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문제를 미국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방한한 19명의 평화 활동가들…“대추리에서 우리가 위안 얻었다”… 주한 미군사령관은 면담 요청 거절
▣ 평택=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용산 미군기지 5번 출구 앞에서는 묘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푸른색 미국 여권을 펴들고 기지 안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를 막는 것은 푸른색 경찰 방패를 들고 두 명 건너 한 명씩 안경을 걸친 한국의 전경들이었다. 외국인들은 경찰과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면서 한국어로 “미군기지 확장반대”라고 외치기도 했고,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고 “프리 프리 김지태”(김지태 이장을 석방하라)라며 흥분하기도 했다. 미군은 그들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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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812일째 촛불을 들고
11월21일 오후 1시30분 용산 미군기지 주한미군사령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미국 반전운동가 신디 시핸(49)은 “어제 저녁 대추리, 도두리를 방문해 주민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신디 시핸 등 19명의 평화 활동가들은 미군의 무분별한 기지 확장으로 고통받는 평택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의 사연을 전해듣고 그 사실을 미국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11월20일 한국을 찾았다. 신디 시핸이 반전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의 아들 케이시 오스틴 시핸이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지 일주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면서부터다.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저는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내 아들은 기계를 고치러 갔는데, 왜 총알을 맞고 죽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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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죽음은 그를 투사로 만들었다. 2005년 여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여름 휴가지인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을 찾아 26일 동안 1인 반전시위를 벌이며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소박한 반전운동은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에 의문을 가져온 미국인들에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거대한 소용돌이로 바뀌기 시작했다. 시핸은 여동생과 함께 전쟁에 참가해 죽거나 다친 병사들 가족의 반전단체인 ‘평화를 위한 황금성 가족’(Gold Star Family for Peace)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 방문단은 ‘미군기지 확장과 평택에 대한 억압을 멈춰라’(Stop US military base expansion and repression in Pyeong-taek)고 쓰인 펼침막을 내걸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미국인들과 한국 경찰들의 대치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신디 시핸과 함께 한국을 찾은 미국 평화운동가 미디어 벤자민은 “우리는 버웰 벨 주한 미군사령관에게 두 번이나 면담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 사람의 미국 시민으로 주한 미군사령관을 만나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을 괴롭히는 기지 확장의 부당성에 대해 의견을 전할 권리가 있습니다.” 미군 쪽에서는 말이 없었다. 그들은 책임 있는 당국자를 내보내 활동가들의 의견을 접수하는 대신 한국 경찰을 앞세워 자국민들을 몰아냈다. 그 광경이 베트남과 이라크에 한국군을 끌어들인 미군 수뇌부들의 행태를 그대로 빼닮았다. 미디어 벤자민은 “사령관의 대리인조차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늘 저는 미국 시민이라는 사실이 전혀 자랑스럽지 않군요.”
유명한 평화활동가가 다녀갔다고 해서 변한 것은 없다. 그날 저녁 주민들은 평택 대추리 농협 창고에서 ‘우리 땅을 지키기 위한’ 812일째 촛불을 들었다. 마을 젊은이들은 추워진 날씨에 노인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장작 난로를 설치했는데, 연통에 문제가 있는지 연기가 제대로 빠지지 않아 건물 안에 연기가 자욱했다. 촛불집회 사회를 맡은 김택균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 “너구리 잡는 것도 아니고, 연기가 계속 피어올라 죄송하다”고 말했고, 노인들은 “괜찮다”며 웃었다.
폐허가 된 대추초등학교에서 마을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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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에게 삶은 곧 투쟁이다. 그들은 11월26일 국방부의 초등학교 강제 철거로 폐허가 된 대추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마을 잔치를 열어 빈 터에서 축구도 하고, 자치기도 하고, 보물찾기도 한다. 마을 청년들은 노인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운동장을 평평하게 고르기 위해 트랙터로 운동장을 갈았다. “국방부에서 또 사진을 찍어서 마늘 심는다고, 불법 영농한다고 뭐라고 할까봐 신경쓰이더라니까.” 김택균 사무국장이 말했다. 지난 7월 경찰의 수수방관 속에서 평택 상인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대추리 지킴이 결사는 “옛날 어르신들이 학교 만들었을 때처럼 풀도 뽑고, 돌도 주웠다”고 말했다.
미국 평화운동가들은 “미국으로 돌아가 국회와 국방부, 백악관 쪽에 평택 미군부대 확장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대추리에서 오히려 우리가 큰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촛불집회는 박수 속에 마무리됐고, 노인들은 해 저문 들을 지나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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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이운다] 열아홉에 시집올 땐 좋은 동네였지 |
9월에 집 헐 때 경찰이 손가락을 때려서 끼고 있던 반지를 잘랐어
이종비(69)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4-5
집집마다 돌아가며 김장하는 손길이 바쁘다. 이른 아침부터 김장하는 집으로 모인 할머니들은 동그랗게 둘러앉아 절인 배추에 김칫소를 넣는다.
예전에는 김장을 반반이 했어. 우리 3반은 3반끼리, 4반은 4반끼리 한 거여. 지금은 사람이 없어서 다 모여 하는 거지. 반반끼리 해도 사람이 넘쳐났는데. 그 많은 김장을 그렇게 했는데, 이렇게 사람이 줄어들었네. 인심이 아주 좋았지. 대문 잠그는 것도 없었어. 마당에 짚가마를 이만큼씩 쌓아놓고 살았는데.
이렇게 일하고 나면 손가락이 아파. 9월에 집 헐 때 경찰이 손가락을 때려서 끼고 있던 반지를 잘랐어. 곤지머리에서 내가 방패를 잡고 흔들었더니 그놈들이 나를 때리데. 날 연행해간다고 그러더라고. 그때 다쳐서 손이 이렇게 부어가지고 반지가 안 빠졌어. 병원에 갔더니 반지를 잘라야 한대잖아. 조그만 톱으로 가제를 넣어서 자르더라고. 근데 여적까지 아파. 이렇게 부은 게 안 빠지잖아.
나는 열아홉에 안성에서 시집왔어. 스무 살에 낳은 애가 지금 50살이야. 처음 왔을 땐 좋은 동네였지. 지금은 이렇게 됐지만. 난 시집살이도 무척 하고 살았어. 열아홉에 시집와서 우리 101살 먹은 시어머니한테 시집살이를 얼마나 했는지. 아무것도 못하니까. 아무것도 못하는데 아기를 낳았잖아. 세 살 먹은 애기를 데리고 도망갔어. 그거 얘기하면 병이 들어 눈물이 나와. 애를 업고 20리를 걸어서 친정에 가니 친정 아버지가 가래여. 시집살이 못 살고 오는 사람은 내 자식이 아니라고 가래여. 또 오고 또 가고. 물에 빠져 애랑 같이 죽을까 생각도 했지. 내 등에서 애는 행주치마를 뒤집어쓰고 좋다고 방긋방긋 웃고 있고. 그 물에 나랑 애랑 다 보이는 거야. 그렇게 내 얼굴을 보고 있으니까 이것도 아닌 거여. 그래서 그냥 살았지. 고생 무척 하며 살았어. 배 불러서 밥장사 하고, 갯고랑 막고. 갯고랑 막아서 둑 쌓을 때 둑 하나 맡아서 가래질하면 돈이 나왔거든. 그렇게 일하고 그랬지. 101살 먹은 시어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시고 나니께 허전하고 밤에 무서워서 밖에를 못 나가. 요즘에는 할아버지만 촛불행사 보내고 나는 일찍 문 걸어잠그고 있어. 무서워서.
나는 몸이 아프니까 행사에도 잘 못 가고 그러는 게 힘들어. 서울이고 어디고 갔다가 여러 번 다쳤거든. 당뇨가 있으니께 행길에서 넘어져서 이런 데 다 깨지고 그랬어. 저혈당이 되면 힘이 없어 쓰러지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멀리 못 가잖아. 사람들 고생시킬까봐. 난 여기서 나가고 싶은 생각 한 번도 안 해봤어. 나가고 싶으면 벌써 나갔지. 사는 데까지 살아보려고 그랬지. 국방부에서 전화 오면 내가 막 욕하지.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우리가 뭐 지들이 하라는 대로 하나.
글·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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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의 땅 한평지키기]FTA 에 반대하는 어르신 |
11월24일 현재 1억1331만5056원
11월22일 대추리는 마을회관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지는 신종원 새마을 지도자의 목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았습니다. “경기도청 앞에서 FTA 반대 집회가 열립니다. 어르신들 김장 때문에 바쁘신 줄 알지만 함께 참여해주십시오. 집회 때 우리 얘기도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아침 10시 마을회관 앞에서 버스가 출발합니다.” 버스 시간에 조금 늦은 김영녀(80) 할머니가 떠나려는 버스를 잡아타기 위해 꼬부랑 허리를 이끌고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할머니보다 더 뜨겁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요.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엄현식·김래경(10만원) 소양6-4(2만4090원) 권력 이승로(1만5천원) 봉문수 이현우(3만원) 김천부 상동성당(200만원) 김민제(5만원) 이재인(2만원) 김이나(3만원) 김경숙(5만원) 조용현(10만원) 전서연·이철배(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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