서는 강제 퇴거와 철거를 금지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돼왔다. 우리나라는 한때 유엔 회의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가장 잔인하게 강제 철거가 진행되는 나라로 거론되는 수모를 겪었고, 1995년에는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로부터 “대책 없는 강제 퇴거를 중단할 것”을 권고받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집으로 들이친 철거용역들이 앞세운 법원의 집달관이었다. 취재를 거듭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사람을 집에서 강제로 내보낼 수 있는 ‘명도 소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때려부수는 것은 말 그대로 합법적인 법 집행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미군부대 확장 반대를 외치며 평택 대추리·도두리에 남아 있는 주민들을 쫓아낸 뒤, 그 집을 허물 수 있는 법적 권한을 인정받은 것은 2006년 12월15일이다. 서울고등법원 제30민사부(재판장 김경종)는 평택 주민들의 손을 들어준 1심 결정을 뒤집고 “피신청인(평택 주민)들은 점유 부동산에 대한 점유를 풀고 이를 신청인이 위임하는 집행관에게 인도하여야 한다”고 결정했다. “피항고인들 중 상당수는 이 사건 이전 사업을 정치 문제화하고 단체를 결성해 조직적으로 사업 추진을 방해하고 있으며 일부는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폭력행사로 유죄 판결을 선고받는 등 이 사건 부동산의 점유가 생존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될 여지가 있다.” 재판부는 평택 주민들이 “보리 파종을 하는 등 영농에 종사해 부당한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고도 했고, “사업이 지연될 경우 1년에 약 1천억원의 국고 손실이 예상된다”고도 했다. 명도 소송을 통해 강제 철거를 할 때는 계고장 발부 등 사전에 강제 철거 날짜를 고지할 의무가 없다.

4~5년 늦춰지는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김택균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불과 며칠 전에 미군기지 이전 사업이 4~5년 정도 늦춰진다고 정부가 인정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원고 대한민국은 재판부에 제출한 항고 이유서에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이유는 본안소송을 통해 가옥의 인도 절차를 밟으면 그 사건이 너무나 지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시간이 촉박해 평택 주민들을 하루빨리 내쫓아야 한다”는 말인데, 4~5년이면 포클레인 없이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충분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주민들의 집을 허물고 그 터를 4~5년 동안 비우면 대한민국이 얻게 되는 구체적인 이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평택 주민들은 12월18일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돌려 “대추리 생가 철거로 주민들을 거리로 내모는 인도가처분 결정은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합법을 가장하고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강제 철거라는 인권유린 행태를 허가한 재판부와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분노를 금할 수가 없습니다.” 1943년에는 일본군의 ‘곡괭이’에, 1952년에는 미군들의 ‘도저’(평택 노인들을 불도저를 그저 도저라고 부른다)에, 2007년에는 대한민국의 포클레인에 대추리는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주민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하루하루를 너무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자국민들의 피끓는 절규에 항고인 대한민국은 말이 없다.



[들이운다] 잘못을 또 주민들한테 떠넘겨


기지 이전 5년 지연된 거는 지들이 책임을 져야지

송재국(69)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0-29

한국 정부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이 4~5년 늦춰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실적으로 2008년까지 사업을 완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 완료 시점을 2013년께로 잡은 것이다.




글쎄 그게 우리 주민이랑 상관있겠나 싶어. 쟤들이 5년 지연 이유를 주민들의 반발을 이유로 들었더라고. 근데 지들이 지금까지 잘못한 거를 주민들한테 떠넘겨서 주민들 때문이라고 하는 거는 면책을 하기 위한 것이야. 지금까지 주민들의 말을 제대로 들은 적 있냐고. 5년 지연된다면 그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겠지. 송탄 합쳐서 349만 평인데 그 땅을 5년을 묵혀야 한다는 거 아니여. 아무것도 생산 못한다는 거 아니야. 내가 얼른 생각해도 1년에 쌀·보리 생산량이 170억원 정도 되는 양인데.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사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생산을 못하게 했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할 거 아니야. 이렇게 큰 정책을 실패했으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지. 근데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또 계속 폭력적으로 할 거 아니야. 잘못한 거를 잘못해놓고 아무것도 안 하면 그거는 법이 아니지. 5년 연기되었다고 하니까 속이 좀 상쾌한 기분은 드는데 그러면서도 정부에서 자꾸 밀어붙이고 괴롭히고 빨리 나가라고 할 거라고. 어차피 미군 부대 창설되는 건 바뀌지 않을 거잖아. 2006년 12월까지만 참아보자고 이만큼이라도 남아 있는 건데.
2006년만 해도 그려. 농촌 생활이라는 게 빚이 조금씩 다 있거든. 땅이 공탁 걸려서 보증 서줄 사람도 없어서 할 수 없이 조금씩 공탁금 찾아서 쓴 거야. 사실 저놈들한테 시달리는 것보다 이런 문제 땜에 마음이 더 괴롭다고. 사회단체에서 겨울나기를 해준다고 하지만 농촌 집들이 단열이 잘 안 되니께 기름값이 많이 들어가는 데 보통 문제가 아니여.
난 대전이 고향인데 스물네 살부터 10년 동안 여기 미군 부대에서 경비일을 했어. 그러다 땅이 너무 좋아서 여기서 생산되는 거 먹고 살아보겠다고 경비일 그만두기 전에 1200평짜리 사놨다가 자리잡은 겨. 경비일 하다가 우리 집사람도 만났지. 결혼해서 대추초등학교 앞에서 학용품이랑 애들 과자 파는 구멍가게 하면서 농사지었어. 그때 학교 막 지었을 때였거든. 여기 와서 농사지은 게 내가 내 땅에서 농사를 처음 지어본 거여. 원래 농사를 안 지어본 사람이니께 책도 빌려다 보고 노력을 정말 많이 했어. 땅의 중요성을 느낀 곳이여. 그래서 나는 영원히 대를 물려서 살 수 있는 터전이다 생각을 하고, 내가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이렇게 되니까 제일 한심하지.
실제로 우리는 대단한 거여. 이 싸움은 우리가 이긴 거야. 분명히 나는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졌다면 헬리콥터로 철조망을 실어올 리 없잖아. 비행기도 군용 물품인데 농사짓는 걸 방해하기 위해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그걸 갖다가 그렇게 하고 농수로에 시멘트 붓고. 완전히 지들이 졌으니까 힘으로다 하는 거지. 난 우리가 졌다고 생각 안 해. 이기기는 했는데 힘에 밀려서 그냥 밀려나고 쫓겨나는 거지. 졌다고는 생각 안 해.

글·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평화의 땅 1평 지키기] 김지태 이장의 새해를 위해

115,991,066원


12월22일 현재 1억1599만1066원
국방부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대추리도 새해를 맞습니다. 그렇지만 김지태 대추리 이장은 여전히 안양교도소에 갇혀 있습니다. 감옥에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습니다. 격려의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고, 청와대 쪽에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항의 엽서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홈페이지(www.antigizi.or.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정말 중요한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지난 12월11일에 이어 12월20일 신한은행을 통해 된장 2kg을 보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돈을 보내주신 독자분께서는 물건을 보내드릴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연락처를 보내주실 전자우편은 ptsallim@hanmail.net이고 전화번호는 019-9151-2332입니다. 연락처 없이 돈만 보내주시면 저희가 정말 곤란합니다. 꼭 연락주십시오.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신수동성당(10만원) 전수지(5만원) 김미숙(5만원) 한영만(10만원) 권혁 된장2KG(2만6천원) 송요권(10만원) 홍지연(10만원) 1003929070(3만원) 김수경(20만원) 황인아(5만원) 황인아(5만원) 유희정 하성원(5만원) 김민재 조용현(10만원) 홍지연(5만원) 남상길(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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