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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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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캠페인] 국제엠네스티가 나섰다

등록 2006-12-08 00:00 수정 2020-05-03 04:24

엠네스티 관계자들과 함께 안양교도소로 가서 면회한 김지태 이장…“내 석방보다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의 신념이 흔들리지 않는 것”

▣ 안양=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그의 얼굴을 다시 본 것은 여섯 달 만이다. 12월1일, 안양교도소 특별 면회실에서 만난 대추리 김지태(48) 이장의 오른쪽 가슴에는 1941번이라는 수인번호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기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들에 나가 농사짓지 못한 농부의 낯빛은 창백해 보였고, 수감 생활의 고단한 때문인지 살도 좀 빠진 것 같았다. 그는 6월6일 경찰에 자진 출두했고, 며칠 뒤 구속됐다.

“정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국제앰네스티는 11월30일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을 이끌다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김지태 이장을 양심수로 지정해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펴나가기로 결정했다. 국제앰네스티가 국가보안법이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아닌 한국인 수감자를 양심수로 지정해 석방 활동을 벌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위해 라지브 나라얀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담당관과 김희진 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국장이 안양교도소를 찾았다.

김 이장은 감옥에서 보낸 반년 동안 많은 고민을 해온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져줘 고맙습니다. 모든 게 그저 무의미하게 끝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기쁘네요.” 나라얀 조사담당관은 감옥에서 불편한 것은 없는지, 건강이 나빠지지는 않았는지, 변호인은 자유롭게 만나고 있는지 꼼꼼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김 이장은 “사람들과 같이 떠들고 노느라 감옥에 있는지 깜빡 잊을 때도 있다”고 말했고, “20㎡ 크기의 방에서 15명이 같이 산다”고도 했고, “같은 방 사람들이 스포츠신문을 좋아해 종합 일간지는 못 볼 때가 많다”고도 했다. 그는 B형간염 때문에 1년 전부터 치료를 받아오고 있다.

나라얀 조사담당관은 “정부와 주민들 사이에 대화가 있었냐”고 물었다. 이장은 “대화는 없었고 명령이 있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주민들이 모여 만든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추초등학교를 허물기 6일 전에 대화 제의를 해왔다. 그들은 주민들과 두 번의 만남 끝에 “농사를 중지하고, 국방부의 기지건설 사업에 협조하지 않으면 대화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최후통첩 날짜는 5월1일 밤 9시였고, “회신을 해달라”는 날짜는 다음날 낮 12시였다. “정부가 내놓으라고 했고, 우리가 반대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고향, 재산, 민주적인 질서”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겁니다. 정부와 국방부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거죠. 미군기지를 옮기면 국방 전력이 극대화된다는 것 같고, 다른 지역에서 돌려받는 땅이 많아 전체적으로 이익이라는 것 같은데. 그게 대한민국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확실히 맞는 얘기냐는 거죠.” 평택으로 옮겨오는 미군은 북한의 침략에 맞서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부대가 아닌, 해외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부대다. 미국 관리들은 이를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말로 바꿔 불러왔다. “정부에서 사람들의 저항을 순수하게 보지 않고, 빨갱이다, 폭력적이다, 외부 세력이 개입돼 있다고 말합니다. 조용히 투쟁할 때는 꿈쩍도 않다가 누가 몽둥이 하나라도 들면 과격·폭력 시위다라며 올가미를 씌우죠. 국민들을 그렇게 옭아매서 정부와 국방부가 얻으려는 게 도대체 뭘까요.”

그는 인간적으로도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대추리에는 늙은 부모님과 아내와 이제 고3이 되는 아들이 있다. 이장은 ‘지난 1년 동안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했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다. 1심 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연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판결이 피고인의 말장난에 좌우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정말 뉘우쳤는지 아닌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는 뉘우칠 이유도, 필요도, 뉘우쳐서도 안 되는 사람 아닙니까.” 이장은 “그 사람들도 그런 판결을 내린 것에 고통을 느껴야 합니다”고 말했는데, 판사가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서글픈 생각이 들어 답장도 못 보내

나라얀 조사담당관은 “대추리 문제는 국제앰네스티에도 매우 중요한 사례”라고 말했다. 그동안 국제앰네스티는 국가보안법이나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 쪽에 “즉각 석방”을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그렇지만 대추리 사례는 평범했던 한 농부에 대한 정치적 억압과, 강제 수용이라는 사회·경제적 문제와, ‘전략적 유연성과 미국’이라는 국제정치적 이슈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김 이장은 “나 개인의 석방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내가 나가고 안 나가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나가면 또 들어올 사람이고, 내가 들어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들어올 것 아닙니까.” 그는 “사람들의 신념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따금 다가오는 서글픔에는 어쩔 수 없는 듯 보였다.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오면 답장을 안 씁니다. 펜을 잡고 종이 앞에 서면 왠지 모르게 서글픈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단 한 통도 안 썼습니다.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들이운다] 논은 빼앗겼어도 여기서 살면…


동네 사람들이랑 끝장 보고 다 같이 하는 대로 해야지.

민병대(69)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36-6
가을 운동회가 열렸다. 국방부가 무너뜨린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을 다지고 정리해 하루 종일 뛰어놀았다. 대추리 할아버지들은 수십 년 만에 자치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려서 자치기 많이 했지. 옛날에는 토끼치기라고 불렀어. 학교에서도 하고 동네에서도 하고. 자치기하다 동네 애들 눈도 다치고 그랬지. 나도 여기 눈 위에 흉이 아직도 있어. 난 자치기를 젤 좋아했어. 젤 재밌지. 이번 운동회에서 수십 년 만에 한 거여. 어릴 적엔 한 번 때리면 이렇게 멀리 갔어. 한 100자 200자씩 가고 그랬어. 이만한 막대기로 재는 거여.
어릴 때 재밌게 놀았지. 우리 호랑이띠 친구가 대추리에 18명이었어. 죽고, 나가고 지금은 네 명밖에 안 남았지만. 사방치기, 땅따먹기, 팽이치기, 제기차기도 하고. 무지 높은 소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서 놀고. 그렇게 놀다 나무가 부러지면 그걸 가지고 썰매 꼬챙이 만들려고 그런 겨. 겁대가리 없이 그러고 놀았지.
우리는 객사리 부용국민학교까지 걸어다녔어. 아침에 죽 한 숟갈 먹고 걸어가면 배고파 죽겠지. 한 시간 반쯤 걸리는 데를 학교 끝나면 또 걸어와야 해. 그 길이 너무 배고프니께 송진을 빼먹으면서 왔어. 소나무 쭉 짜서 빼면 송진만 나오거든. 그거 먹으면 대변이 안 나와서 어른들이 막 애들 붙잡고 대변 빼주고 그랬어. 맛이 있으나 없으나 배고프니까 먹는 거지. 여름에는 오이 심어놓은 거 몰래 가서 먹고. 가을엔 배추, 무 죄 뜯어먹고. 배고프니까. 참외 따먹다가 들켜서 뒤지게 혼나고 매도 많이 맞고.
초등학교 2학년 땐가. 아버지가 산 어디 가서 앉아 있으래. 점심 때쯤 되니까 아버지가 바가지에다 밥을 갖다줬어. 쌀은 가끔 가다 있고 보리밥에 짠 고등어 이만한 거 한 토막, 숟가락하고 갖다주고 먹으라는 거야. 정말 맛있게 먹었지. 얼마나 맛있던지 씹기도 아깝더라고. 밥이 귀했으니께. 근데 시방 생각해보니께 부잣집 타작해주고서 일해서 얻은 밥을 자기는 안 먹고 날 준 거여. 굶어서 일을 죙일 하니 얼마나 힘들었겠어. 자식이 뭐라고. 그때는 배고프니께 갖다주는 거 먹었는데 나중에 나이 들어 생각하니께 눈물이 나오더라고. 기막히더라고. 그렇게 굶어가며 자식을 갖다준 겨. 구 대추리에서 쫓겨나서는 땅속에 살았어. 땅 파고선 지붕을 이엉으로 엮어서 땅속에서 살았다고. 그 속이 얼마나 따뜻했다고. 밥은 바깥에서 돌 세워놓고 솥 갖다놓고 해먹고. 그러다 나중에 토담집 지었지. 나 여기 와서 집을 네 번 지었어. 기와집 지었을 때는 비행기 소리에 기와가 흔들려서 기왓장이 떨어지고 그랬어. 비행기 떴다 앉았다 하면 먼지 일고 창문이 덜덜 떨리고. 말도 못하게 힘들게 살았어.
이렇게 벌써 논은 빼앗겼어도 여기서 계속 살면 좋겠어. 오늘 운동회도 재밌었지. 젊은 사람들이 땅 다지느라고 고생도 많이 하고. 계속 살아야지. 아무도 모르는 데 가서 어떻게 살아. 요즘에는 마음이 편해졌어. 생각 안 하려고 하지. 한 번 생각하면 밤새 잠이 안 와. 수면제도 많이 먹었어. 그래도 나갈 마음은 없어. 동네 사람들이랑 같이 있다 같이 살아야지. 끝장 다 보고 다 같이 하는 대로 해야지.
글·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평화의 땅 한평지키기]‘평화의 쌀’드세요

113,815,056원

12월1일 현재 1억1381만5056원
이제 대추리는 추운 겨울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제대로 농사를 짓지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밤에 땔 기름값이 없어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그래서 평택의 질 좋고 맛있는 쌀을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에게 팔아 투쟁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메일 한 통이면 국방부의 철조망이 가리지 못한 자투리 땅에서 농민들이 노심초사하며 키운 ‘평화의 쌀’을 집에서 받아 맛보실 수 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은 20kg짜리 쌀 한 포대가 5만원이고, 부안의 문규현 신부가 직접 키운 콩으로 만든 6년 묵은 된장 1kg이 1만3천원입니다. 평화를 지키는 유기농 농산물을 하시는 들은 poo1052@nate.com으로 메일을 보내시면 됩니다.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최무영(10만원) 강미현(3만원) 고미숙(3만원) 유재광(3만원) 김현중(2만원) 허성도(3만원) 김병수 김진주 김민주 홍성여 서미라(5만원) 문경우(2만원) 성세미(5만원) 양미라(5만원) 오헌주(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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