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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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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캠페인] 또 쳐들어온 철조망 2.8km

등록 2006-11-24 00:00 수정 2020-05-03 04:24

“주민들이 보리 심고 내년 영농 가능성 있다”며 들판을 빼앗은 국방부…‘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을 태우러 온 스쿨버스마저 통행 막아

평택=▣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평택 대추리에서 도두2리로 가는 길은 딱 하나뿐이다. 대추리 마을회관에서 16·20번 버스 정류장을 지나 왼쪽 길로 접어들면 주민들이 곤지나루라 부르는 너른 들이 펼쳐진다. 그 들판에 승용차 한 대가 지날 만한 콘크리트 길이 놓여 있고, 길의 끝에는 2004년 최평곤씨가 만든 문인과 무인상이 낯선 이방인을 맞는다. 그 구조물은 사방이 지평선인 너른 들판 한가운데서 “내가 지금 어디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랜드마크다. 그 문무인상에서 왼쪽으로 꺾어 3분 정도 걸으면 바로 도두2리다. 그 길은 걸으면 10분, 차를 타면 2분 정도 걸린다. 5월4일 국방부의 철조망 설치로 땅을 잃은 주민들은 철조망이 가리지 못한 그 길 양옆의 땅 15만여 평에 가까스로 자란 벼를 수확했다.

진입하려던 활동가들 전원 연행

국방부가 그 땅에 철조망을 치겠다는 계획을 주민들에게 알려온 것은 지난 10월 말이다. 철조망이 추가로 설치된 곳은 도두리 문무인상에서 대추리 보건소까지 2.8km 구간이다. 국방부는 “주민들이 미군기지가 들어설 땅에 보리를 파종하고 있다”고 말했고, “내년 봄 모내기 활동 등 추가적인 불법 영농활동이 예상된다”고도 말했다. 도두2리 이상현씨는 “그것은 정말 주민들 피를 말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대꾸하지 않았다.

국방부의 포클레인은 11월8일 아침 7시에 들판으로 쳐들어왔다. (그것을 저항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민들의 저항은 미약했다. 경찰 50개 중대가 대추리에서 도두리로 접어드는 길 입구에 진을 치고 앉아 주민들의 접근을 막았다.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경찰 차단막을 멀찍이 돌아 작업장에 진입하려다 전원 연행돼 경기 부천경찰서로 끌려가 다음날 석방됐다. 그들은 “철조망 작업을 중단하라” “평화를 짓밟지 마라” “미군기지 확장을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대추리 이정오(70)씨는 “깃발 들고 뛰어만 다닌 게 무슨 죄냐”고 물었다.

경찰은 아이들을 태우러 들어오는 스쿨버스도 가로막았다. 방승률 할아버지는 “6·25 때도 나무 그늘에 모아놓고 애들 교육은 했다”고 가슴을 쳤다. 동네 꼬마들은 학교에 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5월4일 철조망 설치 때도, 9월13일 빈집 철거 때도 대추리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던 것 같다. 9월13일, 아비규환 속에서 대추리 꼬마들의 대장 현주(14)는 “왜 학교에 못 갔냐”는 질문에 “괜찮다”고 답했다. 마을에서 읍내로 나가는 버스는 16·20번뿐이다. 국방부와 경찰은 대추리에 작전이 있을 때마다 버스를 마을 입구에서 돌려보냈는데,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노인들은 논둑길을 따라 30분 넘게 발품을 팔아야 한다.

국방부는 성공적으로 작전을 마쳤다. 그들은 5월4일에 그랬듯 포클레인 6대를 동원해 너비 5m, 깊이 1.5m의 참호를 파고 그 안쪽에 철조망을 세웠다. 철조망 길이는 29km에서 31.8km로 늘었다. “이제 뉴스에 대추리는 나오지도 않아. 어쨌다는 얘기도 없고, 국방부에서는 말도 없고.” 11월17일 올겨울 먹을 김장배추를 수확하던 이정오씨가 말했다. 그의 배추밭 한켠엔 “묘지를 이장해가라”는 납골당 업체의 선전지가 뒹굴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한낮의 대추리는 황량했다.

불심검문 개선 권고도 무시하나

그날 아침 국가인권위원회는 평택 대추리·도두리에서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불심검문을 하거나 외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행위는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경기지방경찰청장에게 개선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대추리·도두리에서 불법 집회시위가 발생했고 군사보호시설구역으로 지정됐다 하더라도 경찰이 출입자 전원을 불심검문하고 외지인의 출입을 금지한 것은 국민의 신체 자유 및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고 밝혔다. 경찰은 대추리·도두리 진입로에 검문소 4곳을 설치해놓고 드나드는 사람에게 24시간 불심검문을 하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던 의 취재 차량은 다시 한 번 경찰 불심검문 때문에 차를 멈춰야 했다. 그들은 차량의 흐름을 막는 바리케이드로 차 앞을 가로막고 “무슨 일 때문에 마을로 들어가냐”고 물어왔다. 경찰의 바리케이드 앞에서 인권위의 입바른 권고는 무기력하고 안쓰러워 보였다.



[들이운다] 학생들 버스도 막는 게 민주주의여?


저렇게 또 철조망 치는 거는 아무 효과도 없어

방승률(72)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36

국방부가 철조망을 추가로 설치하는 날, 경찰은 마을 아이들의 학교차를 막았다. 방승률 할아버지는 손자의 손을 잡고 학교차가 있는 곳까지 걸었다.

전경들 서 있던 데로 학교차가 왔더라고. 더 이상은 학교차가 못 들어와. 경찰들이 그걸 막은 거야. 경운기에서 내려서 손 잡고 데려다줬지. 그런 생각을 했어.


6·25 때 말이여, 그때도 학생들을 소나무 밑에 데려다 가르쳤어. 그런데 지금 그렇게 전경들 배치하고 학생들 통학하는 버스까지 못 다니게 하는 정치가 과연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정부인가, 의심을 안 할 수 없어. 자기들은 민주화라는 얇은 가면을 쓰고 이렇게 하는 거야. 자기들 정권 잡으려고 국민들 속인 거 아니여. 아이고 한심해. 그 난리 속에서도 학생들 공부를 시켰는데. 이건 도저히 상상을 못하는 거여. 기자들 그렇게 사진 찍었어도 뉴스에 하나도 안 나왔어. 그게 바로 언론 탄압이야. 한 귀퉁이에서 국민의 권리를 짓밟혀가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지. 그게 안 된다는 게 언론 탄압 아니야?
난 여기서 태어났어. 저 비행장 안에서 태어났지. 거기서 6·25 맞고 1952년에 쫓겨나온 거여. 음력 8월 보름날 명절을 쇠려고 집집마다 떡을 만드는데, 갑자기 불도저가 안정리 쪽에서 오더니 흙을 집으로 몰아붙이는 거여. 당황할 거 아녀. 한 노인네가 불도저 앞에 드러누웠어. 그랬더니 양놈들이 노인을 끌어내더니 총을 가지고 나오더라고.
그렇게 나와서 토담집을 만들었어. 판자때기 두 개를 세워 흙을 파서 넣고 다지는 거여. 습기가 있으니까 착착 들러붙어. 판자를 떼어내면 벽이 생기는 거여. 흙을 개어 덩어리로 뭉쳐서 쌓아 지붕을 만들었지. 그렇게 토담집을 지어서 겨울을 나는 사람이 있고. 그걸 못하는 사람은 정부에서 나눠준 하얀 천막에다 온돌방을 만들어서 사는 거지.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세 식구가 쫓겨나왔지.
돌이켜보면 참 우리가 어떻게 살아나왔나 아득한 생각이 들어. 여기는 나무가 없잖아. 산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전쟁통에도 거기 나무를 하러 갔어. 지게 지고 밥 한 숟갈 싸서. 가깝게 오려면 일본놈들이 만든 활주로를 건너와야 해. 지게 지고 거길 건너오면 비행기가 가다 말고 기관총을 쏘고 그랬어. 한 짐 짊어지고 그렇게 걸어오고 걸어가고 그랬지. 집에 오면 해가 넘어갔지. 무거우니께 오다 쉬고 오다 쉬고 그랬지.
저렇게 또다시 철조망 치고 그러는 거는 아무 효과도 없는 거야. 단 하나, 공권력 동원해서 주민들 압력 넣는 거밖에 안 돼. 무슨 효과가 있냐고. 거기다 인력 투입하고 돈 투입해서 정부가 얻는 게 뭐여. 우리가 잘한 건지 걔들이 잘한 건지 두고 봐야 하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우리 주민들을 위해 함께 싸워준 사람들한테 정말 고마워. 옛날에 어른들이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친구를 잃으면 몇 배의 손해가 난다 그랬어. 그 사람들이나 지금까지 여기에 온 부락 사람 보면서 하는 거지. 우리 마을이 우애가 참 좋았는데. 팽성에서 단결하면 우리 부락을 당할 데가 없었는데, 이렇게 됐네. 참.
글·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평화의 땅 한평지키기] 텅 빈 마을을 걸으며

110,965,966원
11월17일 현재 1억1096만5966원

한낮의 대추리는 텅 빈 마을 같았습니다. 마을을 가득 채웠던 지킴이들도 많이 줄어들었고, 청년들은 남은 일거리를 찾아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1년 전, 대추리를 처음 찾았을 때 마을회관에는 젊은 농부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노인정에서는 할머니들의 화투장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퍼졌습니다. 텅 빈 마을을 혼자 걸으며 아름다운 이 마을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란 사실이 기가 막혀 눈물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습니다. 대추리는 요즘 김장철입니다. 이 마을에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를 돌려줄 순 없는 걸까요.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조용현(10만원) 전서연·이철배(5만원) 아무개(5만원) 이금희(10만원) 제민준(10만원) 권혁 김보람(5만원) 송영석(10만원) 이응구(4만원) 손재웅 황시종(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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